신체들의 아울렛: 유아연

유아연 개인전ㅣ2023.12.15. – 2024.1.27.

 

류다윤

 

흡사 옷을 파는 브랜드샵을 닮은 이 전시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 분절된 신체들이 주체성을 가지고 앞다투어 자신들을 사가라는 듯 소리 없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관람자)가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어떤 것이 주력 상품(작품)인지 부가 상품인지조차 구분하기 쉽지 않다. 이렇게 상품의 판매 전략을 무색하게 만드는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어찌 보면 화려하고 기괴스러운 작품들은 독특한 정체성을 뿜어내면서 관람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유아연 개인전 <아울렛>은 유행이나 시즌이 지난 상품을 판매하는 ‘아울렛’이라는 개념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잘 팔리지 않지만 언제나 잘 팔릴만한 상품을 찍어내야 하는 소비사회를 대변하는 상품들은 마치 끊임없이 새롭고 매번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작가들의 깊은 고뇌와 소명을 닮아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때로는 미술관에서 가치 있는 작품으로, 때로는 작업실에서 실패한 작품으로 낙인찍혀 버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유아연 작가는 이 작품들을 자신만의 아울렛에 다시 불러 모은다. 이로써 시즌이 지난, 가치가 줄어든 작품들도 위계없이 다시 한번 주목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마련된다.

 

유아연, <Stuffies 01>, <Stuffies 02>, <Stuffies 03> , 2023

 

 

감각의 수축과 확장

전시장은 옷가게의 쇼윈도, 쇼룸과 피팅룸처럼 공간이 나누어져 있다.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아울렛’ 간판은 이 브랜드의 컨셉과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쇼룸으로 들어서면 폐업 직전의 가게에 들어온 듯 구멍 난 벽과 용도와 형체를 정의할 수 없는 조각들이 비활성화된 상태로 세워져 있다. 이곳은 일주일 중 오직 금요일에만 작동한다. 24시간 동안 쉴 틈 없이 판매가 이루어지는 활성화된 온라인 공간과 대비되는 이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제한된 시간에만 파편적인 인체들이 제각각 움직이기 시작한다. 인체의 전체적인 모습은 볼 수 없고 추측만 될 뿐이다. 여기에 이 작품 뒤편에서 움직임을 조종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되면 움직임을 멈추고 서로 위치를 바꾸어 다시 작품을 작동시킨다. 퍼포머들과 이 조각들은 서서히 한 몸이 되어 움직이다가 예측하지 못한 순간 멈춤을 반복함으로써 우리의 감각을 확장하다가 또다시 수축하게 만든다.

 

  유아연, <Garments 05>, 2023

 

                유아연, <Garments 04>, 2023            

     

독특한 신체성

피팅룸에서는 조금 더 독특한 신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체 없는 인체상이나 분리된 인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한쪽 팔이 잘려 천장에 매달린 유광 패딩 상의, 어울리지 않는 털이 달린 매끄럽고 새하얀 석고 다리 그리고 마치 쇠사슬에 묶여 도망칠 의지조차 잃은 듯한 뒷모습을 한 누드 조각은 그로테스크한 느낌까지 연출한다. 이 분절된 인체들은 피팅룸에 들어온 순간 더 이상 몸이 아니게 된다. 즉 상체이자 상의, 하체이자 하의 다시 말해 몸인 동시에 옷이 된다. 이제 어디까지가 우리의 신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패션이 한 사람의 가치관을 넘어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현시대에 옷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몸과 분리된  부차적인 수단이 아닌 오히려 우리 몸 그 자체로서의 비중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체의 표피를 의상과 동일시하여 계속해서 주체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새로우면서 독특한 신체성을 제시한다. 판매되기를 기다리지 않는 상품, 인체 없는 인체상과 멈춰있는 움직임을 통해 계속해서 인체들은 감각의 분절과 하나 되기를 반복한다. 현대사회를 대변하는 이 브랜드샵을 닮은 유아연의 전시는 우리의 고정된 신체를 다시 들여다보고 새롭게 움직일 수 있는 유목적 감각하기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