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낸 마음으로 그린 그림: 장욱진

 장욱진 회고전ㅣ2023.09.14. – 2024.02.12.

 

   류다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는 <장욱진 회고전>은 한국 근현대 화단의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유영국 등과 함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2세대 서양화가이자, 1세대 모더니스트 전시이다. 장욱진은 ‘지속성’과 ‘시간성’을 그림에서 주로 보여주는데, 재료에 국한되지 않고 회화, 도자까지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다.

 

저항의 연속, 자기의 존재

장욱진은 어릴적부터 행위(제작과정)에 있어서 항상 유쾌하거나 결과(표현)이 비참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저항이 지속되었고 실은 이 저항이야말로 자신의 존재 자체라고 보았다. 전시의 첫 챕터에서는 작가의 학창 시절부터 중장년기까지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청년기는 작품들이 고전색과 향토색이 짙게 느껴지는 모티프들이 주를 이룬다. 이 시기에는 흑백과 갈색의 모노톤으로 토속적인 분위기를 가진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그의 장년기는 명도와 채도를 통해 시각적인 대비를 하고 형태는 더욱 평면화, 도안화 시켜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중년기에는 틀이나 윤곽만으로 대상을 형상화하여 기호화된 형태들을 그려낸다. 그 과정에서 물감을 겹겹이 쌓아 올려 그림 표면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질감을 더욱 다채롭게 구성하고 점점 원근법적 공간도 지워낸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다시 조형성을 복구하여 장욱진 그림만의 양식으로 나아간다.

 

장욱진, <독>, 1949

 

<독>은 1949년에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제2회 신사실파 동인전》에 작가가 처음 참여하면서 출품한 13점의 작품 중 하나이다. 큰 장독으로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장독 앞에는 까치, 장독의 왼쪽 상단에는 배경색과 비슷하여 보일듯 말듯한 둥근 보름달과 작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놓았다. 하나의 물상을 확대하여 화면 가운데 구성하고 주변에 다른 동식물을 두는 장욱진만의 중핵 구도를 보여주는 최초의 작품으로서 뒤이어 나올 장욱진이 자주 다루는 소재인 까치와 나무가 가장 처음 등장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자신의 언어이자 동시대의 공동 언어

장욱진에게 있어 작업은 외부에서 오는 여러 형태들을 자신의 힘으로 통일시키는 것이다. 개성적인 동시에 보편성을 가진, 즉 자신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시의 두 번째 챕터에서는 장욱진이 화가로서 어떠한 ‘발상’을 해왔고, 이를 어떠한 ‘방법’으로 구성했는지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표적 소재인 ‘까치’, ‘나무’, ‘해와 달’을 통해 이러한 모티브들이 지니는 의미, 상징성, 그리고 변화해온 도상적 특징을 제시한다. 까치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고, 나무는 세상을 담은 우주였으며, 해와 달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영속성을 담고 있는 매개체로써 결국 전체이자 동시대의 공동 언어가 하나이자 자신의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콤포지션’ 섹션에서는 그림 속의 요소들을 단순한 구도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배치할지 다양한 고민의 흔적들과 시도들을 살펴볼 수 있다.

 

장욱진, <까치>, 1958

 

<까치>는 화면을 가득 채우는 둥근 형태의 나무 속에 서 있는 한 마리의 까치와 우측 상단에 떠 있는 초승달의 모습을 단순화시킨 모습이다. 모든 대상은 원근법과 비례를 무시하여 마치 고대 이집트 시대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그림에서 나타나는 색감 또한 푸른 계열로 신비스러움을 자아낸다.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긁어내는 작업을 통해 화면의 질감에서 다채롭게 구성하고 있다. 간결한 형태와 차가운 색채에서 치밀한 구성력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질감 표현을 관람자로 하여금 그림을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몰입하게 만든다.

 

장욱진, <누워 있는 여인>, 1983

 

<누워 있는 여인>은 그림 속의 배치를 기존의 미술에서 보여주던 수직성을 가진 방식과 달리 새로운 구도인  X자 구도 배치함으로써 권위적인 그림의 위계를 깨뜨리고 경계를 흐리게 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소중한 인연, 가족

장욱진은 불교적 세계관, 철학과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세 번째 챕터에서는 그것을 반영한 1970년대부터의 작품들이 시작된다. 그의 동양화풍의 먹그림도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간결하고도 응축된 작품 경향은 서구의 모더니즘적 추상에서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오히려 불교적 사상과 개념인 ‘절제’와 ‘득도’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장욱진의 부인인 이순경 여사의 법명인 ‘진진묘’라는 작품을 통해 그가 아내를 보살상으로 표현할 정도로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 그는 동물도 가족으로 그렸는데, 가족은 모두 소중한 인연으로 존중하는 태도와 세계관을 잘 반영한다. 특히 일본에서 60년 만에 돌아온 장욱진 최초의 가족도가 보존 처리를 마치고 전시되어 있다.

 

장욱진, <가족>, 1955

 

<가족>은 1964년 반도화랑에서 열린 장욱진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 등장한 작품이다. 당시 호텔이 머물던 일본인 사업가에게 팔려 공개된 적이 없다가 이번 전시를 통해 극적으로 발견되어 60년 만에 출품되었다. 가족 시리즈를 여러 점 그렸던 그의 작품 가운데 최초의 가족도라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미가 있다. 화면 가운데 있는 집 속에 네 명의 정면을 바라보고 서 있고 집 양쪽 옆에는 나무가 배치되어 있고 새 두마리가 날아가고 있다. 그의 과거에는 통상 있던 어머니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이들이 그려져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비워낸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

장욱진의 그림은 단순히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자리한 잡다한 얼룩과 찌꺼기들을 비워내야 한다. 이것들이 모두 지워내면 이 비워진 마음으로 모든 것들을 순수하고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그의 1970년대 이후부터 노년기 작품들이 있다. 장욱진이 평생 남긴 730여 점의 작품 가운데 80퍼센트를 차지하는 580여 점이 이 마지막 15년 동안 그려진 것이다. 이때부터는 수묵화나 수채화처럼 묽은 물감이 스며드는 듯한 담담함을 풀어내면서 색층은 얇아진다. 마치 먹으로 그린 동양화를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민화나 민담에 나오는 한국적인 주제, 조선시대 문인화에서 보았던 소재들도 등장한다. 모든 것을 떠나보낸 초연함과 무한한 상태를 잘 드러낸다. 그의 초기 작업들이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사물의 속성에 집중한 추상 작업으로써 단순하고 평면적이었다면, 후기의 작업들은 비워냄, 생략, 초월성을 담은 진정한 한국적 모더니즘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시기에 서양의 추상 표현과 동양의 정신을 잘 담아낸 유일무이한 작가라고도 볼 수 있다.

 

장욱진, <호도>, 1975

 

<호도>는 ‘호랑이가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라는 민담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1975년부터 그의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이다. 민담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장욱진은 사람과 자연의 존재론적 평등성에 주목한다. 호랑이를 맹수이자 위험의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여겼다. 인간과 비인간(동식물)의 공존을 꾀하는 모습은 현시대의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할 비인간 존재자들을 고려하고자 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