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에 대한 이야기

 조각모음전ㅣ2023.09.02 ~ 2023.09.26

 

   류다윤

 

문래예술공장에서 진행 중인 《조각모음》은 곽인탄, 안민환, 오제성, 장준호, 정성진, 주슬아, 홍자영 총 7명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들은 기술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기술이 무엇인지 또 기술을 포함하는 전시는 어떤 형태여야 할지 등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조각모음들을 선보인다. 전시의 제목인 ‘조각모음(Defragmentation)’은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단편화 제거작업에서 가져왔다. 우리는 컴퓨터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처음과 달리 점점 데이터를 불러들이거나 저장하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그 이유는 조각이 깨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각이 깨진다는 것은 하드디스크 내부에 데이터의 기록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지 않고 흩어진 상태로 배열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느려진 컴퓨터의 속도는 PC의 전반적인 기능 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에 조각모음을 통해 버려지는 공간을 없애고 파일을 하나로 이어주어 효과적인 사용이 가능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개념을 전시에 가져와 기존의 재료로 만든 조각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된 조각을 함께 보여주며 작가들의 조각에 관한 이야기와 물음을 모으고 동시에 새로운 조각에 대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안민환, <범굴암 5.8개척 분재>, 2023

안민환, <범굴암 5.8개척>, 2023

 

전시장에 들어서면 점토를 찢거나 얹어 놓은 듯한 비정형적인 조각들의 덩어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안민환의 〈범굴암 5.8개척 분재〉는 그의 암벽 등반 경험을 통해 당시 자연에 압도된 경험을 녹여냈다. 등반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은 풍경을 색다르게 보도록 유도한다. 안민환은 주로 조각이라는 매체에 풍경을 담아내고자 하는 시도를 한다. 그의 ‘풍경조각’ 연작은 조각에 부분적으로 색감을 더해 자연의 풍경을 담아낸다. <범굴암 5.8개척>은 그가 등반을 할 때 만난 바위를 스캔하여 3D 정보와 질감을 재구성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간 부분에 실이 달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암벽 등반 할 때 필요한 안전선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너무나도 얇아서 오히려 안전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주슬아, <Reclining>, 2023

 

전시장 바닥에는 키키 스미스의 <꼬리>를 연상시키는 신체의 피부 조각을 닮은 조각들이 이곳저곳에 놓여 있다. 이 조각들 옆에는 오래되어 낡은 듯 하면서 선명하지 않은 사진들이 배치되어 있다. 주슬아의 〈Reclining〉은 기록 사진의 포즈에 관심을 갖고 신체를 땅에 기대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누워있는 이미지를 수집했다. 이를 인쇄한 종이에 유토를 덧발라 스캔한 다음 다시 인쇄하는 과정을 거쳐 선보인다. 몸을 땅에 기대는 포즈를 3D 스캔하여 소음을 포함한 형태를 3D 프린트로 출력했다. 이것은 신체와 땅의 관계와 유사한 물질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담아낸다.

 

홍자영, <산수풍경>, 2023 /  홍자영, <팔각괴석받침>, 2023

홍자영, <The Great of Wind and Water>, 2023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산신령이 살 법 산에 신비롭게 피어오르는 안개와 고요한 물소리로 전시장을 채우는 작업이 있다. 홍자영은 3D 매체나 왁스를 통해 주로 자연 풍경을 묘사한다. 이 산수화를 입체화시킨 <산수조각>은 범관의 계산행여도와  작가가 직접 경험한 풍경을 참고하여 옛 선조들의 산수화를 모래로 깎아 만들고 3D스캔, 프린트하여 산수화를 전시장으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이를 창경궁 자경전터에 있는 괴석 받침을 스캔해 좌대로 만든 〈팔각괴석받침〉 위에 올려 놓았다. 또한 산, 구름과 물의 형상을 왁스로 그려낸 〈The Gate of Wind and Water〉을 함께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작가는 상상과 실제의 결합체로써 현대적 산수화를 제시한다.

 

곽인탄, <저글링>, 2023

 

곽인탄은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큰 조각을 이루는 유기적이고 가변적인 조각을 통해 하나의 유희의 장을 보여준다. <저글링>은 그가 계획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우연히 만들어낸 조각들이다. 여러 형태의 조각들이 마치 하나의 서커스단 구성원처럼 무대 공간에 연출 되어 있고 배우들의 다양한 역할과 표정을 대변하듯이 다양한 높낮이와 형태를 보여준다. 또한 그 삐에로를 닮은 풍선형상의 조각들은 진정으로 웃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웃음 뒤에 숨겨진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이 은근한 긴장감을 풍기면서 기묘하게 전시되어 있다.

 

장준호, <신상>, 2023

 

눈을 감고 방금 막 잠이 든 듯 누워있는 거대한 두상이 전시장 한 가운데 있다. 장준호의 〈신상〉은 영원할 것 같았던 것의 죽음과 순간의 잊힘을 포착하고자 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그는 작업실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자 그들을 디지털 캐스팅했다. 그들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잠을 자는 동작을 주문한다. 이렇게 탄생한 얼굴 조각은 실제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본떠 만든 작업과 유사해 보인다. 사실상 조각에 있어서 인체는 필수불가결한 것이기에, 작가가 만든 분절된 얼굴 조각은 조각이 만들어지기 시작할 때 인간 본연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되짚어보게 한다.

 

정성진, <카운터 가제트>, 2023

 

전시장 왼쪽 끝에는 인간도, 게임 속 캐릭터도 아닌 신화 속의 반인반수를 떠올리게하는 형상이 있다. 정성진은 실재와 가상의 구분이 흐려진 세상 속에서 물성을 기반으로 한 조각이 디지털과 미디어의 인식 전환을 통해 재구성되는 방식을 고민하고 실험한다. 그는 모듈 형식을 조각에 도입하여 가변적이고 일시적으로 조립한다. 이 조각들은 존재의 현상과 이야기들을 서로 무한히 주고 받으면서 확장된다. 〈카운터 가제트〉는 기술과 조각의 치우치지 않은 균형을 생각하며 헤파이스토스(Hephaestus)와 시바신(siva)이라는 창조와 파괴의 신에 관한 이야기를 혼종적 내러티브로 표현했고 그 주변에는 온라인 상에서 볼 수 있는 픽셀이 깨진 듯한 이미지를 배치하여 실재와 가상의 구분을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오제성, <갓트론>, 2023

오제성, <죽은자가 말을 한다>, 2023

 

공사장에서나 볼 법한 대형 기계나 물체를 옮길 때 쓰는 장비에 대비되는 너무나도 가벼운 로봇 장난감처럼 보이는 작품이 매달려 있다. 오제성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비지정문화재를 소재로 공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주변의 상황이나 기억 사이의 관계를 서사가 있는 영상이나 조각 등의 매체로 표현한다. 〈갓트론〉은 비지정문화재의 역사를 재구성한 것이다. 그 옆에는 전시를 보는 내내 잔잔한 톤으로 들리는 나레이션같은 대사가 들린다. 그는 작업 과정에서 엉뚱하고 과장된 음악을 삽입한다. <죽은자가 말을 한다>는 AI 이미지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이미지와 언어 합성 기술을 통해 로댕의 어록을 낭독하는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데이터와 기술로 깎고 다듬어진 조각의 모습과 의미를 추적한다.

이 전시는 다양한 작가들의 조각을 한 자리에 모으는 조각모음인 동시에 필요 없는 부분은 버리고 새롭게 재탄생한 조각모음이다. 기술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작가들의 다채로운 물음을 통해 전통 조각의 이야기들과 데이터 기반의 조각 이야기들을 하나로 이어준다. 또한 기존에는 시각적인 체험에만 머물렀던 조각 전시와 달리 전시장 한켠에는 작가가 실제로 사용했던 다양한 물성의 재료들을 관람자가 직접 만져보고 느낄 수 있게 함으로써 작가들이 새롭게 만든 조각 세계를 엮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