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좇는 자들: 이성미와 신진 작가들

드림 체이서스: 스승과 제자 전시ㅣ2024.02.28.~2024.03.23.

 

 

류다윤

 

드림 체이서스는 이성미 작가와 그녀의 7명의 제자인 신진 작가들이 모여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유롭게 풀어낸 조각적 사유와 해석을 담아낸다. 전시의 제목인 드림 체이서는 꿈(Dream)과 체이서(Chasers)가 합쳐진 단어로, 말 그대로 ‘꿈을 좇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와 변명을 늘어놓으며 쉽게 도전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와 달리 작가들은 미술 전공자로서 소위 말하면 앞길이 보장되어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작업을 사랑하고 작업할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 당연하지만 당연하지만은 않은 작업을 묵묵히 연구하고 탐구해 나간다. 여기에 그들의 열정이 한데 모여 전시장에 펼쳐진다. 전시장은 야외 마당과 방 두 곳으로 구성되어 있고 편의상 방1, 방2로 구분하고자 한다.

 

Rosa Love, <Corridor>, 2024

 

입구 바로 오른편에는 과거 시골에 가면 볼 수 있었던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을 닮은 두 개의 거대한 사각형 조각이 자리하고 있다. 단순하고 큰 형태인 이  <Corridor>는 도날드 저드의 무제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한편, 가운데 사각형 홈을 만들어 원래는 하나였으나 두 개로 갈라진 듯한 형상으로 무의식적으로 두 조각을 하나로 연결하게끔 만든다. 로사 러브는 미국 LA의 빈민가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작가로, 미국의 길거리에서 수많은 이름 없는 죽음을 발견하고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위로하듯, 조각과 비석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작업은 삶과 죽음을 구분짓지 않고 하나의 연속체로 여긴다. 죽은 자들의 순간이자 남은 자들의 순간이 겹쳐지고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성미, <기억의 풍경화 3>, 2021

 

전시장 입구 정면에 보이는 방1의 쇼케이스에는  두 개의 반투명한 사각형 PVC 상자 안에 깊이, 형체와 소재 등 그 무엇도 가늠할 수 없는 검은색 형상이 갇힌 채 걸려 있다. 검은 형상은 화재 현장에서 불꽃이 타고 남은 자리의 그을음이나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구름을 연상케 한다. 이 경계가 불분명하고 깊이도 짐작할 수 없는 작품은 우리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가까이 들여다보도록 유혹하지만, 관람자가 다가갈수록 더욱 정체를 알아채지 못하게 만들어 혼란만 가중시킨다. 이성미는 가변적이고 비물질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모호한 작업들을 통해 기억이라는 머릿 속에만 존재하는 물성을 형상화한다. 우리의 기억이 모두 분명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는 분명하지 않은 것들을 기억하고 흐릿한 잔상으로 기록한다.

 

 

김문기, <hunter>, 2024

 

리처드 세라의 조각에서 자주 등장하는 녹슨 철과 비슷한 색감을 가진 장화 형태의 조각이 전시장 가운데 서 있다. 이 조각의 중심부에는 물에 젖었다가 마르면서 구겨진 듯한 초라해 보이는 검은색 종이가 걸려 있다. 김문기는 소설가 태리 프레쳇의 ‘장화 이론’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업을 진행했다. 이 이론은 돈이 많은 사람들은 고품질의 장화를 한 번만 사서 오랫동안 발이 젖을 걱정이 없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저품질 장화를 여러 번 사느라 더 많은 돈을 쓰고도 발이 젖는다는 내용으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한 이의 발을 젖은 검은 종이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자본주의 현실을 가감 없이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상은, <누군가를 닮은 신경쓰이는 나무를 봤어>, 2024

 

방 오른쪽 벽면에는 크기가 다른 세 개의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은 어디를 찍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특정한 공간이 담겨져 있다. 사진 위쪽에는 여러 개의 초가 제각각의 속도로 녹아서 흘러내린 채 쌓여 있다. 얼핏 보면 이 촛농으로 인해 작품 감상을 방해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 시리즈는 이상은이 2021년부터 계속해서 진행해오고 있는 작업으로, 사진 속 장소들은 그녀의 기억이 담겨 있는 개인적인 장소이다. 우리는 행복했던 기억이나 어린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공간에 가면 그때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린다. 그 시간을 되돌려 붙잡고 싶었지만 우리는 무기력하게 흘려보낼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이렇게 해당 공간에 대한 기억이 점점 잊혀져 가는 과정을 흐르는 촛농의 흐름에 빗대어 보여준다. 끊임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공간의 추억은 찰나로 존재한다.

 

 

권지선, <Storm>, 2023

 

마당 한 가운데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볼 수 있던 철봉이나 미끄럼틀의 재질과 같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모빌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조각에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한글 형태를 띤 작은 조각들이 달려 있고, 바람이 불면 끈에 있던 작은 조각들이 서로 부딪히고 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익숙한 듯 낯선 소리를 낸다. 그리고 방2로 들어가면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어린아이가 들어갈 법한 크기의 금속 형태 조각이 꽈배기처럼 <Storm>이 놓여있다. 권지선은 어린이의 놀이와 어른 놀이라는 이미지를 충돌시켜 새로운 경험을 전달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그러한 기억을 깨지기도록 몰입과 거리두기를 반복한다. 이를 통해 어린이와 어른의 놀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어른의 놀이를 금기시하는 현상의 전복을 시도한다.

 

 

s.a.h(심유진, 한지형), <Crepes><Stack series>, 2024

 

방2 안쪽에는 북극이나 남극에 있는 얼음 조각들이 제각각의 속도로 흘러내린 듯한 형상의 작품들이 비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자유분방한 형태와 더불어 질감 또한  부드러워 보이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다른 면은 부드럽지 않고 불규칙해 보인다. s.a.h(심유진, 한지형)는 시각 콜렉티브 그룹으로, 디지털 발달로 변화한 동시대 사회와 예술에 주목하면서 쉽고 빠르게 생성되고 소비되는 온라인상을 떠도는 이미지나 현상들을 재구성한다. 때로는 현실의 이미지들이 디지털화되고, 반대로 가상의 이미지들이 현실화되기도 한다. 이 이미지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무의식적으로 각인되기도 하고, 휴면 상태에 놓이면서 형태도 의미도 가변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은 언제든 현실에서 소환되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변칙적인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박지윤, <Bctievsuej vbeoiyctijt #1>, 2022

 

좌측 벽면에는 위에서부터 길게 떨어진 것인지 아래에서부터 솟구쳐 난 것인지 알 수 없는 비정형의 조각이 있다. 이 작품을 처음 마주하면 불편함을 자아내는데, 그 이유는 서로 어울리리지 않는 재료들을 한데 모아 놓은 불협화음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박지윤은 뜨거운 유리의 흐르는 물성이 단단한 철사라는 틀을 통과하여 어울리지 않는 재료들의 조화를 만들어냈다. 작가는 열팽창계수가 서로 맞지 않아 부조화를 이루는 이 재료들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처음에는 우리에게 무언가 불안정하고 불안한 언캐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이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가 우리 사회에서 이질적인 것이라 여기고 배척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인식과 편견이 아니었는지 재고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