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적 행위와 실천을 통한 몸의 기억 소환

김채린 개인전ㅣ2023.07.17 ~ 2023.07.21

                                                                                                                                                 류다윤

몸의 기억 소환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할 때 그 행위가 지나간 자리는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로의 온기와 순간적인 신체의 감각은 한동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채린은 이러한 몸의 감각을 작품을 통해 환기시키고자 한다. 몸이 간직하는 기억들을 소환하기 위해 직접 만지고 싶게 만든 덩어리들과 몸의 행위가 지나간 흔적을 기억할 수 있도록 두 가지의 작업 방식을 사용한다. 하나는 작업을 하는 작가의 촉각적인 접촉이 쌓여 만들어지는 소조 방식과 나머지 하나는 그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어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감각 작용은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어느 상황에 놓여 있고 시간적 공간적으로 그것을 파악하고 더 나아가 여러 사람이나 대상들과의 만남과 접촉을 통해 다양한 층위를 경험하고 인지한다. 이는 “방향정위”에 관한 이야기로, 접촉의 기억으로 자신을 바르게 인식하는 부분에 관한 것이다. 이처럼 김채린은 다양한 대상과의 만남과 접촉을 통해 발생하는 관계와 감각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통해 다시 관람자와 새로운 관계 맺기를 이어 나간다. 이러한 방식은 작품을 고정된 불변의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시키고 확장시켜 준다.

김채린은 신체의 접촉을 통해 만남의 대상이 되는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다. 이를테면, 몸의 흔적을 작품에 잘 녹여내기 위해 실제 살성과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작품에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에 새로운 질감을 더하기도 하고 디자인 분야에서 주로 사용하는 Affordance(행동유도성)의 개념을 작품에 적용해보기도 하고, 사운드 아티스트와 협업하여 청각이라는 감각과 몸의 행위를 통해 관람하는 악기와 같은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접촉의 욕구와 기억을 찾아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조각의 수행적 행위

김채린, <Affordance Sculpture: 행동유도조각 #2: 들여다보기>, 2020. (출처: 작가 제공)

<Affordance Sculpture: 행동유도조각>에서 affordance는 ‘어떤 행동을 유도한다’는 뜻으로 ‘행동유도성’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이 개념을 작품에 적용하여 특정한 상황을 설정하고 관람자가 사용자가 되어 작품을 사용하게 한다. 이러한 접촉 행위를 통한 조각과 관람객의 관계를 실험한다. <Affordance Sculpture #2: 들여다보기>(2020)는 원기둥 탑의 형태를 가진 조각에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여러 크기의 동그란 구멍 안에 머리를 넣고 들여다보거나 양옆으로 뚫려있는 또 다른 구멍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직접 살펴보고 만져볼 수 있도록 우리 몸의 감각과 접촉을 유도한다. <Affordance Sculpture #1: 끌어당기기>(2020)는 강화 석고, 매트릭스 네오, 경량 석분 점토, 캐스터, 고무, 1300실리콘 등의 재료를 사용해 둥근 세 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조각들의 형태는 유사하지만 물질의 다름을 유도하는 신체의 수행성이 필요하다. 즉, <Affordance Sculpture: 행동유도조각>은 관람자의 신체들은 공간 속에 놓여 있는 “행동 유도 조각”을 매개로 특정한 몸의 움직임과 형태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조각의 형태를 지각하고 인식하는 과정 속에서 조각적 감각을 신체적 감각으로 확장되고 신체와 상호 작용하는 조각적 상상력이 발생한다.

 

가득 차 있으면서 비어 있는 덩어리

김채린, <팔베게>, 2022. (출처: 작가 제공)

<팔베개> 연작은 2007년부터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김채린의 주요 작업으로, 특히 촉감에 집중하여 ‘만지고 싶은 덩어리’를 만들면서 몸과 살로 느끼고 해석되는 것들을 표현했다. 조각의 캐스팅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틀과 그로부터 비롯된 네거티브 형태를 각기 다른 물성의 재료들이 겹쳐지면서, 각각의 표면이 서로 맞닿는 지점에서 서로의 윤곽을 반영하도록 했다. 이것은 개별적인 조각이 전체적인 윤곽을 구성하는 것으로 확대되어, 양감을 가진 온전한 하나의 덩어리로서의 조각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동시에 그 윤곽의 부재, 즉 이 조각의 형태에 대한 네거티브로서의 비어 있는 외곽을 인식하게 만드는 양가적인 특성을 가진다.

 

재료의 재편: 조각가의 수행적 실천

  

김채린, <세이브미>, 2022. (출처: 작가 제공)

<세이브 미> 연작은 김채린이 그동안 고민해온 조각에 관한 물음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시도들을 보여준다. 그에게 조각의 “재료”는 물성과 형태를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일 뿐만 아니라 신체의 접촉과 감각을 통해 수행성을 이끄는 존재이다. 이렇게 물질로부터 형태, 감각, 행위, 경험 등으로 일련의 조각적 상황을 구체화해온 김채린은, 최근에는 재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 조각의 생애주기에 관한 물음과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여수 장도에 있는 레지던시에서 작업하면서 그는 주변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질을 조각의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조각가들이 자연에서 재료를 가져온 것처럼 그는 버려진 조개껍질을 가루로 분쇄해 다른 물질들과 혼합하여 사용했다. 이때, 김채린은 새롭게 개발한 조각의 재료를 조각의 완전한 형태로 환원시키기보다는 그 물성 자체가 추상적인 형태로 이끌었다. <세이브 미> 연작은 버려진 물건, 작업하고 남은 부산물들이 아무런 위계 없이 새로운 조각의 재료로 재탄생한 것이다.

김채린이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조각의 수행적 행위성은 그것이 매개하는 연극적인 수행성에서 더 나아가 형태의 시지각적인 변화와 함께 조각가의 수행적 실천에 주목하게 되는 작업이다. 조개껍질, 스티로폼 상자와 버려진 조각 재료들 등을 조각의 재료로 가져와 그것을 물질적인 차원으로 변화되어 인식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 과정을 통해, 조각가로서 재료와 형태 사이에서 스스로 수행적 실천을 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조각의 조건으로 고민하여 동시대의 조각이 어떠한 실천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조각의 재현과 가상의 조건

이충현 개인전ㅣ2023.07.17 ~ 2023.07.21

 

물질의 투명성

우리는 추상적인 대상을 볼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형태와 연결시켜 떠올린다. 이것은 신체와 매우 밀접한 인간의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행위다. 그것은 조각에서도 나타나는데 전통적인 조각에서는 전형적인 조각의 재현과 물질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물질의 투명성이란 작품의 의미를 단번에 예측하고 파악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에 이르는 조각에서도 묵직하고 견고하면서 물질의 투명성을 가지고 결과를 상상할 수 있는 에스키스(esquisse)는 건축가가 건물을 짓는데 없어서는 안 될 설계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은 회화에 있어서 원본성만큼이나 형태의 실존을 잘 증명할 수 있다. 조각의 물질적인 형태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왔던 형태에 대한 상상은 그 형태가 가지고 있는 조각의 논리와 매체적 관습을 잘 설명해준다.

이충현의 작업은 마티스의 조각을 떠올리게 하는데, 마티스는 고전적인 조각에서 신봉하던 물질의 투명성에 대해 거부했다. 마티스의 투명성 개념 중 특히 관념적 투명성이 있는데, 쉽게 말해 작품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내는 것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관람자가 그 작품의 주위를 여러 번 돌아도 그 작품의 전체를 파악할 수 없고 이 작품의 전체성과 거리감은 공간에서 춤추는 곡선들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이충현의 작품은 마티스의 작품처럼 예측이 되지 않는 관념적 투명성을 지니고서 에스키스의 기대를 넘어서서 존재한다.

 

확장된 장으로의 조각: 평면에서 가상 공간까지

디지털 공간에서 구성된 에스키스들과 이를 실제 전시실에 구현한 조각들 그리고 그것들에서 파생된 조각들-유기적인 물질성이 돋보이는 조각들-로 확장된다. 첫 개인전 <VIRTUAL STANCE>를 시작으로 한 그의 작업들은 3D 모델링 프로그램인 스케치업(SketchUp)을 이용하여 실제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조각을 구현시키려는 행위였다. 이것을 통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깊이감의 표현, 물질의 생동성이 돋보이는 최근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간 변화해온 작업들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충현의 작업은 1차원인 평면과 3차원의 시공간들을 자유롭게 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삼차원의 조각적 형태를 만들어내고 역설적이게도 그것을 지각하는 방식은 평면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이전까지 그는 조각의 “껍데기”인 형태의 외면에 관심을 갖고 그것에 디지털을 이용하여 변형과 조작을 가하여 정면성을 띤 조각적 재현에 집중해 왔다면, 최근에는 형태의 내면 “구조”에 열중하여 보이지 않는 형태 내부의 덩어리가 공간 안에 존재할 수 있는 가상의 조건을 탐색하고 있다. 즉, 삼차원의 조각적 형태가 지닌 정면성을 가상에서의 평면성과 일치시켜 그 경험을 실체화하려 했다. 이충현의 조각은 모든 면을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고전적 정면성의 시점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가상의 존재들이 불투명하게 구축해내고 있는 이차원의 평면성을 재현해낸다. 그는 조각적 형태의 외피를 걷어내고 그 내부 구조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 했던 시각중심의 태도를 가지고 조각의 정면성을 추구하는 한편, 조각을 여러 각도에서 봐도 결정적인 시점이나 특권적인 시점이 없어서 시점을 옮길 때마다 형상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경험과 인식을 실행하는 조각

이충현, <Matt Standee>, 2018. (출처: 작가 인스타그램)

<Matt Standee> 연작은 사람의 키 높이를 가진 비슷한 형태의 4개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관람객은 이 작업을 보기 위해 여러 각도로 고개를 돌려 조합되고 접합된 알루미늄 판을 맞춰 보게 되는데 이는 조각의 모든 옆면이 정면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관람객은 여러 면을 보면서 동시에 동일한 면을 확인하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모든 면이 정면으로 존재하는 지점은 모더니즘 조각과 연결된다. 추상적 형태를 마주하면서도 그 이면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시도는 지속되어왔고 안과 밖, 내부와 외부의 고리는 끊어내는 것은 어려웠다. 그 고리가 본격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한 것은 미니멀리즘 조각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질을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받아들이는 것이 미니멀리즘 조각의 핵심이었다. 이충현의 작업에서는 미니멀리즘이 표방한 조각의 역설적인 부분을 부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3D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조각들은 어떠한 내러티브나 대상의 재현도 존재하지 않으며 일정 부분 자기 존재를 거부한다. 동시에 현재로 전환된 데이터가 텅 빈 상태가 아닌 일련의 경험과 인식을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이충현의 조각을 잘 보여주는 작업이다.

 

재료의 가공과 진화의 과정: 프리믹스

 

  이충현, <프리믹스PreMix(twisted)>, 2021. (작가 제공)      이충현,<프리믹스PreMix(peel)>, 2021. (작가 제공)

<프리믹스 PreMix> 연작은 전통적인 조각에서의 흔히 보이던 좌대 위에서 흙의 묵직함과 견고함을 과시하듯 무겁게 뿌리 내린듯한 조각과 달리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천과 같은 유연한 형태와 표면을 간직한 채 전시장의 벽면과 작업대에 놓여 있다. 작업의 주재료인 천사점토는 전통적인 흙에 비해 상당히 가볍고 치즈처럼 잘 늘어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비교적 다루기 쉽고, 독성이 거의 없다. 이러한 특징에서 이충현은 동시대적인 소조용 재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가공되고 진화를 거친 천사점토는 최초의 옥수수인 테오신테teosinte가 인공적으로 현재의 옥수수로 진화하고, 그 후 다양한 가공된 곡물인 전분가루(튀김가루, 팬케이크가루 등)의 과정을 거쳐 프리믹스premix가 탄생한 과정과 유사하다고 느끼면서 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가공과 진화된 프리믹스는 완벽하고 견고한 형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규정하기 어려운 관념의 산물이자 그의 재료가 작업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재료가 되었다.

 

경계를 넘나드는 더 나은 기하추상을 향하여

이충현, <From Scratch>, 2023. (출처: 작가 인스타그램)

<From Scratch> 연작은 사각형과 삼각형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엇이라 정의내릴 수 없는 기하학적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 불완전한 형태를 가진 조각은 정사각형 안에서 십자로 분할된 사선의 개입으로 생겨난 삼각형으로,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정사각형에 사선이 더해져 직각삼각형과 직각삼각기둥으로 확장되지만, 결국 불완전한 형태로 변모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반쯤 열리고 닫힌 형태는 대상과 대상 사이의 공간이 밀도가 서로 다른 연속된 공간 또는 덩어리로 이루어진 형태로 귀결된다. 이 작업은 여전히 가상과 실제와의 관계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현재의 시공간 속에서 열심히 방황하고 있는 물질로서의 조각들에 대해 사유한다. 이충현은 그동안 쌓아온 조각에 대한 고민들을 통해 닿을듯 말듯한 과거와 현재 속을 오가는 갇힌 추상 덩어리들의 탈출구를 모색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