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과 예술의 공진화: 장윤영

정서연(미술비평가)

장윤영의 개인전 《NEXT GAIA》(2022.11.8.-11.18.)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작품은 같은 제목의 <NEXT GAIA>(2022)이다. 이 작품은 아트센터 나비의 《퓨처 판타스틱》에서 동시에 선보인 것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의 미래 생명체를 그린 인터랙티브 작품이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 설치된 마우스를 클릭해 직접 미래 생태계의 종들을 발견할 수 있다. ‘종의 기원’을 추적하다보면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한 비인간 종의 생명력을 마주하게 된다. 현 시대의 척추동물이 물에서 뭍으로 올라오며 폐와 팔다리가 생겨났듯, <NEXT GAIA> 속 미래 생명체들은 새로운 조건과 환경에 적합하도록 진화해나간다.

<NEXT GAIA>에 등장하는 생명체의 이미지들은 모두 인공지능이 구현한 것이다. 장윤영은 GPT-3와 DALL-E와 같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해 텍스트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인공지능은 내용적으로 작품의 주제를 관통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형식을 규정한다. K 알라도맥다월(K. Allado-McDowell)이 GPT-3와의 대화 내용을 『파르마코-AI』라는 공동 저작으로 출판한 것처럼, 작가와 알고리즘은 공진화하면서 서로의 경계를 넘나든다.

장윤영, <NEXT GAIA>, 2022, Interactive Art, App. (출처: 작가 제공)

장윤영은 인간과 동물, 인간과 환경,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상호작용하는 미래 환경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그동안 신체가 가상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든지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생성하는 매커니즘에 관심을 두었던 작가는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작품 속 시점을 인간 종말 이후의 미래로 옮겨 유기체의 진화 및 번식을 상상한다. 특히 <NEXT GAIA>에서는 인간 아닌 존재, 비인간 존재에게로 관심을 확장하면서 우리가 관계 맺는 범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작품 속 세계는 미래를 상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인류세(Anthropocene)’의 현 상황을 고찰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다. 2000년 이후 논의가 확대된 인류세는 지구의 지질 시대에 인류를 포함시킴으로써 인간에게 윤리적 책임을 지운다는 의의가 있다. 다만 인류세가 또 다시 근대성의 이원론과 인간중심주의로 회귀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안적 관점이 필요한데, 과학철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이를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과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가 개척한 ‘가이아(Gaia)’ 이론을 통해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작품과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가이아(Gaia)’는 러브록과 마굴리스에 의해 처음 등장했을 때 신비주의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과학계의 외면을 받았다. 라투르 또한 ‘가이아’라는 단어를 채택할 때에는 논쟁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라투르는 가이아 가설이 인류세의 맥락에서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믿었다. 가이아라는 개념이 비인간 행위자들의 행위성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데 유용하다고 본 것이다. 이렇듯 라투르는 지구를 수동적 객체가 아닌, 생존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능력을 지닌 행위자로 보면서 생물과 대기, 지구, 해역을 포괄하는 ‘생물막’으로 설명한다. ‘생물막’은 생명체와 비생명체들이 얽혀 있는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며, 불안정한 세계라는 의미다.

‘얇은 막으로서의 가이아’는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거나, 특정 주체에 의해 통제되는 ‘지구’와는 다르다. 이는 라투르의 말처럼 가이아가 무수히 많은 행위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인간만이 지구를 통제했다면, 이제는 비인간 객체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윤영의 <갑옷의 피부와 검은 씨앗>(2022)은 비인간 종의 모습과 진화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가이아라는 무대의 새로운 행위자를 표현한다. 새로운 생태계에서 살아남은 강인한 씨앗은 비인간 주체의 생명을 상징하며, 인공지능이 구현한 하나의 서사는 지구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시 성찰하도록 만든다. 인간 종(種)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인공지능이 미래를 분석하는 모습은 알고리즘과 예술의 공진화 가능성을 시사한다.

장윤영, <갑옷의 피부와 검은 씨앗>, 2022, Single-Channel Video, AI-Generated Image, Text, Sound. (출처: 작가 제공)

장윤영이 인공지능과 협업해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비인간의 번역이자 알고리즘과의 공진화로 다가온다. 작가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인류세에서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비인간과의 관계 맺기를 보여준 것은 알고리즘의 발전과 예술의 결합이 공진화하고 있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경험과 상호작용하는 것은 익숙한 경험이 아닌 새로운 것으로서, 인류세에서 요구되는 정치적 실천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인간중심주의와 이분법적 관점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가이아 이후’를 그려낸다.

 

※ 장윤영 작가와의 인터뷰

Q. 이전 작업에서는 가상의 공간을 탐구하거나(<The Eternal Illusion Ⅰ,Ⅱ>), 신체가 가상성을 드러내는 방식(<The Aesthetic point of view>)에 주목하기도 하셨는데, 점차 인공지능 윤리(<SHAME(SIN OF AI)>)나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이미지(<The Emotions of Tears>)를 작업의 주된 주제로 삼고 계신 것 같습니다. 특히 <GAIA>(2021) 이후로는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인공지능이라는 비인간에 주목하고 계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떠한 계기로 인공지능에 주목하게 되셨는지, 인공지능과의 협업이 가지는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인간과 기계가 인지하는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가상공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기계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같습니다. 최근 GPT-3나 Text to Image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 대두되면서 인공지능의 잠재된 데이터를 세상 속에 꺼내는 과정에서 기계가 인식하는 세상과 저의 언어로 재구성된 결과물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인공지능과의 협업을 통해 저는 세계관을 가상으로 빠르게 구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기술 시대 속의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인공지능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개별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습니다. 아트센터 나비의 《퓨처 판타스틱(Future Fantastic)》과 개인전 《NEXT GAIA》에서 동시에 선보인 <NEXT GAIA>(2022)부터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요즘은 현 시점에서 인류세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고 보는데, 작가님께서는 인공지능이 모든 인간을 대체하게 된 미래 시점을 소재로 삼으신 이유가 궁급합니다. 

A. 저는 인류세 이후의 비인간의 삶과 그들의 생명력에 대하여 더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이미 인류로서 파멸한 세계, 황폐화된 땅과 독성의 공기로 오염된 그곳에서도 비인간 생명들은 강인하게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먼 미래 생태계에 대한 상상을 통해, 인간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사람들은 돌아볼 수 있는 감상을 원했습니다.

 

Q. <NEXT GAIA>의 화면은 크게 이미지와 텍스트, 사운드로 구성되는데, GPT-3과 DALL-E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GPT-3에 영어로 텍스트를 입력해 학습시킨 뒤 텍스트를 출력하고, 해당 텍스트를 DALL-E를 통해 이미지로 변환하는 방식인가요? 알고리즘 학습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A. GPT-3를 통해 영어로 된 텍스트는 텍스트 시나리오에만 사용되며, 이미지는 그에 영감을 텍스트를 다시 DALL-E에 넣어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텍스트를 한 땀 한 땀 수정하며 이미지를 생성하는 방식이 저에게는 새로운 생물과 세계를 만드는 즐거운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Q. <갑옷의 피부와 검은 씨앗>(2022)을 구성하는 사운드가 매우 인상 깊습니다. 몰입도를 높일 뿐 아니라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사운드로 들렸는데요. AIVA를 활용한 사운드 작업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A. AIVA를 <갑옷의 피부와 검은 씨앗>을 제작하며 처음 사용해보았는데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이미지나 텍스트 보다는 원하는 느낌에 다가가는 것은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생성된 많은 음악 중, 제게 이미지나 시나리오의 구성에 영감을 주는 사운드를 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이 감상을 하는데 있어서도 잘 전달되었던 것 같습니다.

장윤영, <A Creature in the toxic air>, 2022, Mixed Media, 3D printing, pvc, Arduino, air compressor, regulator, etc. (출처: 작가 제공)

 

Q. <A Creature in the toxic air>(2022)는 <NEXT GAIA>에 등장하는 유기체 중 하나를 구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에어 컴프레서를 활용해 움직임을 준 모습에서 생명체가 실재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곤 하는데요. 인공지능의 관점에서 바라본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의 생명체가 작가님이 평소 그리던 모습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만약 작가님이 직접 비인간 종의 진화를 그려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인공지능으로 생성되었지만 정의되지 않고 무언가 상상할 수 있을 법한 형상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분열하는 세포, 생명체의 알 등 생명의 시작점에 있어서 아직 완벽하게 형상화 되지 않은 모습이요. 아마도 제가 직접 제작하고 그려낸 모습도 특정하게 규정할 수 없는 그런 형상의 생명체가 되었을 것 같아요.

 

Q. 앞으로 작가님의 작업이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려요.

A. 예술, 기술 그리고 과학의 융합을 통해 다각도의 관점에서 먼 미래를 추측하고 상상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을 만들 예정입니다. 현재는 진화생물학에 관심이 많고, 다양한 주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미래에 대하여 다뤄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