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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활동을 하시면서 동시에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디지털미디어디자인전공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서동수 교수님과 인터뷰를 나눠보았다.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연구실에서 인터뷰에 응해주신 서동수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인터랩 : 안녕하세요. 교수님의 작품전시 도록을 통해 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수님 작품의 특징이 기존 저희가 생각했던 미디어아트와는 좀 다르게 굉장히 서정적이면서 아련한 느낌이 들어 많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록 뒷 부분 교수님 프로필에서 반전이 좀 있었는데요. 여러 질문을 통해 궁금한 점을 여쭤보겠습니다.

 

서동수 : 예, 좋습니다. 뭐 별로 재밌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인터랩 : 네. 일단 교수님 작품이 굉장히 시적인 특징인 것 같습니다. 물론 교수님께서 쓰시는 글에서 ‘습니다’ 대신 ‘읍니다’를 쓰시는 것만 보더라도 무언가 문학적인 관심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혹시 ‘읍니다’를 사용하고 계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서동수 : 저는 어학자는 아니지만 앞에 시옷이 두 개가 있는 것이 너무나 편의주의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두 ‘습니다’로 통일한다는 것이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아서 동의하지 않고, 예를 들어 ‘했습니다’라는 경우 앞에 시옷이 두 개 있는데 또 ‘습’의 시옷을 붙이면 앞에 시옷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학적인 관심이라면 제가 등단한 시인은 아니지만 제가 평소에 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2013년 5월에 서울 중구 장교동 한빛 미디어갤러리에서 열린 제 개인전 <<작고 하염없는>>에 출품한 작품 <봄>에서 시와 미디어를 활용한 작품이 같이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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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작품 전시 전경과 시의 일부

[출처] http://suhdongsoo.net/framesK.html

 

그리고 <랭보>라고 하는 작품에서는 인형 머리를 분리해서 좌대 위에 놓고 시를 읊조리는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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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 작품 이미지, 작품에 사용된 시의 일부

 

검은 단상에 눈을 감은 마네킹 인형 머리가 놓여 있고 그 앞에 버튼 하나가 있다. 관객이 인형 앞의 버튼을 누르면 인형이 눈을 뜨고 시 한 구절을 말한 후 다시 눈을 감는다. 관객이 버튼을 누를 때 마다 인형 시인은 작가가 쓴 43가지의 짧은 시 가운데 하나를 랜덤하게 선택하여 말한다. 43편의 시들은 모두 ‘자유’를 주제로 한다. 본 작품을 위해 쓰여지고 말해진 시들은 다음과 같다.“

[출처] http://suhdongsoo.net/framesK.html

 

 

저는 문학이라는 것이 디지털 기술과 만났을 때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의 전체적인 작품세계라고 한다면 시적인 경험을 디지털 기술을 통해 구현하고 그로 인해 관객에게 시적인 체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시가 끝난 후 남는 것은 도록인데 그 도록을 통해 작품을 좀 더 재미있게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도록에 시를 실었습니다.

 

인터랩 : 도록 끝부분에서 교수님께서 산업공학과를 졸업하시고 인간공학을 전공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당연히 교수님께서 예전부터 문학 또는 미술 쪽에서 예술을 하셨다고 생각했던 터라 저에게 반전이었다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공대를 다니시다가 현재 미디어아트 쪽에서 작품 활동도 하시는 것이 굉장히 개연성이 있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어떻게 이 행보를 취하셨는지도 매우 궁금합니다. 제가 이 공대 쪽 분야에는 무지하기 때문에 너무 기초적인 질문부터 하자면 교수님께서 서울대학교 학부와 석사과정에서 전공하신 산업공학과 인간공학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간략하게 듣고 싶습니다.

 

서동수 : 산업공학이라고 하면 시스템공학이라고 번역을 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시스템이라고 하면 물자를 생산하거나 서비스 융합을 위해서 효율을 극대화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을 공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산업공학인 것 같습니다. 내용적으로 보자면, 예를 들어 기계항공에서는 물리학을 주로 다루고 화학공학에서는 화학을 중심으로 하듯이 산업공학에서는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것은 거의 하지 않고 수학, 통계학, 컴퓨터 등을 활용해서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데에 목표를 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미술 회화를 전공하시고 외삼촌이 건축가이시기도 하지만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 스스로 문과 쪽이 적성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주변에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법대나 상대를 가는 것을 보고 나랑은 좀 안 맞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이과를 가자니 이과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의대를 가게 될 텐데 또 의사는 적성에 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최대한 이과에서 덜 이과적인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것이 산업공학과 그리고 인간공학 전공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스스로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했고, 어릴 적에는 주변사람들이 권하는 대로, 사람들 사는 대로 무리 없이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공부를 못했던 편은 아니라 석사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했고 LG에서 5년동안 일을 하다가 보니 아주 뒤늦게, 그제서야 ‘나는 이게 맞지 않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절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쪽 분야에서는 뭔가 특별히 잘 할 수도 없을 것 같고 잘 하기도 어렵고 그렇게 계속 살아도 개인적인 삶에서 별로 행복하지 않고 또 적성에 별로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해서 30살이 돼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에 든 생각이 예술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 분야를 딱히 전문적으로 배워보지는 않았지만 가족도 제가 예술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해 주기도 했고 또 스스로 예술에 대한 적성을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예술 쪽으로 알아봤고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유학을 갈 때 전공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했었는데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도 있었고 또는 영화도 좋아해서 그 쪽으로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이 예술 쪽에 테크놀로지와 융합하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고 친한 후배가 권하게 되어서 뉴욕대학교로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요약하자면 공학 쪽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도 있었고 예술을 하고 싶어서 용기를 내서 도전을 했는데 집에서도 적극적으로 밀어주셨던 것을 보면 지금도 저는 굉장히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랩  :  네, 그렇군요. 그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또 이 테크놀로지를 겸한 예술에 대해서도 학생들을 가르치실 때 이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서동수 : 저는 홍익대학교에서 주로 인터랙션 디자인을 강의하고 분야를 개설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속하는 공대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으니 기술이 필요한 과목들이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번역해서 출판한 『피지컬 컴퓨팅』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런 피지컬 컴퓨팅의 내용들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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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랩 : 교수님께서 2010년에 한국연구재단의 WCU(World Class University) 사업을 진행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프로그래밍 언어인 Processing 강의를 하신 걸 봤는데 이러한 것이 미디어아트 작품을 만들 때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WCU사업 중 프로세싱 강의 장면 동영상 링크] http://www.kocw.net/home/search/kemView.do?kemId=162214

 

서동수 : WCU 사업은 “세계적인 교수가 있는 대학이 세계적인 대학이 된다”라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는데 세계의 석학들을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만남이라는 주제 하에 홍익대학교 조형대학에 교수로 초빙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외국 교수들 중에 배울 점들이 많다고 생각하는 교수님들을 초빙했습니다. 이때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프로세싱 강의도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런 비주얼 프로그램 교육을 한지가 15년정도 되었는데 제가 가르치는 것이 주로 전자회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술하는 학생들은 이런 분야에 대해 어려워하기 때문에 가능한 가장 쉽게 가르쳐 주려고 노력을 하고 또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할 수 있을까?’라는 연구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미대 학생들이 이런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해 잘 이해를 못하기도 했고 학생들도 일부는 좋아했지만 우리가 공대생도 아니고 이런 것을 배워야 하느냐는 생각을 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일례로 납땜을 하기 위해 학교에 재료비를 신청을 했을 때도 만원 정도 하는 납땜에 대해 결재하는 분이 연락이 와서 납땜 신청을 한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형대에서 왜 그게 필요한지 물으셔서 미술작품을 만든다고 했더니 그 분이 전자공학 쪽 교수님이셨는데 저를 보는 눈빛이 이걸 어떻게 미대아이들이 할 수 있냐는 표정이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점점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융합이라는 것이 시대적으로 아주 큰 흐름이기 때문에 미술하는 사람들도 이런 분야를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미술을 하는 사람들의 한계라고 생각하거나 장벽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기술이라는 부분이 크게 차지하는데 저도 어려운 기술은 저도 한계가 있고 기술을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중요한 것은 기술은 조금만 배워도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LED를 예를 들어봤을 때 이 부분은 아주 단순한 것만 배워도 작가가 시도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즉 스위치를 작동하는 것만 배워도 가능성이 넓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기술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작가들은 간단한 기술이라도 배우게 되면 작가로서 지평이 넓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술을 조금 하는 사람입장에서 볼 때 관객이나 평자들이나 큐레이터들이 “저 사람은 미디어아티스트다”라고 하거나 또는 “이 작품은 미디어아트다”, “이번 전시는 미디어아트 전시다”라고 말하는 것을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미디어아트’라고 정해버리는 것이 관객에게 더 쉽게 다가가려는 의도가 있기는 하지만 점점 더 이런 예술이 쉬운 것에 치우쳐 격이 낮아지고 상업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제가 광주비엔날레에 가서 느낀 점이 있는데 본전시 공간이 아닌 어린이 전시장에 많은 인터랙티브 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작품이 모두 몰려있는 것을 보고 미디어아트라는 격이 낮고 대중적이고 쉬운 것들 인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작업을 내 놓을때에도 ‘신기하다 재미있다’ 라고 하는 반응들이 별로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것보다는 작업을 봤을 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생각할까?’, ‘저 사람은 세계를 왜 그렇게 바라볼까?’라고 하는 반응이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떤 예술작품에서 기술을 쉽게 사용하는 것이지 미디어아트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예술로 다르게 인식해야 한다는 장벽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터랩 : 네. 인터뷰를 통해 교수님의 작품세계와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혹시 연구하고 있는 주제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또는 앞으로 계획된 전시나 작품 활동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서동수 : 제가 제작년에 미국에 연구년으로 가서 뉴욕대학교에 머물면서 전시를 준비 하다가  한국에 왔는데 학교에서 학장을 하라고 해서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약간 중단된 상태이기는 합니다만 <<조용한 구석>>이라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디지털, 미디어 전시라고 하면 대체로 빛이 번쩍거리거나 호화롭고 시끄러운 분위기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저는 약간 반대로 조용한 구석들을 만들어서 조용하고 느리고 미묘한 변화들이 있는 장소를 보여줄 계획입니다.

 

인터랩 : 흥미로운 전시가 될 것 같습니다. 전시가 열리면 꼭 보러 가고 싶습니다.

기술과 미술 그리고 ‘미디어아트’라고 하는 우리의 선입견을 약간은 깰 수 있는 인터뷰였던 것 같습니다. 차분한 설명과 진지한 답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