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집 みんなの家>은 건축가 이토 토요오가 현장을 찾아가 건축가로서 느낀 솔직한 마음을 반영한 건축물 및 단체이다. 건축가로 활동하면서 그는 지진 이후에 어떤 요청 없는 채 부흥계획에서 건축가들이 소외되어 왔다고 경험한다. 근원지 주변에 실제로 가 본 이토는 거기서 집을 잃은 사람들과 자신의 의견이 일치된 포인트를 하나 알게 된다. 바로 국가주도로 이루어진 부흥계획은 좋은 평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1). 이토는 ‘탈근대건축 5원칙’을 가지고 건축 활동을 하는데(2) 이러한 이토의 태도는 3.11 지진(동북대지진) 이후, 구체적인 건축 활동으로 전개된 <모두의 집>으로 직결된다. 여기서 <모두의 집>이라는 이름은 특정 건축물의 이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사고방식이자 개념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사실 <모두의 집>은 이토뿐만 아니라 다른 건축가(야마모토 리켄山本理顕, 세지마 카즈요妹島和世, 쿠마 켄고隈研悟, 나이토 히로시内藤廣(3))와 의견을 공유하여 결성된 단체인 <귀심회 帰心の会>에서 출발한 일종의 프로젝트이다. 이토는 이 프로젝트에 대하여 “건축가로서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나 독창성을 제거한 다음, ‘모두’가 함께 건축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꼭 일어날 것이라 생각을 했다”고 한다(4). 그리고 설계 또한 다양한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설계안을 가지고 작업한다. 이때 말하는 건축가는 유명-무명의 정도를 가리지 않는다.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안을 적극적으로 보내주는 경우도 있는 한편(5), <모두의 집>은 초등학생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집을 같이 그리며, 젊은 건축가들과 함께 작업하여 실제로 집을 설계하기도 한다(6).

 

이토는 실질적인 건축 활동뿐만 아니라 차세대 건축가들에 대한 교육활동을 전개한다. 그 중에 이토건축학원(伊東建築塾)이 있는데, 2011년 5월부터 시작 예정이었던 ‘청년건축가양성강좌’의 커리큘럼 방향을 동북대지진 이후 재앙으로 변경하였다. 열 여 명의 참가자는 학생이 40%, 일반인이 60%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서도 <모두의 집>의 또 다른 설계안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실천적인 배움의 자리에서 실제로 현장으로 가서 3일간 워크샵을 열기도 했다(7). 이러한 이토의 건축물 설계에 대한 태도는 지진에 대한 건축가로서의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라기보다는 “건축과 학생이 생각하는 프로젝트가 시대와 사회와 점점 맞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8), 그리고 앞서 언급한 근대건축의 한계와 당연시되어 온 인식을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토는 건축가이면서 건축물을 짓는 과정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며 오늘날 건축가가 가져야 하는 태도를 3.11 지진 이후에 시작된 <모두의 집> 프로젝트를 통해 비판이 아닌, 실현으로 보여주고 있다(9).

<모두의 집>은 이름만 보면 흔한 느낌이 들지만, 건축물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국가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권리가 아니라는 주장을 이름에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건축가는 건축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고려해야 하며 구성원과 건축가 기타 연구자가 모두 만드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 여기서 말하는 ‘모두’라는 개념은 3.11 지진 이후에 미디어를 통해 거듭 언급된 ‘키즈나絆’의 생각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성을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상부상조의 개념으로 ‘키즈나’가 강조되는 오늘날, 건축가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설계를 하는데, 완공된 건축물에서 실현되는 것 또한 전통적으로 계승되어온 ‘키즈나’나 연대의 형성이다. 특히 재난 이후 이토를 비롯한 건축가들은 빈터에서 사람들 사이의 연대관계를 더욱이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 그곳의 사람들뿐만 아닌, 근대 건축에서 단절된 건축가와 그곳의 사람들의 연대관계를 고려하게 되었다. 이토는 현장에서 활동하면서도 때로는 교육자로서 그리고 지역 사람들에게는 관계의 장을 상호작용하는 이야기의 과정을 거치면서 건축을 더 많은 사람들과 생각하는 시도를 한다. 그 결과물로서 동북대지진 이후, 첫 프로젝트를 같은 해 2011년 10월에 마치고, 현재 <모두의 집> 프로젝트는 동북지방에 14곳에 집을 완공한 상태이다.(10)

160808阿蘇市北塚団地_P8083787-w960

 

2016년의 여름, 이제 <모두의 집>은 쿠마모토로 진출하게 되었다(사진)(11). 이토 토요오 건축설계사무소와 쿠마모토 현이 상호협력하며 진행되고 있다. 모두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은 동북지방 또는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 멀리 규슈지방까지 하나의 ‘프로젝트’이자 ‘작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도움이 필요한 지역이 늘어났지만 그와 동시에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도 생겼다. 동북지방에서 피난을 가야만 했던 사람들을 SNS를 통해 공간을 제공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12) 이번에 쿠마모토에서 진행되는 <모두의 집>프로젝트에 건축가가 가구를 기부했다. 과거에 건축가에게 한정되어 있던 협력관계는 오늘날에는 이토의 경우가 그렇듯 일종의 프로듀서처럼 기획을 하고 교육을 하고, 한편으로는 일반인이 정보기술을 가지고 연결망을 형성하게 되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주려는 사람, 그 두 입장이 합쳐져서 비로소 ‘모두’가 된다. 재활성화에서 건축과 건축가는 다시 모두라는 말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1)五十嵐太朗・山崎亮, 『3.11以後の建築―社会と建築家の新しい関係』, 学芸出版社, 2014, p.23-24

(2) 1) 내외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든다. 2.) 내외 공간 중간 부분에 반외부적 공간을 마련한다. 3) 바람길을 만든다. 4) 기능으로 공간을 분할하지 않는다. 5) 자연 소재를 재료로 사용한다.

(3) 이중 세지마 카즈요는 SANAA 이름으로 니시자와 류에西沢立衛와 함께 건축 활동을 하는데 2010년에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설계안이 선정되었던 2020년 도쿄 올림픽<신국립경기장>에 최종적으로 선정된 건축가가 쿠마 켄고이다. 참고로 <신국립경기장>의 최종 심사과정에서 겨루던 상대는 이토였다.

(4) 10+1 인터뷰 : 伊藤豊雄インタビュー―伊藤建築塾の1年、「みんな」考えるこれからの建築
(http://10plus1.jp/monthly/2012/04/1-1.php 2018.12.20. 최종접속)

(5) 스티븐 홀(Steven Holl),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 안도 타다오(安藤忠雄)를 비롯한 여러 유명 건축가 또는 디자이너의 설계안을 받았는데, 의탁을 했다고 해도 약 200점의 설계안이 도착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6) 2013년에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일본관에, 피해를 입은 리쿠젠타카타에 지어진 <모두의 집>의 진행과정을 전시했다. 세 명의 젊은 건축가(이누이 쿠미코乾久美子, 후지모토 소스케藤本壮介, 히라타 아키히사平田晃久)그리고 사진가(하타케야마 나오야畠山直哉)와 함께 이토가 작업을 맡아 진행된 리쿠젠타카다의 <모두의 집>은 최우수상에 해당되는 파빌리온상을 수상했다.

(7) 앞의 인터뷰

(8) 앞의 인터뷰

(9) 이토는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지진 이후에 생각한 것이 ‘아무튼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다만 비판을 하지 말자’였습니다.” 위의 인터뷰

(10) 2016년 9월 24일 현재, 동북지방에 완공된 집은 이와테 현에 5곳, 미야기 현에 6곳, 그리고 후쿠시마 현에 3곳이 있다. 이중 가장 최근에 지어진 집은 후쿠시마 현의 미나미소마南相馬에 지어진 <아이를 위한 모두의 집>이다. (http://www.home-for-all.org/new-page/)

(11) <모두의 집> 공식 블로그에서 (http://www.home-for-all.org/blog/2016/6/8 2018.12.20. 최종접속)

(12) 미우라 아쯔시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진 『3.11 후의 건축과 사회디자인』 저서에서 SNS과 관련된 이야기 또한 거론된다. 빈 집을 대안적으로 피난을 가는 사람에게 제공함으로써 동북지방에 집이 재건될 때까지 이음새 역할을 해주거나 (위의 책, p.26-33) 트위터를 통해 상호적으로 협조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같은 책. p.138-140)

editor Konno Yu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