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맺혀져 동그래진 물방울처럼 : 모모세 아야, <정점관측 [서울소년소녀의 경우]> (2017)

1. 빗나갈 가능성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국외입주작가 성과보고전 《Melting Point》가 지난 12월18일부터 21일까지 4일 동안 열렸다. 네 명의 작가 작업 중에서 일본 작가 모모세 아야(Momose Aya)의 작업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레지던시 프로그램 2017년 4분기에 참여한 모모세 아야는 주로 영상작업을 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2015년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과 도쿄의 국립신미술관(新美術館)에서 공동기획된 《아티스트 파일 2015: 동행(アーティスト・ファイル 2015:隣の部屋)》전도 그렇고, 이번 레지던시 오픈 스튜디오 때도 마찬가지로 영상 작업이 각각 작가 작업실과 회의실에서 소개되었다. 작가는 <정점관측 [서울소년소녀의 경우]> (2017)>을 서울에서 제작하여 이번 성과보고전에서 전시하였다. 제목을 봐도 알겠지만, 이 영상 작업은 일종의 실험/시험을 기록한 것이다. 사실상 이 작업은 이전부터 작가가 계속 해온 유형에 해당된다. 이전 작업 <정점관측 [아버지의 경우]>(2013-2014)와 <정점관측 [주둔지에 있는 친구의 경우]>(2015)을 보면, 서울의 신작과 같은 방식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영상을 기록하였다.

앞서 언급한 두 작업과 이번 작업의 차이는, 설문의 대상이 특정 인물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는 점이다. 작가는 15명의 고등학생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대답을 말하는 장면을 기록하였다. 서로 떨어져 앉아 객관식과 주관식이 섞인 11개 문항을 마주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마치 쪽지 시험을 보는 것과 같다. 이 과정을 보면, 작가의 태도는 ‘개방적’과 ‘폐쇄적’의 이분법에 틈을 낸, ‘(서로에게—개념적으로도, 그리고 관찰자와 대상에게도) 열려 있는’ 구조라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때 작가가 그 대상을 ‘통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질문지를 만든 사람은 작가이며, 그러므로 대답을 적고 말하는 관측 대상은 작가의 의도 안에 포섭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대상에게 의도에서 ‘빗나가는’ 여지를 남겨둔다. 주관식과 객관식의 질문을 통해 ‘둘 다 맞는’ 대답으로 유도할 수도 있지만, 전달된 설문지를 실제로 읽어보면 이 가능성이 실제로 확인된다. 이번 작업에서 설문지는 전시공간 벽면에 붙여져 있는데, 이를 보면 작가의 의도가 학생들의 대답을 국한시키지 않는 점이 분명하다. 이 맥락에서 보면, 작가가 영상뿐만 아니라 설문지를 전시공간에 같이 보여주었을 때의 의미가 훨씬 더 두드러진다. 즉 질문자와 대상자 서로 ‘반(半)-통제(하기/되기)’에 따른 빗나갈 가능성이 더 명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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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응결된 흐름

학생 여러 명이 참여하고, 각각 다른 질문이 전달되어 대답도 같지 않다. 그렇지만 이번 영상작업을 통해서 하나의 흐름으로써, 모호하지만 하나의 주제가 전달된다. 여러 질문을 통해서 대략적으로 부각되는 주제는 분단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주제를 강하게 보여주는 시각적인 요소나 내레이션은 등장하지 않는다. 가끔씩 DMZ에서 찍은 풍경이 나타나지만, 거의 대부분은 학생들의 표정이나 그들이 읽고 있는 장소를 전체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럼에도 관람자는 학생들의 대답을 통해 그 주제를 서서히 인식하게 된다. 이때 작가는 말 그대로 ‘방향’을 조정하는 역할(direction)을 맡은 입장이다. 학생에게 설문지를 통해 방향을 제시하지만, 거기서 작가는 최종적인 대답까지 손을 댈 수 없다. 이 결과물에 대해, 작가는 흐름을 따라 기록하여 영상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작가와 학생은 거의 동등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작가는 질문마다 방향성을 제시하되, 학생들의 대답은 그들이 하는 선택—주관식의 경우에 특히나—에 달려 있다.

이처럼 질문지의 성격과 대답을 적는 방식에서만 보면, 이 상황은 느슨히만 통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느슨함 때문에 완전한 통제가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학생들은 영상 안에서 다소 자유롭지 못하다. 이때, 그 상황에서 각자 다른 사람의 대답을 끝까지 예측할 수 없고 (이보다 더 자유롭되) 각각 학생마다 다른 대답이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주제가 불분명하게 부각된다. 여기서 작가가 준비한 질문지를 보면, 열이 났다고 생각하는 온도 부분에 37, 38, 39도라 선택지가 있고, 강과 관련된 질문을 찾을 수 있다. 이것들은 작가가 주제를 반영시킨 질문이며, 어떤 사람은 이 질문만 보고 작가가 주제를 반영하겠다는 의지가 강렬하게 보인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빗나갈 가능성’도 있을 뿐 아니라, 작가가 꼭 그런 질문만 준비 한 것도 아니다. 질문 중에 ‘학교에서 배운 인상적인 멜로디 중 아직도 기억하는 것을 계이름으로 적으라’는 내용이나 ‘솔직히 지금 어떤 기분이냐’, ‘식당의 이미지를 의성어나 의태어로 표현하라’는 질문처럼, 주제와 맥락이 전혀 떨어져 있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 부분은 사실상 학생들이 질문의 의도에서 빗나가는 것과 성격이 동일하다.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열려 있는 가능성, 이것은 한 방향에서만 벌려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의도 없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영상 속에서 주제에 합류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제와 관련이 ‘아예 없다’가 아니라, ‘옅다’와 ‘진하다’의 농도에 대한 문제가 된다.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대답자체가 주제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더라도, 그 흐름을 타서 주제로 응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력 검사 이야기에 대한 대답은, 그 다음 학생에게 주어진 상대방에게 위치 확인을 전달하는 질문에 답한 내용과 연결되어, 전체적인 흐름 즉 주제의 전체 분위기로 응결된다. 이처럼 학생들이 개별로 답한 내용은 원래 질문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가, 다른 질문과 어울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분석을 통해서 볼 때, 작품에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이 작품에 어느 누구도 화자로서 나타나지 않는 부분이다. 즉 말을 하는 장면이 아니라, 작가는 말이 들리는 장면만 보여준다. 이때 관람자는 학생이 말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한다. 그와 달리, 특정할 수 없는 인물이 나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감상된다. 이때 관람객은 시각적인 경험보다 청각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히 어떤 학생은 말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화면에 나타나지 않고, 화면 바깥에서 어떤 사람이 말을 하는지도 짐작할 수 없다. 중간에 어떤 학생이 대답하는 것처럼 “목소리만은 계속 남아있다.” 관람객은 이때 발언하는 주체를 분명히 찾아볼 수 없다. 어떤 말을 하고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 목소리는 주체에서 떠나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주제로 합류되는 상황, 즉 말이 명확한 위치에서 떠났다가, 주제라는 한 줄기 흐름으로 합류되는 상황을 보다 명확히 ‘비시각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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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미 지나가버린’을 통과하여

학생들은 여기서 흐름으로써 나타난 주제를 그때그때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각자 적은 짧은 문장, 혹은 가끔씩 나오는 의성어는 한 사람씩 따로 읽히기 때문이다. 대답은 근본적으로 말해졌고 사후적인, 즉 ‘일이 벌어진’ 상태의 결과물이다. 대답을 하고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는 것 또한 이미 지나쳐버린 것이다. 그런데 보다 넓게 보았을 때, 사후적인 성격은 학생들의 대답뿐만 아니라 주제의 생성과도 해당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후적인 대답 하나하나가, 주제라는 또 다른 결과물로 ‘(사후적인 조건 아래에서) 나아간다.’ 학생들 모두 옆의 사람 질문뿐만 아니라 대답을 예측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한 마디 던지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주제는 흐름에 따라, 한 마디씩 ‘읽어간’ 사후적인 흐름을 타서 서서히 드리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앞뒤에 나올 내용뿐만 아니라, 이미 나온 말 또한 현재시점에서 잠정적인 상태에 있다. 학생들의 대답은 단지 선택지를 하나 고르거나 생각이 난 내용을 적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앞뒤의 대답과 연결되면서 하나의 주제를 향해 결정화가 이루어진다.

한 마디만 가지고는 주제를 부각시킬 힘이 없고, 어떤 경우는 주제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대답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대답은 이어 나온 대답과 런닝 타임을 ‘지나가면서’ 서서히 맺혀져 주제라는 결과물로 향한다. 마지막 11번째, ‘헤어질 때 말한다고 생각하고, “오늘은 고마웠어”를 나름의 표현으로’라는 질문에 한 학생이 “오늘 정말 즐거웠어, 조심히 들어가고 연락해”라 대답한다. DMZ의 풍경이 비춰지면서 들리는 이 목소리는, 다른 누구에게 전달될까? 목소리는 질문에 대한 답과 주체의 명확한 위치에서 떠나, 관람자에게 전달된다. 이때 애초에 무게를 짐작할 수 없었던 말 한 마디는, 흐름으로 타고 오면서 결말부분에 ‘이르러’, 마치 창문에 맺힌 이슬이 서서히 뭉쳐 물방울이 되어 떨어져 내리는 모습과 같다. 주제는, 아무렇지 않은 말을 지나고, 질문의 명확한 의도를 벗어나면서도 사후적으로 하나의 방향으로 응결된다. 따라서 관람객은 영상을 다 보고/훑어 지나고 나서 응결된 주제, 즉 분단현실이라는 주제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