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下演)된 차8씨: 노연, 어셈블리 <직선은원을살해하였는가, 혹은 Z白호와 버터플라이 사이의 코스들>

이번에 필자는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에서 열린 작가 노연의 어셈블리 <직선은원을살해하였는가, 혹은 Z白호와 버터플라이 사이의 코스들>에 참여하였다. 이 어셈블리는 작년 촬영된 <캔 위 토크 어바웃 MAVO?>의 영상과 MAVO 관련 저서가 진열된 서재가 놓인 전시공간에서 이틀 동안 진행되었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영상작품과 이번 어셈블리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내용이 바로 MAVO이다. MAVO는 1920년대 일본에서 진행된 예술가 그룹이며 관동대지진으로 타격을 입은 도시 공간에 ‘바라크 프로젝트’를 통해 임시적으로 구조물을 만들었다. 영상에서 네 명의 등단자가 앉아 MAVO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하고 있다. 이번에 열린 어셈블리는 이 건축가 그룹에 예술가 이상의 문학작품이 추가된 형식이다. <직선은원을살해하였는가, 혹은 Z白호와 버터플라이 사이의 코스들>에서 섹션이 총 3개 진행되었다. 어셈블리에서 참가자는 조선박람회 도판과 텍스트, 작가 이상의 <차8씨의 출발>을 같이 읽고, 두 번째 세 번째 섹션에서 각각 야마모토 히로키(Yamamoto Hiroki)와 김백영 선생님의 토크가 진행된 뒤, 마지막으로 ‘콜렉티브 번역: 이상한가역반응’의 3개 섹션에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이상의 시를 풀어나간다. MAVO와 이상, 그리고 조선박람회 잡지에 실린 기사를 가지고 작가와 강연자, 그리고 참가자들과 함께 여러 번역(≒해석)이 진행되었다.

이틀째 어셈블리는 섹션 명칭 ‘차8씨의 출발’과 ‘이상한가역반응’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이상의 시를 주로 다루었다. 그렇지만 이 ‘중심’은 계속적으로 그 자리에서 도주한다. 말하자면 그 텍스트를 주로 읽되 거기서 다른 텍스트로 넘어가기도 하고, 하루 전에 열린 어셈블리에서 읽은 텍스트 이야기로 ‘(연결되어) 나아가기도 한다’. 작가와 일본근대건축, 일본근대문학, 그리고 일본근대미술을 연구하는 등단자와 자리를 함께 하였지만, 그 누구도 이상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 때문에 이튿날 어셈블리는 이상의 작품을 다각도에서 읽는 시간이 되었다. 사실 필자는 이 프로그램을 어셈블리라는 말 외로 뭐라 부를 수 없었다. 그만큼 작가 노연이 이번에 보여준 활동은 신선했는데, 이 작업 형태는 단순히 무대공연으로 설명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인터랙티브한 예술로 묶어버리기도 애매하다. 각본도 없지만, 그렇다고 물리적인 파괴 행위가 관객과 작가 모두에게 허용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 부분을 고려했을 때, 이번 어셈블리는 박스시어터 공간에서 무대 위에 올리는, 말 그대로 ‘상연(上演)’의 형식이 아니라, ‘바닥으로 내려앉은’—하연(下演)이란 말이 없기는 하지만—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처럼 특이한 ‘어셈블리’를, MAVO가 그랬던 것처럼 ‘아방가르드’라는 말로 단순히 설명할 수도 있다. MAVO뿐만 아니라 20세기 초의 많은 예술 활동에 해당되지만, 어떤 것을 예술로 보느냐는 상당히 어렵다. MAVO는 당시 활동하면서 상당히 아방가르드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 그룹이었다. 문헌을 보면 그들은 미적 감성을 거부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번에 어셈블리가 열린 문래예술공장 내부는, 작가를 포함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예술의 측면에서 파격적이고, “예술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할 수 없다. 이 특이한 공간에서 마치 동료들/그 자리에서 동료가 된 사람들과 스터디를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분명히 공간은 박스시어터이지만 거기서 상연의 형식은 관객과 공연자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관객 또한 작품의 생산자이다. 이때 말하는 생산자란, 무대와 관객석 경계를 물리적으로 또는 개념적으로 뛰어넘게 하는—예컨대 페터 한트케(Peter Handke)의 <관객모독>처럼—시도와 다르다. 노연의 어셈블리는, 관객이 변수로 작용하여 작품 안에서 주객을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거의 동일선상에서 시작하여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모두가’ 있다. 관객과 참여자 모두 이상 문학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는 상태에서, 결론이 어느 방향을 가는 것이 옳다거나 적합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한쪽에 쏠리지 않는다. 따라서 노연의 어셈블리는 단순한 아방가르드란 단어, 더 나아가 MAVO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MAVO가 미적 감성을 거부하였다면 작가는 (야마모토 히로키가 지적하였던 것처럼) 어셈블리를 구성하면서 이를 적대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끌어안으면서 번역과 해석을 다같이 시도하는 새로운 자리를 제안한다. 그 공간을 보면 마치 방송 프로그램의 세팅처럼 예쁜 구성으로 되어 있고 앉아서 텍스트를 보는 데 적합한 공간이다. 이번 작업에서 어셈블리와 전시의 공간은 (연구적인) 실천과 미적 감성을 대립시키지 않고, 그리고 주객을 사전에 정의하지 않고 서로를 융화시키려고 한다.

어셈블리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여러 텍스트를 통해 번역을 시도한다. 그만큼 이상의 문학 작품이 국문으로 번역되었다고 하더라도, 완벽하게 이해의 범주로 넘어가버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해석의 경우는 하나의 의견에 수렴될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차8씨의 출발’의 경우, 그 동안 해석된 내용은 성관계로 보는 것이었다. 글을 읽다 보면 남성과 여성을 각각 상징하는 모티프로 읽을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해 좀 더 넓은 차원에서 작품을 읽는 것이 이번 어셈블리였다. 이틀째 어셈블리에서 이상의 작업을 건축적인 요소로 보는 것도 건축의 요소가 아니라, 사실 그 ‘건축적’이란 말 자체가 갖는 다양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어셈블리에 공통적으로 명시된 사항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작가는 이번 어셈블리에서 한국어, 영어 그리고 일본어가 교차되면서 ‘언어적 오류와 오해’가 오가도 되는 상황을 지향한다. ‘차8씨’ 섹션에서 한글 번역문과 일어 원문을 대조하면서 느낀 차이를 이야기하고,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서 자유롭게 대화가 오간다. 이때 어셈블리의 자리에서 하나의 결론이 아니라 이상의 글에 대한 여러 번역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차8씨’의 한자 차(且)를 옆에서 본 건물의 모습이라 이야기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상한 가역반응’에 나오는 현미경과 ‘차8씨’에 나오는 감광지 모티프를 연결시키면서 대화가 계속된다. 이번 어셈블리를 통해서 모두가 차8씨와 그/그 시를 둘러싼 해석과 비슷한 상황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작가가 준비한) 같은 자리에 있다가 다른 얘기로 질주, 도주, 출발하는 차8씨가 아니었을까.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