뻗어나간 환영의 공간 : 도널드 저드에서 다니엘 뷔랭, 더 나아가…

2/2 환영적 공간

2-1다니엘 뷔랭, 《Une Fresque / Een Fresco / a Fresco》, (2016)

4.

이제 환영은 작품의 외부 조건에 의해 생겨나온다. 회화, 그리고 미니멀리즘까지 작품의 자기규정적인 성격을 고수하였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주변부의 영향을 고려하지 못하였다. 2016년에 열린 다니엘 뷔랭(Daniel Buren)의 전시 《Une Fresque / Een Fresco / a Fresco》에서 환영적 작품의 공간을 불러일으키는 주변적 존재로서 작품이 등장한다. 이 작업에서 줄무늬를 전시장 벽면에 붙이면서 작가는 마치 거기에 그림이 걸려있는 것처럼 빈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은 이제 주변 환경에 의해 환영을 부여 받는다고 이야기하듯이, 뷔랭의 2016년 전시는 일반적인 작품에 주변요소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뷔랭의 다른 작업에서 프레임의 연장선을 보여주면서 그림의 공간을 환영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이 작업은 프레임의 바깥부분을 통해 작품이 걸리는 공간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2-2

다니엘 뷔랭, <액자 안의 액자 안의 액자 No.43 미도리(초록)>, (1988)

2-3짐 램비, 《Nervous Track》 (아뜰리에 에르메스, 2009)

5.

뷔랭의 경우처럼, 어떤 작가는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주변환경에 눈을 돌려 그곳을 환영의 공간으로 삼는다. 짐 램비(Jim Lambie)는 아예 공간을 삼켜버릴 만큼 테이프를 붙이고 무늬를 만든다. 여기서 작품은 화려하게 그리고 세밀하게, 이제 벽면이 아니라 바닥을 작업의 공간으로 삼는다. 그의 작업은 옵아트를 닮았는데 선대 영국 작가 브리짓 라일리(Bridget Riley)나 빅토르 바사렐리(Victor Vasarely)의 작업처럼 시각적으로 환영적 효과를 전달해준다. 램비는 공간자체를 아예 환영적 재현의 자리로 위치시킴으로써 주변환경에 의해 작품에 주어지는 환영의 위기에 대책을 제시한다. ‘제안: 환영으로 공간에 비추어진다면, 차라리 환영적 공간으로서 존재하기’. 일반적인 작업은 벽에 설치가 되면서 위에서 조명이 비춰졌을 때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의 설치작업에 찾아볼 수 있는 육면체는 미니멀리즘이 거부할 수 없는 환영의 조건을 궁극적인 환영의 공간으로 밀고 나간다.

2-4빅토르 바사렐리, <Vonal-Stri>, (1975)

2-5
브리짓 라일리, <무제(태고의 화염에 기반하여)>, (1962)

2-6짐 램비, <The Strokes>, (2008)

2-7댄 플레빈, <무제 (for Ksenija)>, (1994)

6.

환영은 틀 내부의 공간이거나, 작품 자체에 내포된 것일 수도 있고, 더 궁극적으로는 작품의 주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램비가 이 모든 요소를 대규모의 설치—그러나 평평한 설치—안으로 끌어들였다면, 리경의 작업은 조명 효과에 의해 물리적 공간자체를 환영으로 바꾼다. 오징어 잡이어선의 조명으로 공간을 비추는 작업 <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2003)에서 이제 작품의 공간은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환영으로 나타난다. 램비는 착시현상처럼 보이는 효과를 창출하면서 물리적인 존재 주위를 계속 도는 환영을 거부/해결하였다면, 리경은 조명을 통해 전시 공간자체를 환영으로 인지하게 만들었다. 전시 공간 벽면에 설치가 되는 플레빈의 대규모 작업이 물리적인 공간에서 공간적 환영을 창출하였다면, 리경의 작업에서 이제 공간이 거의 사라지는 환영의 효과로 극대화된다. 그리고 램비의 작업이 옵아트의 환영으로 공간을 삼켰다면, 그녀의 작업은 이제 공간자체를 환영 속으로 없애버린다.

2-8리경, <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2003)

<참고문헌>
임근혜, 「3장 터너상_고급예술의 대중화」「*마틴 크리드 + 짐 람비 : 비트와 위트가 넘치는 아트」『창조의 제국(영국 현대미술의 센세이션 그리고 그후)』, 2012
할 포스터, 「10장 해방된 회화」, 『콤플렉스』, 김정혜 역, 2014
리경 《more Light: 향유고래 회로도》, 전시 연계 토크 (송은아트스페이스, 2017.10.27.)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