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 역사를 조명하기 : 크지슈토프 디츠코의 프로젝션 작업

폴란드 작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Krzysztof Wodiczko)의 작업은 다양하며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그가 어떤 작업을 해 왔는지 한 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수레를 제작하고, 신체에 착용하는 장치를 만들고, 프로젝션을 통하여 영상을 보여주는 그의 작업은, 미디어 아트나 설치작업, 그리고 (그의 초기작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개념적인 작업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글을 통해 그의 프로젝션 작업을 분석하고자 한다.

그의 영상작업은 80년대를 시작해서 건축물과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를 조명하는 것에 관심이 가 있는 듯 보인다. 프로젝터를 사용해서 역사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추어내는 그의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건축물에 그러한 억압된 목소리를 투영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 지역의 역사적 상징물—히로시마의 평화기념관이나 메헬렌 시청사 등—인 건축물에 어떤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 영상을 비춘다. 예를 들어서 <히로시마 프로젝션 Hiroshima Projection)> (1999)에서 원자폭탄 투하와 관련하여 어떤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은 채, 그 영상은 히로시마 전쟁기념관이라는 공공의 장소에 프로젝션된다. <에이브러햄 링컨: 참전 군인 프로젝트 (Abraham Lincoln: War Veterans Project)> (2012)도 마찬가지로 참전군인의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추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볼 때, 그의 작업은 역사적인 사건의 심미화에 대항하며, 링컨 상이 기념비나 평화기념관이 단순한 볼거리에 머무르는 것에 의의를 제기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공공의 자리는 어떤 감정이나 관심이 평준화되게 마련인데, 그는 관심마저 균일화된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목소리를 프로젝션을 통해 드러냈다.
  이러한 작업은 기법적으로 초기, 말하자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프로젝션 작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조 (References)> (1977)>라는 작업을 보면 그가 일찍이 프로젝터를 써서 작업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작업에서 형식적인 관심이 두드러지는 반면, 프로젝션 작업에서 영상과 건축물 서로가 갖는 서사적인 내용—역사라는 대서사와 그 가운데 매몰된 개인적인 서사—이 두드러진다. 앞서 사례를 통해 보았듯이 그의 작업은 역사적 혹은 사회적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모습을 찍은 것인데, 이는 단순히 전시장 공간에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인터뷰 장면을 보여주는 것과 다르다. 사건과 관련이 깊은 그 장소와 연결시킴으로써 그 사건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가치를 지닌다. 공공장소나 기념비로 보존되는 건축물은 사람들의 관심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많은 경우 사건이 전달하는 심각성이 뒤로 물러나서, 하나의 기념비적인 오브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프로젝팅이라는 방법은 공공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아픈 추억을 이야기하는, 스토리 텔링으로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장소가 갖는 역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이러한 특징에서 볼 때, 프로젝팅이라는 기법을 썼다는 점은 토니 오슬러(Tony Oursler)의 작업과 유사하지만, 영상이 비춰지는 소재가 장소에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그림2

그가 프로젝팅을 통해서 역사 이면의 목소리를 재조명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바로 트롱프 뢰유(Trompe-l’œil), 말하자면 눈속임 그림처럼 전시 공간에 그 역사를 재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서 나가: 참전 군인 프로젝트 (Out of Here: Veterans Project)> (2009)을 보면, 전시 공간의 하얀 벽면에 실제 창문처럼 영상이 비춰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영상을 보면 실제로 창문 너머 하늘과 구름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러한 시각적인 정보와 함께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모습은 실제로 영상에 나타나지 않는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장면과 비명 소리는 그의 작업에서 하나의 사건을 연출한다. 헬리콥터가 선회하며 폭격이 시작되는 장면은 관람자로 하여금 마치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이 체험하게 한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이라크 전쟁을 주제로 다루고 있으며, 관객은 역사 속 하나의 사건을 희생자의 입장에서 경험하게 된다. 이는 기법적으로 다른 작업의 <부동산 프로젝션 (Real Estate Projection)> (1987)처럼 어떤 공간에 다른 공간을 재현하는 것과 같다. 이 작업은 <…여기에서 나가: 참전 군인 프로젝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창문 이미지를 프로젝터를 통해 전시장에 보여준 작업이다. 프로젝션이 눈속임 그림의 효과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두 작업은 같지만, 영상의 시간성을 반영하여 사건의 과정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여기에서 나가: 참전 군인 프로젝트>는 차이를 갖는다.

이 글을 통해 보디츠코의 영상작업을 분석하였다. 프로젝터를 쓰는 방법뿐만 아니라 작품들은 숨겨진 목소리를 어떻게 드러내느냐에 공통적으로 작가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지금까지 분석한 내용을 통해 보디츠코의 작업에서 프로젝션이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비추어질 지에 따라서 영상이 갖는 성격을 매우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유형의 작업을 통해 관람자는 그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 될 수도 있고 경험자의 입장이 될 수도 있다.

<참고자료>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 전시 리플렛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7)

카스야 아키코 (Kasuya Akiko), 「폴란드 현대미술과 보디츠코」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 전시 연계 강연, 2017.07.05.)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