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 물의 삼부작 2

2015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멕시코 작가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Abraham Cruzvillegas)의 전시 제목이 《자가해체8: 신병(Autodestrucción8: Sinbyeong)》이었다. 이 전시에서 전시 및 재개발 구역의 폐기물을 가지고 작품이 제작되었는데, 이 제목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해체된 물건을 가지고 작업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폐기된 물건은 그야말로 원래 목적에서 해체되어 남겨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역으로 기존의 목적에서 탈피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기회가 되기도 한다. 주변에 있는 것을 탈맥락화하여 새로운 용도로 쓰기. 자가해체라는 말이 갖고 있는 것은 이러한 물건의 사용 혹은 이용의 가능성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새로운 구축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2017년 4월 21일부터 7월 2일까지, 일본 도쿄의 긴자에 있는 메종 에르메스에서 전시 《물의 삼부작 2》가 열렸다. 갤러리에 있는 작품은 작가가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에 제작된 것이며, 영상작업에서 시, 자료 아카이브(resource room), 회화나 조각 등 다양하다. 작가는 자신의 활동에서 ‘자가구축(autoconstruccion)’이라는 개념으로 작업하는데, 이 말은 어떻게 보면 2015년 한국에서 열린 전시와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통상 말을 할 때, ‘구축’이라는 개념은 ‘해체’라는 말과 극단에 놓여 있다고 생각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는 작가의 작업에서 하나의 순환고리로 인식된다. 즉 해체와 구축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서로 맞물리면서 다른 창조의 가능성으로 나타난다. 이는 작가의 태도—그는 이번 전시에 지진, 메타볼리즘 건축, 멕시코의 전통음악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다—뿐만 아니라 관람객에게도 구축의 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림2이번 전시에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놓은 리소스 룸. 일본 요괴 책에서 메타볼리즘 건축, 심지어 아트선재센터에서 구입 가능한 도록까지 다양하게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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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케이스나 페인팅 캔, 그리고 수레가 의자로서 놓여있다.

넓은 갤러리 공간에서 관람객은 다양한 작업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간의 상호연관성의 틈을 찾으려는 시도가 가능하다. 작품과 일상용품의 경계는 이미 레디메이드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그것은 일상용품의 작품화라는 극단에서 극단으로의 이행이었다면, 크루스비예가스가 제시하는 작업은 그 극단의 모호화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작가가 체류기간에 작품을 제작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치 부리콜라주처럼 “그곳에서 어떤 것을 가지고 제작할 수 있을까?”라는 대체물로서의 이용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대체라는 말은 어떤 진품에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품과 동등한 것으로 나타나며 사용된다. 예를 들어 스크린을 쓰지 않고 박스를 쌓아놓은 것에 영상을 비추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박스로 된 스크린이 아예 거부당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림5그림6이러한 창조라는 구축의 측면에서 볼 때, 그의 작업은 어쩌면 투박해 보일지도 모른다. 아이패드 꽂이는 나사못이 들어있던 작은 상자였고, 조각 작업에는 일본 신문지가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는 다시금 구축과 해체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기능성에 대한 창조력을 발휘시키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작가는 물건을 다루면서 동시 관객으로 하여금 제목과 관련된 생각을 다시 구축할 틈을 제공해준다. 필자는 카드보드지로 된 피난처의 주거공간, 해일로 휩쓸려나간 해체와 재건의 가능성, 그리고 종전을 맞이하고 개념적으로 진행된 건축 운동인 ‘메타볼리즘 운동’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다시 얽히게 되었다.

<참고자료>
《물의 삼부작》(긴자 메종 에르메스, 2017) 전시 리플렛

《자가해체8: 신병(Autodestrucción8: Sinbyeong)》(아트선재센터, 2015) 전시 리플렛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