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추상적인 대상을 볼 때 어떠한 자연생물의 형태와 유사하다고 판단한다. 특히 사물들을 볼 때 인간형태로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신체와 매우 밀접한 인간의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행위다. 나의 작업을 오랜 시간동안 봐왔고 잘 이해하고 있는 친구에게 이번 작업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면서, 동시에 전시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도 슬쩍 물어봤다. 그 친구는 ‘옥수수 바넷’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처음엔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제목을 정하게 되었다.

 평소에 옥수수와 바넷 뉴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옥수수가 굉장히 표면적이면서 확실한 구조와 중심을 가진 식물이지만, 한편 우리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옥수수 알맹이의 비율에 비해 심의 부피가 상대적으로 너무 크며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석류의 알과 심의 구성과 같이), 이는 현재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을 동시에 가지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역사/정치/경제적인 레이어가 혼재하는 개량종이며, 그렇기에 동시대 조각의 은유처럼 느껴졌다. 또 한편, 나는 바넷 뉴먼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의 그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보니, 2012년 베를린에 체류하던 당시 신 국립미술관 앞에서 봤던 뉴먼의 조각 <부러진 오벨리스크>(1963-1969)가 홀로 고단하게 서있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피라미드 상단 꼭지점 위에 거꾸로 붙어있는 파손된 오벨리스크의 형태는 언젠간 쓰러질 것 같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동시에 마치 내 몸을 덮칠 것처럼 위협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가 서로 맞닿아 형성된 하나의 점으로 인해 그 조각은 내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2021년인 현재, 나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고 지금 다시 그의 조각들을 찾아본다. 그의 조각에서 나타나는 양가적인 측면들(삶/죽음, 승리/패배, 영원함/유한함과 같은 것들)이 내재된 그의 조각을 보면서, 오늘날 조각으로 둔갑한 디지털 조각 이미지들의 표피적인 모습에 대한 일종의 반발심이 몸 안에서 스물스물 올라왔다.

 나는 여전히 가상과 실제와의 관계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오늘의 시공 속에서 열심히 방황하고 헤매고 있는 물질로서의 조각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동안 쌓아온 고민들을 통해 손에 쥐어질 것만 같은 과거와 현재 속에 갇힌 추상덩어리들의 탈출구를 모색하고자 한다.

 

– 전시 서문 中

 

●  전시작품 프리뷰(preview)

 

●  전 시 정 보

전시명 : <옥수수 바넷 Maize Barnett>

                이충현 개인전

 전시기간 :  2021년 12월 3일 – 12월 26일 (월 휴관)

전시장소 :  카다로그 (서울시 중구 수표로 58-1 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