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의 시선을 받는다 : 레안드로 에를리치 <부재의 존재>

 

<이웃집 토토로>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의 하나이다. 몇 년 전에 토토로를 좋아하는 학교 친구한테 열쇠고리를 사가지고 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풋풋하다. 토토로는 확실히 사람과 다른, 그렇다고 해서 동물도 아닌 존재이다. 영화 <이웃집 토토로> 노래 가사에 “어릴 때에만 당신을 찾는 신비로운 만남”이라고 나오지만, 어른과 어린이를 불문하고 일본에서는 특이한 존재가 사람의 의식 속에서 함께 생활한다. 밤에 학교를 찾아가니 유령이 나왔다는 이야기나, 돌아가신 할머니가 지켜보고 계신다는 이야기는, 과학적 근거를 불문하고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어있다.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생활과 거리를 두지 않고 가까이에 존재한다.

카가와 현 메기시마(女木島)의 한 집에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의 두 작업이 설치되었다. 그의 작업은 메기시마뿐만 아니라 카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의 <수영장>이나, 니가타(新潟) 현에서 열리는 《에치고츠마리(越後妻有) 트리엔날레》에 설치된 <츠마리의 집>으로 이미 일본에 소개된 바 있다. 한국에서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로 진행된 <대척점의 항구>가 기억에 새롭다. 테시마에 있는 크리스찬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의 작품 공간은 그가 스스로 언급하듯이 “존재의 부재”를 나타낸다고 하면, 메기시마에서 전시된 에를리치의 작업은 제목이 <부재의 존재>이다.
 집 마당과 방에 각각 설치된 이 작업은, ‘그 존재’를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 <부재의 존재 – 이중으로 된 다실(茶室)>은 다다미방으로 된 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안에 들어가보면 마치 손님을 대하는 양 반석과 식사쟁반이 차려져 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관람객이라는 손님이야 말로 부재의 존재인가? 반석 위에 앉아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 하면서 둘러보았다. 숨을 죽이고, 다다미 밑에 또는 벽에 걸린 거울 뒤에 닌자가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숨어 있는 것일까? 아니다. 벽에 걸린 거울은, 한쪽 거울만 자신의 모습을 비추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모습이 비춰지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처럼 드러나지 않는 존재한테 시선을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울에 내 모습이 비춰지지 않자, 가까이 다가가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처음에 거울처럼 보인 것은 옆방으로 연결되는 통로였다. 옆방에는 똑같이 반석과 쟁반이 배치되어 있어, 그것이 마치 거울을 보는 듯이 통로 너머 보인 것이었다.
 다다미방에서 신기한 체험을 한 후, 마당으로 나와 자갈로 된 정원을 바라보았다. <부재의 존재 –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 공간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순간 자갈 위에 어떤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이다. 발자국은 흔적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어떤 존재의 실제 모습까지 증명하지 못한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사진에 대해 언급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때 거기에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에를리치의 작품에서, ‘분명히 있던’ 존재는 ‘경험적인 실제’만 드러내준다. 왜냐하면 발자국을 찍고 가는 존재는 그 모습을 감춘 채 거기를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밑에 내장된 장치가 그 발자국을 만들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 한 일화가 생각났다. 눈이 내린 산에서 어떤 사람이 길을 잃었다. 올라온 길을 다시 돌아가는 중에, 새로 찍힌 발자국이 보였다. 따라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동반자도 없었는데 말이다. 오늘날의 심령체험, 또 예전의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의 <괴담>이 그렇듯이, 경험자에게는, 경험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이야기가 신빙성을 갖는다.

 유학 초기, 일본 집에서 방학을 보내던 때였다. 이른 시간대 비행기표를 끊어서 그때는 새벽에 일어나 공항으로 가야 했었다. 자고 있다가,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를 듣고 일어났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서리가 내린 창문뿐. 어머니께 그 이야기를 드렸더니, “방학 마지막 날에 인사를 하러 오셨구나”하고 공항으로 가는 준비를 하시면서 대답을 하셨다. 에를리치가 메기시마에서 선보인 작업은 일본에 스며들어 있는 부재의 존재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근거가 없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하나의 경험으로서 강력한 근거를 갖는다.

<사진출처> ART FRONT GALLERY [http://www.artfrontgallery.com/artists/Leandro_Erlich.html]

<참고자료>
안희경,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아트북스, 2014
ラフカディオ・ハーン, 平井 呈一, 『怪談』, 岩波文庫, 1965/1
ラフカディオ・ハーン, 平井 呈一, 『心, 岩波文庫』, 1977/3
ラフカディオ・ハーン, 池田 雅之, 『日本の面影』, 角川ソフィア文庫, 2000
ロラン・バルト / 蓮實 重彦, 『映像の修辞学』, ちくま学芸文庫, 2005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