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히토 슈타이엘 인터뷰 >

(미술수첩, 2016년 6월호, no.1037, p.44-48)

듣는이 : 오오타 에마 (일어번역 : 타무라 카노코 / 한국어 번역 : 콘노유키)

[예술에 대한 정치경제의 문제]

—당신의 작업은 항상, 그때마다의 세계에 대한 관심사나 문제에 즉시 응답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키리크스(WikiLeaks)나 스노든(Snowden) 문서를 면밀히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파나마 페이퍼스 유출 사건에 관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작년에 「면세 미술 Duty Free Art」이라는 논고에서 그것에 관한 내용을 썼습니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영향은 정치 세계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는 미술의 세계도 마찬가지고 예를 들어 수입관세가 들지 않는 프리포트라고 불리는 미술작품 보관소 사례의 하나입니다. 이번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 대해 별 놀라지 않습니다. 거기에 써있는 대부분은 평소와 다름 없는 법률사무의 범주 속에 들어간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세금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느냐는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들의 법이나 영역, 전체로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미술계에 있어서, 이 사건의 중요한 부분은 문서 그 자체가 아니라, 스위스의 프리포트 소유자인 이브 부뷔에(Yves Bouvier)가, 많은 회화작품을 구입한 러시아의 부자에게 사기혐의로 소송되어 체포된 일입니다. 이 사건으로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던 여러 일이 표면화되었습니다.

—컬렉터가 구입한 당신의 작업 하나 또한 프리포트에 보관되어 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역시나 반대를 하셨습니까?

그렇진 않았습니다. 저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고, 나도 모르게 일이 그렇게 되어 있어서 유감스럽게 반대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지금 영화감독인 브로든 킹(Braden King)이 프리포트에 있는 미술품과 그것들이 보관되는 방식에 대한 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일부 그 감독이 제 영상작품을 프리포트 외벽에 투영했습니다. 말하자면 프리포트 건물이 스크린이 된 것입니다.

—예술에 대한 경제를 이야기할 때 대면해야 하는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당신 글에 자주 나오는 것처럼 예술계의 노동환경과 그에 따라 발생하는 착취의 구조입니다. 예술가들이 짧은 계약기간이나 장시간노동을 불문하고, 보수를 무릅쓰고, 단순히 작업하는 것만을 가지고 만족해 하고 다양한 창조성을 발휘하는 오늘날의 글로벌 자본주의사회 속의 이상적인 노동자라는 생각 말입니다.

예술가의 시점에서 볼 때, 그것은 어느 쪽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목적으로 이용될지도 모릅니다. 결과적으로 같은 것이면 자신이 납득되는 일을 계속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시니컬한 태도로 어떤 일도 하진 않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것은 대안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것들이 불확정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것이 어떻게 되는지 거의 예측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상한 내용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것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서, 예술가들은 저항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요?

저항이라기보다 응답이라고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저는 낡아빠진 무기를 손에 들고 이슬람 과격파 조직과 맞싸우려는 많은 젊은이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인류를 위해서 보다 평등한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 전쟁터로 갑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영웅적인 말을 하는 것을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그런 표현은 지나치게 과장됩니다. 또 최근에 자주 보는 응답은 예술가가 중소기업과 코뮌 사이에 존재하는 애매한 영역에서 실행하는 활동입니다. 그런데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에너지는 여기서 솟아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겨우 생계를 꾸려나가야 합니다. 예술가의 공동체 존재방식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자립적인 조직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지금까지의 협동단체나 조합하고 어떤 부분이 다른 것일까요? 그것은 일종의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시도입니다. 애플 사가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니죠? 역사 속에서 예술가는 노동자로서 서로 연대를 맺고 협동단체로서의 가능성을 찾아왔습니다. ‘협동조합’이라는 방식을 예로 들어보아도, 특정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협동조직이나 코뮌의 구조나 대응을 향상되게끔 갱신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피고용자나 노동자처럼 노동파업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방법은 여기서는 쓰지 못합니다. 그리고 피고용자는 모두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그 상황에서 함께 일을 해나가는 형식을 새로 발견해야 됩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구조는 당신의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동시에 당신은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숙지하고 있어, 어떤 증언이 되거나 진실이나 현실을 추구 가능한 다큐멘터리의 전제를 계속적으로 의문제기 해 왔습니다. 초기 에세이 「목격자는 말할 수 있는가? Can Witnesses Speak?」에서는 다큐멘터리라는 표현매체가 어떻게 촬영대상을 왜곡해서 전달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고 있네요.

다큐멘터리의 영역은 영화 외부로 크게 확장되어 인간의 지각마저 넘어서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록은 기계가 다른 기계를 위해 생성하는 거의 이해 불가능한 코드로 나타나는 데이터의 모음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다큐멘터리의 실천이 매우 광범위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데,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자그마치 일부분뿐입니다. 대상을 오려내는 시점의 왜곡은 언제나 일어나기 십상이며 이는 현재 뉴스보도의 구조에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여전히 유럽으로 대량으로 들어오는 난민을 다루면서 극적으로 떠들어대고 난민들은 장대한 서사를 말하기 위한 살아있는 소재로 다루어집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이미 모든 사람이 아는 이야기밖에 꺼내지 못합니다. 그 흐름에 거스른다면 침묵을 강요 받습니다.

—『11월』이나 『아름다운 안드레아』를 비롯한 작품에서 명확히 드러나듯이, 당신은 하나의 이미지가 세상에서 몇 번이나 그 모습을 바꾸어 ‘여행을 떠다니는’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에세이 「가난한 이미지를 변호하기 위하여 In Defense of the Poor Image」에서 이 이동하는 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최근 작품하고 이미지의 이동과의 관련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가난한 이미지에 대해 글을 쓴 시기가 2007년이었고 그때는 온라인 상에 허술한 이미지가 가득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런 이미지는 역시나 많이 있지만, 주로 화소수가 거칠었던 정도로 정의된 것과 또 다른 추세입니다. 그 글은 그때 쓰인 것이라서 보편적인 진실이 아닙니다. 다만 그 당시 인터넷을 써서 영상을 보내는 것이 겨우 가능해져서 송신할 때 대량으로 픽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미지가 인터넷 상에 확산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운받고 편집하거나 보충을 해서 다시 인터넷 상에서 공유하는 경험은 그때까지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어서 매우 흥미롭게 느꼈습니다. 지금은 상황도 껴안은 문제도 다릅니다. 인터넷 상을 날아다니는 화질이 악화되는 것은, 한 장의 이미지도 1000만 장의 이미지도 아닌, 100억 장의 이미지입니다. 매년 몇 장이나 되는 사진 이미지가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되고 있을까요. 그렇게 되면 문제가 되는 것은 필터링입니다. 말 그대로 받아들인 뜻도 미학적인 뜻 둘 다 모두, 이미지로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는 필터가 존재합니다. 인터넷 상의 이미지의 99.9퍼센트는 너무 적은 열람수밖에 차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필터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 이미지들은 마치 어둠의 덩어리입니다. 어떤 것이 필터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들은 어떻게 생산되고 어떻게 기능하고 있을까요?

—이미지와 오브제의 관계는 페미니즘 논의와 명확히 관련이 깊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스트로 다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나 조디 딘(Jodi Dean) 등 여러 평론가가 쓴 초기의 논고는 인터넷과 새로운 기술이 가부장제에 종말을 고하고 여성의 권한을 획득하는 매우 긍정적인 해석을 제시해왔는데, 이것들은 결국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였던가요?

그 평론가들의 논고는 정말 좋아하는데, 다나 해러웨이에 대해 말하자면 세계가 인터넷에 대해 보다 더 낙관적인 시각을 가진 시기에 활발하게 집필활동을 했습니다. 지금은 같은 상황이라 말하지 못해서 다소 어렵긴 하지만, 그 글에 담긴 의욕은 전력 지지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존재하는 테크놀로지의 틀 속에서 가부장제의 종말을 나타내는 어떤 것도 찾지 못한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날의 테크놀로지가 이전 테크놀로지보다 적합한 것이라 말할 수 없지만, 여성은 여태까지 수많은 방법을 써서 가부장제에 저항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술관과 분쟁지역]

—당신은 전투나 내전, 군사화 문제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테크놀로지뿐만 아니라 미술의 구조 자체를 고찰하기 위한 것이죠?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에서 우크라이나의 분쟁 지역을 조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지역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또 어떤 접근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까?

저는 우크라이나 전문가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냥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싫었습니다. 제가 알고 싶었던 것은 3D 제작에서 누가 스웻샵(sweatshop, 노동착취공장)을 운영하고 위탁노동을 청부 맡아서 하고 있는지입니다. 요즘은 상점도 부동산도 광고, 게임, 온라인 도박도 3D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세계에 사는 누군가가 그 모델링을 하고 훌륭한 거리 모습을 랜더링하는 매우 지루한 노동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 저는 해외기업의 하청 산업이 가장 활발한 인도 아니면 필리핀으로 도달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가 세계 3위로 3D 제작을 많이 주문을 받는 나라라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분쟁지역이 아니더라도 침략의 공포가 존재하는 영역에서 일을 하는 기업이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서로 전혀 다른 상황에서 생활하는 노동자가 구미의 소비주의가 갖는 꿈을 영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것인지. 이것을 가시화하려고 시도합니다.

—이미지의 지배적인 권력을 생각할 때 책임의 문제는 중요해서, 예를 들어 미술관을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비디오 렉처 형식으로 발표하신 <미술관은 전쟁터인가?>(2013)나 최근에 온라인 저널 ‘e-flux’에 올리신 에세이 「인도(人道)에 탱크 : 지구의 내전시대의 미술관 A Tank on a Pedestal: Museum in an Age of Planetary Civil War은 미술관과 전쟁, 무기거래의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당신이 말하는 ‘새로운 레벨의 조직 비판’인 것입니까?

‘이 미술관은 기업A, 기업B, 기업C가 후원자입니다.’ 이렇게 제시하는 것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술관이나 소위 말하는 여러 선진국의 일상 속에 흔한 현실이 이 지구의 어디 또 다른 장소와 연결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현실의 이면에는 다른 현실이 있고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동시에 완전한 타자, 이물질, 공포로 간주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현실은 서로 의존하는 관계입니다. 그것들 사이를 인간이나 물건이나 이미지의 흐름이나 발상의 에너지가 오갑니다. 사람들의 일상적 현실감의 동시다발성, 공존성을 밝혀내는 틀을 찾는 것은 아주 재미있고 또 필요한 일이라 느낍니다. <태양의 공장>은 여러 테크놀로지의 세계와 사람과 신체 사이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이동하고 추이하는 것, 그리고 여러 장소 사이를 수평적으로 전이하는 시점에서, 이와 관련된 것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특집 기사 「컨템포러리 아트 프랙티스」에서는 행위의 하나로서, 또 사회를 이해하는 활동에 대한 ‘실천’에 대해 고찰합니다. 이 주제를 작가 본인의 작업과 연관시켜서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또 이 주제는 현대사회의 어느 부분에 위치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대미술은 단순하게 사회를 비춰내는 것도 아니라 편집적인 오브제가 아무 이유 없이 놓인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술은 하나의 행위 주체이며, 세계에서 여러 양상을 보이고, 경우에 따라 좋지 못한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수입(收入)의 불평등을 확대시키거나 돈세탁에 이용되거나 과세를 회피하는 것처럼 말이죠. 구원이라 볼 수 있는 것은 컨템포러리 아트 프랙티스가 정말 행위주체라면 혹은 이런 행위주체적인 일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이런 상황을 전복시킬 수 있는지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다소 직접적인 행위나 고찰, 활동, 교육 등으로 가능해질 것이라 생각되지만,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자율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자기나름의 계획이나 실천을 생각해 내는 것이 현 시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일 오픈된 방법입니다. 모든 행위를 예술로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예술이라 칭하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불리지 않은 것도 불편합니다. 그것을 결정해주는 것은 역사 즉 역사의 우발성입니다. 혹은 예술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밝혀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