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ening the pressure that surrounds you
april 30 – june 25, 2016
Sprüth Magers Berlin

http://www.spruethmagers.com

 

티어 드졸자다(Thea Djordjadze, 1971-)는 현재 베를린에서 거주하며, 작업 활동 중이다. 그녀는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작업을 선보였으며, 최근 2015년 제 56회 베니스 비엔날레, 2012년 제 13회 카셀 도큐멘타, 2008년 제 5회 베를린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이번 전시는 베를린에 위치한 슈프뤼트 마거스(Sprüth Magers) 갤러리에서 4월 30일부터 6월 25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Thea Djordjadze_1

실내는 실존적 상징주의의 장소로, 아이와 세계간의 충돌이 처음으로 발생하는 지점이다. 또한 우리와 세계 사이의 공간을 표시하면서, 문화사와 개인적 삶의 침전물이 축적되는 곳이기도 하다. 몇몇 동시대 예술가들은 매우 독특하고 색다르게 실내의 실존적 경험을 탐구한다. 그 예로 드졸자다는 구성적인 요소를 직관적인 배치로 결합하여 확장적 설치 조각을 선보인다. 그녀가 사용하는 재료의 범위는 일상적인 것부터 고상한 것까지, 그리고 단단한 목재와 강철 구조부터 무정형적인 플라스터(plaster), 직물, 거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이러한 오브제들 중 일부는 그녀의 작업을 관통하면서, 한 전시에서 다른 전시로 재사용된다. 그녀의 설치는 뛰어난 심리적 깊이와 특유의 물리적 효과로 관람객에게 독특한 영향을 미친다.

Thea Djordjadze_2      Thea Djordjadze_3

그녀가 실내를 다루는 데 있어 보여주는 세심한 내러티브는 이번 전시의 핵심이기도 하다. 첫 번째 설치의 전시 공간을 채우고 있는 매혹적인 빛을 관람객들이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이 빛은 창문에 설치된 플렉시글라스판을 통해 투과된다. 또한 청색, 황색, 녹색, 때로는 붉은 색상의 엷은 안개를 자아내기 위해 창문에 구아슈와 주택용 페인트를 섞은 물감이 반투명하게 칠해져 있다. 그 효과는 미묘하지만, 공간을 인지하는 데 결정적이며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관람객의 인식에 미치는 근본적인 영향은 그녀의 다른 공간의 개입에서도 잘 드러난다. 두 전시 공간은 광택이 나는 스테인리스 강판 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그녀는 매끄러운 전환을 조성하기 보다는 고광택과 반사되는 표면을 사용해 관람자로 하여금 방향 감각을 상실시키는 특정 감각을 유발하게 함으로써 관람자들이 터널을 통과하는데 망설이게 한다. 또한 가공되지 않은 나무 합판의 정교한 구조물은 대형 쇼룸보다 축소된 규모로 집 같이 아늑하게 설치되었다. 이 구조물의 벽은 유기적인 표면을 지닌 채 전시장 절반 높이로 박물관과 같은 전시 공간의 양 측면까지 이른다. 이 목재 벽을 따라 플렉시글라스판을 설치하였는데,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그 벽에 반사된다. 벽에 세 개의 창문의 형상을 한 조각은 피아노 경첩이 연결된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강판으로 만들어졌다. 이 창문은 방 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변형시키며, 또한 특별한 형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멀리서 보면 창문 셔터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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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의 작업에서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설치 요소들을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는 직감과 함께 뒤섞는다. 페인트칠이 된 유리 오브제는 2008년 베를린 신 국립 미술관(Neue Nationalgalerie)에서 보여준 그녀의 개입을 상기시킨다. 녹이 슨 실내의 두 개의 어두운 벽조각은 회화의 얼굴을 하고 있다. 마호가니 틀에 채워진 회반죽 덩어리인데, 그 표면은 대충 칠한 듯한 페인트 잔여물로 뒤덮여있다. 이는 회화인 동시에 조각인 것처럼 보인다. 또한 불안정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가구를 연상시키는 오브젝트나 공간에서 입체적인 드로잉처럼 보이는 짙은 색의 강철 구조가 그녀의 대표적인 오브제임을 알 수 있다.

이 공간에 있는 모든 것은 물리적 현존이 물씬 느껴지는 동시에 여전히 추상으로 남아있다. 이곳은 유기체와 풍경으로부터 단절된 실내다. 그래서 실내는 다양한 시간의 장과 지각의 층위가 어우러지면서 다른 장소들의 울림과 기억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내에 배치된 그녀의 오브제들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묘사하기 어렵지만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는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공간 자체에 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불협화음을 내는 재료들과 이들이 가져다주는 광범위한 효과들은 일상생활에서 쓰는 오브제들이 처음으로 예술이 되는 길을 모색하던 시기인 근대 초에 사용된 브리콜라주, 아상블라주, 콜라주의 언어를 가정한다. 그녀의 설치는 시각적 투명성과 개체 고유의 온전함에 도전함으로써 건축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그렇기에 그녀의 설치는 건축사,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사이에서 동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평행선은 결코 끝나지 않으며, 참조물들은 단지 단서에 지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기억의 무의식적 발현 그 이상인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녀의 설치는 일시적인 것과 실내 고고학의 장소특정적인 개념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실내는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으며, 관람객 자신이 공간을 어떻게 이동하는지 자각하게 해준다. 또한 실내가 가진 문화적 관습을 해부하고, 대신 우리의 집단적 꿈으로 가득 채워진다. 이처럼 그녀의 설치로 꾸며진 실내는 오브제의 안정감과 부서지기 쉬운 특성이 우리의 직관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개개인 정신의 투영을 실패로 끝나게 할 뿐이며, 관람객들을 지도제작자와 같이 방을 측정하게끔 한다.

그녀의 미학은 실내와 관련해 알고 있는 모든 경계를 흐리고, 근본적으로 오브제와 오브제 아닌 것이 될 수 있는 것, 모방과 추상, 결과와 과정, 안과 밖에 대한 분명하고도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사실에 혼란을 가져다준다. 그녀는 과거와 현재, 참여와 상상의 진실을 파헤쳐 봄으로써 관람객들이 지닌 인식의 경계선을 탐구한다. 결국 그녀는 예술에서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 심리적인 공간을 탐구함으로써 그녀의 프로젝트는 변형적인 시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에디터 황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