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국소성(Nonlocality)과 인공적 자기유사성(self-similarity)의 중간쯤에서

 

김주옥(홍익대학교, 예술학)

 

강정윤 작가는 2013년, 2014년, 2017년 개인전 이후 2021년 네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강정윤 작가의 작업을, 거두절미하고 필자는 비국소성(nonlocality)과 인공적 자기유사성(self similarity)의 측면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2013년 <<Sequence Structure>> 전시에서 강정윤 작가는 일률적인 형태의 공동주택인 아파트에 사는 자신의 경험을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형태를 통해 표현하며 현대 사회와 아파트의 관계를 판옵티콘적 시각에서 해석하였다. 작가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 후 2014년 <<Surveillance Structure>> 전시에서 본격적으로 ‘감시 구조’에 대해 말하며 발전하는데, 이때부터 공간과 시선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2017년 지난 개인전인 <<Reproduction Structure>>에서는 이전부터 계속 된 ‘Structure’라는 제목에서도 보이듯 끝없이 이어지고 확장되는 동일한 형상의 반복으로 표현하며 익명의 시선을 감내하고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표현했다. 작가의 전체 작업을 보았을 때 형태적으로는 반복되고 비슷한 구조, 그것을 지켜보고는 시선, 숨겨진 감시의 시선과 이미지로 드러나는 피감시자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 작가는 일상의 삶과 태도를 생산하는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작가가 작업을 통해 말하고 있는 일상과 감시의 측면은 비슷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같은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서사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마치 픽셀의 한 부분을 메우고 있는 한 조각의 인생은 멀리서 떨어져 보면 단지 전체의 매우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을 역설할 수도 있다. 작가는 훔쳐보는 대상과 보임의 대상을 구분하지 않는다. 2021년 신작인 <시선의 습관>에서는 CCTV의 감시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실시간으로 관객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CCTV 영상으로 송출되며 거울과 특수유리를 통해 무한히 복제되는 방식으로 영상 이미지가 표현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작가가 복제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복제된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감시의 시선은 순환되는 동시에 바라보는 자와 바라보이는 자 사이의 관계를 순환시킨다.

 

 

아파트형 주거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창문을 통해 노출되면 우리는 그 광경을 볼 수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결국 그 안에 있는 대상은 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별반 다르지 않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고, 그로인해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상적 보여지기>에서 아파트의 공간들을 지켜보는 시선의 주체 역시 비슷한 아파트 공간에 살고 있거나, 또는 다른 아파트 건물에서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노출은 현재 자발적으로 제공되고 있는 개인 정보의 유출의 맥락에서 고민해볼 수 있는데,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매일같이 어디에서나 나의 행적을 알리고 있다. 특히 어느 순간 익숙해진 QR 코드(Quick Response code)의 사용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정보무늬를 통해 바코드의 제한된 용량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 자신의 더 많은 정보를 담아낸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의 디지털 정보로 기능한다. 따라서 이 감시정보는 반복되고 확장될 수 있다. <시선의 연속> 작업에서는 국가기관에서 제공하는 CCTV 영상 정보를 수집하여 수백 장의 이미지를 조합한 후 QR 코드 이미지와 합성하여 출력한 후 라이트 박스로 제작하였다. 코로나 시대에 익숙해진 QR 코드는 우리에겐 마냥 추상적인 이미지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이처럼 과거에서 이어져 2021년 최신작에서 볼 수 있는 강정윤 작가의 작업 세계는 형태, 형상, 구조, 전체와 부분을 아우르며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교호적(reciprocal)인 동시에 상호의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작가는 외부 구조의 형태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그 안에 있는 내부, 부분이 어떻게 외부, 전체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상호성’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 원리에 더 다가가고자 물리학에 빗대어 이야기해볼 수 있다.

 

 

본래 과거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의 기본 원리는 원격의 상호작용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고 이를 ‘국소성의 원리(principle of locality)’를 통해 증명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의 ‘불확정성의 원리(uncertainty principle)’ 그리고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 해석에서는 양자현상의 국소성의 문제가 검토되며 원격 작용이 실존할 수 있다는 ‘비국소성(non-locality)’ 개념이 이야기 되었다. 하나의 작인이 ‘국소적(local)’으로 연속 작용되는 것이 아니라 작인이 연속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원격상태(remote state, state at distance)를 ‘비국소적(non-local)’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김영수 연구자에 의하면 이는 두 객체의 상호작용은 어떠한 작인의 매체가 존재하지 않아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원격 상태의 다른 공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어떠한 객체간의 상호성이 발견된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필자의 예시가 정확하게 대칭되는 비유가 아닐지라도 이러한 물리학적 해석은 강정윤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전자 감시의 시선이 어떻게 원격 감시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탐색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서로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 구조를 파고 들어가 보면 비국소성과 상호성의 측면이 비유적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작가가 집의 구조를 각인한 후 아크릴 레이어와 LED를 통해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과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 것이 왜 바라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인지를 암유(暗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작가의 작업에서 다루고 있는 전체와 부분은 어쩌면 서로 관계없어 보이지만 원격 감시를 통해 부분과 전체가 연결되는 프랙탈(fractal)적 자기유사성의 측면과도 연결지어 설명해 볼 수 있다. 브누아 망델브로(Benoît Mandelbrot, 1924-2010)는 어떤 부분을 확대하면 그 부분이 전체의 일부이자 닮은꼴을 보여준다는 ‘자기유사성(self similarity)’을 프랙탈 기하학(fractal geometry)을 통해 수학적으로 설명했는데, 이는 프랙탈 기하학의 특징으로 어떤 상의 특징이 같은 비율로 축소되거나 확대될 수 있다는 자기 근사성(self-affinoty)을 보여준다. 프랙탈은 부분들의 형태가 전체의 모습을 축소하고 있는 기하학적 형태이기 때문이다. 강정윤 작가의 작업을 프랙탈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만델브로가 구조적 불규칙성을 정량적으로 기술하고 분석하기 위해 프랙탈 기하학을 제안했듯이 비예측적 혼돈상태를 체계적인 방법으로 사유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김지면 연구자가 설명하듯이 자연계 형태의 불규칙한 정도도 그 안에서는 규칙이 내포되어 있는데 복잡한 구조 속의 작은 부분은 그 내부의 전체구조와 똑같은 복잡한 구조를 포함한다. 또한 이러한 원리를 부분론과 총체론적(holistic) 세계관으로 살펴보자면, 모든 것은 그 자신의 부분이라는 재귀성과 어떤 사물의 부분의 부분은 그 자체가 그 사물의 부분이 될 수 있다는 이행성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강정윤의 작업에서 보이는 구조물의 반복된 형태는 그것이 계속 이어져 개개인의 삶을 구성하고 또한 개개인의 삶의 풍경이 전체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모습과 비교해볼 수 있다. 이는 인공적 풍경 속에서 만들어지는 자기유사성의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는 바라보는 사람-보이는 대상 간의 차이뿐만 아니라 전체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전체의 일부이자 그 일부 자체가 전체가 되는 계속해서 발생하는 풍경 속, 자기 닮음의 비유로 혹은 부분과 전체가 사실은 하나인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 참고문헌

• 고승학, 「화엄사상에서 ‘부분’과 ‘전체’의 의미」, 『철학논총』, Vol. 88 (2017), pp. 393-412.

• 김영수, 「비국소성 원리의 연역과 실험적 형이상학」, 『인문연구』, Vol. 42 (2002), pp. 19-50.

• 김지면, 「현대 시각언어의 기하학적 표현에 관한 연구-프랙탈 기하학 이론을 중심으로」,

             『한국디자인포럼』, Vol. 12 (2005), pp. 11-20.

•. 나이젤 레스므와 고든, 윌 루드, 『프랙탈 기하학』, 이충호 옮김, 김영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