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Anthropometry>, 2018. 폴리우레탄, 나무, 석고. 

 

 

   

     여기저기 절단되고 조각조각 이어 붙여진 채 중력을 거스르고 있는 이병호 작가의 인체 조각은 관습화된 조각들과는 무언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인체 조각의 완결성 및 재현적 맥락을 탈피하고자 하는 그는 조각을 복제하고 접합시키고 분절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해나감으로써 완결이라는 마침표를 찍지 않은 상태의 조각, 즉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간 위에 작품을 놓는 작가이다. 인터랩에서는 이러한 이병호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보고자 한다. ✻ 이병호 작가의 전반적인 작품 이미지는 맨 아래의 작가 홈페이지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아래부터 에디터는 E, 이병호 작가님은 L로 표기하였습니다. 

E. 인체를 소재로 꾸준히 작품을 해오셨는데요, 형상이 보여주는 포즈와 분위기, 새하얀 표면이 마치 고전주의 인체 조각을 연상시키면서도 그것과는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L. 우선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제 작품은 조각의 한계점이라 볼 수 있는 고정적 성질에 관한 지속적인 고찰 아래 시작됐습니다. 조각가들이 오래전부터 극복하고자 했던 움직임의 제한성, 다시 말해 정지되고 완결된 작품이 아닌 변화하는 무언가를 조각으로 구현해내는 것에 관해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를 위해 초기에는 고전주의 조각을 모티브로 삼은 인체 조각을 실리콘으로 제작하여 그것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고전주의 조각을 살펴보면, 조각의 표면은 완성단계에서 그 형태가 고정되므로 이후에는 변화가 불가합니다. 따라서 손상 혹은 파손될 경우에는 완성된 그 시점의 형태로 복원하려 함으로써, 가능한 한 온전히 그 형태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조각에서의 완성이란, 형태를 깰 수 없는 완결된 단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통념을 깨보고자 고전주의 시대의 조각을 복제하여 작품으로 활용했습니다. 작업 초반에는 작품의 재료로 실리콘을 선택하여 얇게 캐스팅(casting)한 후 마감에 사용했는데, 이는 시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로서의 견고한 조각의 표면을 하나의 껍질이라 여기고 움직일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형태를 변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더불어 표면적인 것이 아닌볼 수 없는 영역의 무언가를 드러내기 위한 방식으로 매체를 활용하였습니다. 제 작품에서는 그 볼 수 없는 영역이 실리콘 조각 내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외부 형상 그 이면에 있는 형태를 드러내 줄 수 있도록 내부 공기를 빨아들여 조각의 표피가 내부조각에 달라붙을 수 있게 했습니다.

 

 

 

이병호, <Seated Figure>, 2019. 실리콘, 공기압축기, 철, 검은 물, 240x150x190cm.

 

 

이 실리콘 작업의 경우, 스스로 생각하기에 조각의 내부에는 변형이 가해지지만, 외부적으로는 기존의 고전주의 조각이 보여주던 고정적인 형상은 변함없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주어진 공간 내에서 조각이 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에 관한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나름의 답으로 원형을 만들고 그것을 복제, 분절, 접합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작품을 확장해나감으로써 정적이고 고정적인 외형에 관한 고민을 해소해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장미꽃을 조각한 <Party>(2015)로 머리, 줄기, 잎 등의 부분을 분절하여 여러 개로 복제하고 이를 각기 조금씩 틀어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취했는데 전체적으로 볼 경우, 장미꽃은 하나의 동일한 형태와 요소가 확장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방식을 기존의 인체 조각에 접목해 보았습니다. 정적이고 공간적으로 한정적이었던 인체 조각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분절과 접합의 방식을 택한 것이죠. 우선 원형에 해당하는 인체 틀을 제작하고 그것을 복제한 후 절단합니다. 이때 절단을 통해 외부에 드러나는 면이 아닌 내부에 해당하는 잘린 면이 노출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저는 볼 수 없었던 내부의 것이자 자르는 동시에 표면, 즉 외부의 것이 되는 것을 구현해내고 동시에 분절과 접합의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지속적인 확장을 실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병호, <Following Adam’s Pose>, 2020. 폴리우레탄, 나무, 와이어, 철, 석고, 235x285x240cm.

 

 

 

E. 분절과 접합을 통해 거시적으로는 정지된 것으로 대변되는 조각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과정에서 혹시 인체를 주요 소재로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 것 일까요?

L. 사실 조각이라는 장르는 소재와 표현 방식에서 꾸준히 변화해왔죠. 특히 로댕 이후부터 추상 조각이나 그 외 조각의 확장된 형식으로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크게 보아 하나의 큰 변화의 흐름으로 설정한다면, 저의 경우 그 변화의 시작점에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시도했습니다. 고전주의 인체조 각의 형태는 유지하면서 그것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하나씩 제거해 보려 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조각에서 재현의 문제라던가 포즈에서 엿볼 수 있는 중력 같은 것 말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시작한 작업에서는 미켈란젤로부터 까미유 끌로델 사이에 제작되었던 조각들, 특히 군상 조각들의 형태를 제 작업으로 끌어들였는데요. 여기서 형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 포즈만을 따온 후 2017년도부터 해오던 제인체측정작업의 방식을 제작 방식으로  삼았습니다. 여럿의 군상을 분리해 따로 떼어놓고 이를 재조합하여 설치하였는데, 이는 고전주의 조각의 군상들이 가지고 있는 맥락을 지우고 재배치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E. 그렇다면 혹시 로댕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부분이 있는 지 궁금합니다.

L. 로댕 이후에 나타난 조각사를 살펴보면 구상 조각의 명맥이 없어져 갔는데요. 저는 로댕이 작업을 마감하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 그가 계속 작업을 진행했다면 어떤 고민을 했을지에 관한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로댕은 아상블라주 제작방식을 창안하여 자신의 작품을 재조합하면서 기존의 맥락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새로운 조형을 얻었고, 이 과정에서 잘리고 떨어져 나간 작품의 조각조각들을아바티(abattis)’라 일컬었습니다. 저는 이러한아바티의 잘라낸 행위에 집중하고 이를 제 작업으로 가져와 보았습니다. 로댕이 필요 없다고 느낀 조형을 잘라내 새로운 조형미를 얻었다면, 저는 동세에 지속적인 변형을 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형상을 절단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제 작업, ‘인체측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다양한 동세를 얻기 위해 로댕의 아바티보다 더욱더 많은 횟수의 분절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제가 자른 조각상의 세분된 조각들은 재조합하지 않으면 추상적인 덩어리로 보이기도 하고 구상적인 인체의 형태가 살아있기도 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 잘린 기이한 덩어리들을 ‘essentric abattis’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로댕의 ‘abattis’가 형태와 밀접하다면, 저의 ‘essentric abattis’는 움직임과 밀접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병호, <Anthropometry>, 2019. 폴리우레탄, 와이어, 나무, 석고, 가변설치, 부산시립미술관 전경.

 

 

 

E. 조심스럽지만구상 안에서 분절이 계속되다 보면 이 역시 결국은 추상조각과 동질성을 갖게 된다거나 조각의 소멸, 파편화라는 결론에 닿게 되는 것은 아닐지 궁금합니다.

L. “구상의 형태 안에서 보여준다라는 말의 의미는 구상 조각의 범위 안에서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제 작품을 살펴보면 2018년도의 작품에 2019년도에 부산에서 작업했던 아바티들을 접합시키기도 하고, 어떤 부분의 경우 표면을 다 긁어냄으로써 돌처럼 변모하게 되기도 합니다. 다른 타임라인에 놓인 것들을 하나로 붙이기도 하고 단순화하기도 하면서 구상에서 추상으로 가는 과정 안의 형태가 한 작품에서 모두 드러나게 됩니다. 계속 변형이 된다면 완전한 추상이 될 수도, 소멸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 형태 안에서 구상주의를 덧붙이기도 하면서 형태는 계속 변해갈 수 있습니다. 어떤 방향이든 완성형의 형태가 아닌 과정을 다 보여주는 것을 바라고 있기에 저는 형태의 조합 과정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한 예로써 《인체측정(Anthropometry)》展(2017)의 전시작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이브 클라인(Yves Klein, 1928-1962)인체측정학연작에서 따온 것입니다. 인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 재현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그는 인체에 페인트를 칠하여 행위가 그대로 이미지로 드러남으로써 회화처럼 보인는, 재현하지 않으면서 재현하는 그런 회화를 만들어냈죠. 저 역시 그의 작품 제목에서인체측정이라는 단어를 가져옴으로써 구상 조각임에도 재현에 입각한 조각이 아닌, 재현하지 않지만 재현되어서 만들어진 조각, 이것에 초점을 맞춰서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즉 도상의 형태를 가져오지만, 도상의 인물까지 재현을 해서 가져오는 것은 아닌 것이죠.

 

 

 

이병호, <Two Shades>, 2020. 폴리우레탄, 나무, 와이어, 석고, 143x135x205cm.

 

 

 

E.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작품 혹은 전시 계획에 관해 알고 싶습니다.

L. 제 작업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지속해서 과정 중에 놓여있다고 했기에 이와 관련된 작업 혹은 그런 과정 안에서 부수적으로 생겨날 작업에 관해 구상 중입니다. 더불어 조각의 표면에 관해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작업 역시 진행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구상 조각이 분위기상 오랜 시간 동안 정체되고 있는 상태란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그것들에 관해 더 흥미가 가는 것 같습니다. 나아가 단순히 형태의 유무보다는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이유나 추상으로 가는 방법론 등에 대해 고심해보고 그런 부분들에 맞춰서 작품의 나아갈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네요. 

E. 구상 조각 특히 인체 조각의 경우, 인간의 신체 형태라는 고정된 범위에 따른 한정성 및 재현에서 비롯되는 제한성으로 인해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보니 구상과 비구상을 분류하여 사고하는 것보다 더 근원적인 부분에 관한 고찰과 다양한 시도를 통한 실현으로써 구상 혹은 인체 조각의 범위를 또 다른 방향으로 확장해 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아가 작가님이 보여주시는조각의 고정적 성질에서의 탈피라는 부분이 조각의 단면이 되었든 그것이 내부에 위치한 특정 형태로든, 껍질에 해당하는 표면 그 이상의 총체적 이면을 드러내려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앞으로의 작업을 어떤 식으로 진행하여 보여주시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오늘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바쁜 스케줄과 사회적 상황으로 진행이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신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ditor. 박 은 경

 

 

 

 

• 학 력

  2010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대학원 졸업

  2004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 전 시 경 력

개 인 전

2020  Three Shades (스페이스 소, 서울)

2018  Statue X Statue (상업화랑, 서울)

2017  Anthropometry (스페이스 소, 서울)

2016  Le Vide, 공의 영역 (갤러리 기체, 서울)

2015  Party (트레저힐 No. 13, 크로스갤러리, 타이페이, 대만)

그 룹 전

2020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비조각: 가볍거나 유연하거나

2019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0  반복과 차이: 시간에 관하여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20  잔의 깊음 (수애뇨339, 서울)

2020  신소장품 선選 (서울시립미술관 – 남서울관, 서울)

 

● 작가 인스타그램    http://instagram.com/leebyungh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