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소 현

 

TheSHELL_1 , mixed media, various size, 2020

 

TheSHELL_2 , mixed media, various size, 2020

 

 

본 작가가 관찰과 주목의 대상으로 내세운 껍데기이자 프레임(틀)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파레르곤(parergon) 개념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

파레르곤이란 ‘소위 장식이라고 하는 것, 단지 옆에 부수적으로 부착되어 있는 것으로 대상의 완전한 표상에 내재적 요소가 될 수 없는 것도, 오직 형태로만 취미의 만족을 증가시킨다.’ ,작품을 칭하는 에르곤(ergon)은 파레르곤과 반대인 바깥에 관한 개념으로 ‘장식적인, 외부적인 혹은 부수적인 대상’, ‘보충’, ‘옆의’, ‘나머지 부분’으로 번역된다. 회화의 액자, 조각품의 좌대와 같이 작품의 외부 틀이 바로 파레르곤이다. 파레르곤은 에르곤, 즉 완성된 작품에 반대되며, 옆에 있으며, 동시에 부착되어 있지만 어느 한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작품 구성에 관여하고 작품의 구성요소로 작용한다. 바깥도 아니고 안도 아닌 것. 이것은 경계이다.

 

비디오 테이프와 아날로그 TV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현재 잘 이용되지 않는 버려진 껍데기가 되어버린 존재이다. 비디오 테이프와 케이스에 대량생산의 사회에서 생활 속 끊임없이 생산되고 폐기되는 상품의 포장 박스들을 기록한다.

포장박스는 에르곤인 상품을 보호하는 기능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상품의 판매를 촉구하고 현혹하기 위한 파레르곤이다. 하지만 이 에르곤이 소멸되고 난 후 소장 가능한 것은 파레르곤이다. 에르곤의 흔적이 묻어 있는 파레르곤은 에르곤이 존재 했음을 기념하고 에르곤과 함께한 시간을 회상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아날로그 TV속 영상은 에르곤을 제거한 후 파레르곤을 소개한다. 이로써 파레르곤이 본질 적인 것(에르곤)으로 뒤바뀐다. 또한, 상품의 파레르곤인 상품 박스를 다시 판매 가능한 케이스의 포장지에 위치시켜 새로운 파레르곤을 부여한다.

파레르곤에 해당하는 대상을 소장할 것을 주장하는 이 작품은 적극적으로 파레르곤의 존재를 부각하여 기존에 자리했던 위치를 이동시키며 틀에 갇힌, 고정관념을 해체한다.

 

 

 

TheSHELL_3 , mixed media, various size, 2020

 

TheSHELL_4 , mixed media, various size, 2020

 

TheSHELL_5 , mixed media, various size, 2020

 

TheSHELL_6 , mixed media, various size, 2020

 

 

 

작가 노트 중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껍데기를 남긴다. 이 껍데기는 본래의 기능을 잃은 후의 잔여물을 의미하기도 하고 중요성이 높은 핵심을 보호하고 있던 겉껍데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껍데기들은 버려야 할 것, 쓰레기, 죽음을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껍데기를 마주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함을 이 작품을 통해 주장한다. 소비 후에 생산되는 껍데기는 소비의 증거물이 된다.

속이 사라졌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속은 스쳐 지나가지만, 오히려 소장 가능한 것은 껍데기이기 때문이다. 껍데기는 속을 소비하던 지난날들을 회상시켜줄 수 있다. 결국, 껍데기는 지나간 시간을 위로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