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수, <Liquid Memory>, 2020. 발견된 오브제, 깃철, 실, 모터, 글리세린, 염료, 방울, 가변크기, 설치전경. 

(*동영상 / 더블 클릭으로 확대 가능)

 

 

 

     인터랩에서는 지난 7월 말까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기술’에 관하여》 전에 참여한 한진수 작가를 인터뷰하였다. 그는 로우-테크놀로지(low-technology)를 기반으로 한 키네틱 인스톨레이션(kinetic installation) 작업을 진행하는 작가로, 조형물에 움직이는 장치를 도입함으로써 그것을 끊임없이 이어지는 진행형, 즉 ‘-ing’ 상태로 존재도록 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작품을 대면함에 있어 결과론적 접근이 아닌 시간의 흐름 위에 있는 작품의 과정적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 한진수 작가의 전반적인 작품 이미지 및 작가 CV는 맨 아래의 작가 홈페이지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Q 1. 선생님께서는 본래 조각을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조각 작품을 기준 삼아 생각해볼 때, 보편적이고 친근한 물성의 재료가 아닌 기술을 요하는 기계를 다루기로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치를 사용해 그것들의 움직임을 작품에 활용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1. 전통 조각을 좋아하였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렇다는 것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존의 조각보다 확장된 작업을 해나가고 싶어 비물질적인 소재를 다뤄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시간’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면서 고정된 이미지가 변화를 겪음으로써 끊임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고정적인 것이 있을까요? 그런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고장 나고 낡을 수밖에 없는 장치들과 그것들이 차차 변화하는 과정들을 통해 결과보다는 시간의 흐름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죠. 기존의 것들은 지나간 것으로 결정되었기에 발견 가능한 익숙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떠한 명작이라 하더라도 현재를 기준으로 볼 때 그것을 더는 진보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그런 것보다 오히려 작품이 끊임없이 변해가고 고정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비고정적인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멈춤 없이 흐르는 세계에 대한 솔직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Q 2. 말씀해주신 것처럼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식물과 같이 자연적 요소를 사용할 수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그런 방식보단 기계를 활용하여 그 흐름을 더 빠르게 보여주게 된 이유가 있을지요?

A 2. 자연적 요소에서 느껴지는 익숙함이 중요하긴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시지각상 한계가 있기에 인지할 수 없는 정도의 변화에는 익숙해집니다. 즉, 변화에 무신경해짐으로써 움직임이란 것이 사라져버렸다고 느끼게 되죠. 실은 끊임없는 움직임에 있음에도 많은 사람이 멈춰진 세계에 살고 있으며 오늘과 내일의 내가 동일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매일 늙어가는 내 모습을 보더라도 그 흐름이 아주 느리기에 딱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죠. 따라서 안 움직여야 하는 것이 움직이거나 그럴 일 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 오히려 환기력이 강해집니다. 그렇기에 원하는 말을 할 수 있는 모멘트(moment)를 생성하는 데 있어서 키네틱은 굉장히 적극적인 방식이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간은 시지각 중에서 움직임을 지각하는 것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예를 들어 동물들을 살펴보면 색맹인 동물도 있습니다. 먹이 혹은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색보다도 움직임이 중요한 것이죠.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색의 경우 자극을 받고 느끼는 바에 있어 각자 차이가 있고 각자 미세한 차이에 관해 논하게 된다면, 움직임을 감지함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느끼는 바가 공통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다수의 사람에게 공통으로 호소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진수, <Future Memory – Dove>, 2018. 혼합재료, 30x15x36(h)cm.

 

Q 3. 선생님께선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은 첨단 기술을 사용하시기보다 메커니즘을 이해하기에 상대적으로 쉬운 로우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나 거리감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데요. 이러한 부분 역시 선생님의 사용하시는 기술 방식의 선택 조건에 포함이 되었는지요?

A 3. 저의 경우, 컴퓨터 사용에 있어 1세대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컴퓨터 문화를 직접 작품에 도입할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갈등이 있었습니다. 당시 지금 같은 하이테크는 아니었기 때문에 고장도 자주 발생하였고 기술적 문제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척 한정적이었습니다. 특히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고민은 그것에 대한 메커니즘에 관해 보는 것이나 이해하는 것에 저 자신이 어려움을 느낀다는 점이었고, 더구나 프로세스 과정 또한 비현실적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원하거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즉각적으로 도입하거나 해결할 수 있어야 함에도 장치 교체와 같은 상황들로 난관이 생기거나 진행이 더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로우-테크놀로지의 경우에는 약간의 기술만 있다면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구성해나가는 데 있어 끊김이 없이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달리 하이-테크의 경우 프로세싱과 조립 등 각 파트가 서로 분업화되어있으며 모든 구조가 완벽해야 작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환경에 종속적으로 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작품을 온전히 자력으로 완성하기보다 디자인적인 부분에서만 제가 디벨롭(develop)하게 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하이-테크가 편리하다는 점에서는 사실이나 그것을 ‘자유로움’과 연결 지을 수 있는가에 관해서는 의문스러운 것이죠. 오히려 로우-테크는 분명 힘든 과정이 존재하지만, 제 이야기를 담기에는 가장 적합했습니다. 나아가 제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 역시 장치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기에 작품의 결과를 이해하고 공감력을 높이는 데는 효과적입니다. 교조적인 메시지가 아닌 ‘과정’을 공유함으로써 관객 스스로가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작품 자체보다 보는 이가 중심에 놓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되어 해당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물 자체와 이를 바라보는 하나의 고정된 인식이 아닌, 비록 결과와는 전혀 관련 없는 방향이라 하더라도 같은 환경이나 조건에서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달라지는 것. 그것이 미술의 위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진수, <Blossoms>, 2020. 비눗물, 잉크, 송풍기, 구리, 알루미늄, 철, 플라스틱, 1000x150x400(h)cm.

(*동영상 / 더블 클릭으로 확대 가능)

 

Q 4. 작품에서 거품이 발생하거나 기계들이 작동하는 데 있어, 움직임에 반복적인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반복적인 것들 가운데서 우연성이 발생하는데, 우연성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반복성이 포함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4. 사실 반복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완전히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고 미세한 차이가 세상을 바꾸기도 하듯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반복이 아닌 것이죠. 똑같은 것들로 보이지만 ‘같다’와 ‘다르다’의 중간 형태라고 볼 수 있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런 작은 차이를 지닌 것들이 쌓이고 쌓여 인식할만한 것을 만들어냅니다. 차이들이 총체적인 현상으로 어우러지면서 뚜렷하지 않던 무언가가 보이고 나아가 하나의 장이나 씬(scene)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비유하자면, 저라는 사람을 ‘버블 씬’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자 수많은 세부적인 설명들이 뒤따르더라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대상을 설명하려 할 때, 우리는 정보화를 거치며 간략하게 축약해 설명하거나 정의합니다. 그러나 제 작품을 통해서는 그렇게 되기보다 ‘모호한 상황’에 처하길 바랍니다. 일정함과 변화는 대극적인데, 이것을 서로 진동하게 함으로써 고정적이지 않은 것의 개념이 생기도록 만듭니다. 새로운 대상을 경험할 때, 타인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기 애매한 상태, 설명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되도록 많이 포함한 작업을 해야만 진정 리얼리티 넘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작품을 앞에서는 정보화가 잘 되지 않아 판단 내리기 애매해지는 상황을 통해 블러(blur)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의미를 찾는 동물이기에 그 시간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캐내기 시작하게 되는데, 이렇게 불확실하고 정보화가 잘 되지 않는 작품을 통해, 효율이 중요시됨으로써 서로를 재단하고 아이덴티티(identity)에 매몰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죠. 저는 특히 작품을 자라온 환경이나 과정, 관계 등을 소재로 삼아 진행해왔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반하는 종속적인 생활과 그것에 대한 날마다의 갈등은 모든 사람이 겪는 공통된 문제인데, 작품을 통해 관조적인 상태가 됨으로써 각자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진솔하게 공유하게 되길 바랍니다.

 

 

한진수, <Fire Flower>, 2020. 스테인레스 스틸, 철, 알루미늄, 우레탄 페인트, 480x480x500(h)cm.

 

Q 5. 최근 용산역에 설치된 <Fire Flower>(2020)와 같이 공공미술 작품도 진행하신 바 있습니다. 갤러리나 미술관의 전시실과 같은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나 공공장소에 놓이는 작업을 진행하시는 경우에는 관람자들이 작품과 어떻게 소통하기를 바라시는지요?

A 5. 공공미술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놓이는 작품들과는 다르게 다루어진다고 봅니다. 장소와 오브제의 관계는 정말 중요합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마인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한 마인드 셋(mindset)이 중요한데, 저는 제 작품이 이에 부합하길 바랍니다. 갤러리나 미술관은 미술에 관심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방문하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공공장소의 경우,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장소이기에 조금 더 공공 디자인적인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편한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려 합니다.

더불어 작품을 통해 제시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세대마다 국가적 분위기가 다른데, 저의 경우 <Fire Flower>에서 모티브로도 삼았던 튤립이라는 꽃이 저의 세대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학급의 환경미화 활동을 즐겨 해왔었습니다. 그때마다 쓰였던 이미지 중 하나가 네덜란드의 꽃밭입니다. 네덜란드는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선진국의 반열로 올라가게 된 국가이죠. 마치 스파르타와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국가적 분위기는 개인보다 국가의 번영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황이었고 튤립이라는 꽃 자체가 수입되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에 해당 국가와 꽃은 우리가 가야 할 이상향과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익숙하긴 하나 실제로는 본 적이 없던 튤립 꽃밭이 쉽게 볼 수 있던 타 종류의 꽃밭과는 다른 어떤 특별함이 있을 것이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외국에서 튤립 꽃밭을 보게 되었는데, 전혀 아무런 차이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를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최고의 것으로 여기는 삶 그리고 나아가 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사회는 인간을 어떻게 제도화하고 있는가에 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미술이 교육, 사회와 얼마나 다르며 그 역할은 무엇인지, 이 역시 제도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튤립과 같은 예로서 비둘기를 들 수 있습니다. 본래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자 긍정적인 이미지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88올림픽 당시 대량 방생한 이후, 이제는 닭둘기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생물조차 기준이 변하면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행위의 의미는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요? 저는 사회가 제시했던 이미지들을 구현하고 이를 무심결에 따르고 있는 저 자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교육된 자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접점에서 개인과 사회 그리고 시대가 촘촘히 엮여 능동적이면서도 피동적인, 그 ‘불확실한 경계의 존재인 개인의 실존’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한진수, <Liquid Memory>, 2018. 혼합재료, 800x500x400(h)cm, 설치전경 및 세부요소.

 

Q 6. 선생님의 작업을 살펴보면 기계를 활용해 페인팅하는 작업, 거품을 발생시키는 작업, 공공미술 작업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 생각이나 사상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작업을 하나만 꼽아보자면 어떤 것이 있을지요?

A 6.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의식불명이 되시곤 8개월 동안 코마 상태로 있다가 운명하셨습니다. 입원해 계시는 동안 심박계에 보이는 실 같은 선만 보고 있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무력감과 무기력감이 굉장히 컸습니다. 이에 영향을 받아 그 후 작업의 방향성이 실 같은 소재들이 간당간당하게 매달려 있는 ‘Liquid Memory’ 시리즈와 같은 스타일로 전환되었습니다. ‘Liquid Memory’의 경우, ‘모든 것들이 다 지나간 후’라는 개념을 다루고 있는데 ‘사람이 다 사라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에 관한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따라서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은 유물 혹은 유적 같은 그런 것들이 존재했던 자리, 사라진 것들 등을 나타내고 싶어 오래된 것이나 버려진 것을 배치해두었습니다. 모든 이가 생로병사를 벗어날 수 없는데,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며 마지막 정리를 못 한 삶은 어떠한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러한 생각의 영향을 받아 만든 것이 해당 작품입니다.

 

 

Q 7.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작업 진행 방향을 말씀 부탁드립니다.

A 7. 한류의 영향인지 뉴욕에서 유학했던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볼 때, 서양권에서 한국 그리고 동양에 대해 받아들이는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생각해보게 된 것이 제 정체성에 해당하는 ‘동양성’, 즉 세계를 다루는 동양관과 서양관의 차이입니다. 이전에는 서양권 사람들이 아시아 문화를 생각했을 때,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하거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깊은 가치 인식이 없었다면 요즘은 동양관 자체에 대해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을 존중해주는 분위기로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할 때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굳이 작업 내용이 무엇인지 설명하거나 혹은 서양 미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무리 없이 통하는, 대등한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비록 현재는 동양이라는 커다란 경계 안에서 한국미술이 이해되고 있지만, 한국은 다른 동양권 나라들과는 다른 문화와 독자적 사관(史觀)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정’이라는 개념을 보더라도 한국과 일본 혹은 중국은 친밀감을 느끼는 속도나 믿음의 정도에 있어 차이를 보입니다. 미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한국인으로서 우리 문화가 가진 고유한 특성의 미술을 정립해나가고 싶고, 또한 그렇게 움직이는 작가들이 많이 생겨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 바쁜 스케줄과 사회적 상황으로 진행이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신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ditor. 박 은 경

 

 

 

 

 

● 작가 홈페이지    http://zinsu.net/

● 작가 인스타그램(Instagram)    https://www.instagram.com/zinsuhan/

● 작가 유투브(Youtube)    https://www.youtube.com/channel/UCKotxkqmKHvmIC91OHhj2H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