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범, Gumlake, 2016, Pigment ink print on rag paper, 1200x1200mm

 

 

타자화된 땅 그리고 세계: 이수범

 

     땅은 오랜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수범의 “왜곡된 호주의 아웃백 풍경(Distored Austrailian Rural Outback Landscape)” 시리즈는 그중에서도 드넓고 광활한 호주의 땅을 작업의 피사체로 삼고 있다. 호주로 건너가 정착한 이민자이자 원주민들과 정착민들 사이 그 어디에도 위치하지 않는 제 3자의 시각으로 40여 장의 사진을 촬영하고 그것을 이어붙여 왜곡시킴으로써 컨셉추얼한 이미지를 완성한다. 그 과정을 거치며 ‘땅’은 단순히 전경을 프레임에 담아내며 생긴 배경 혹은 부제적 요소의 역할에서 벗어나 작업의 주요 피사체이자 메타포로 전환된다.

     이수범이 촬영하는 호주의 아웃백(Outback) 지역은 붉은 흙, 먼지, 바람이라는 세 단어로 정의될 수 있을 만큼 땅이 하나의 상징적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다. 미술품의 원작에는 그것만이 주는 아우라(Aura)가 있듯, 호주의 땅은 압도적인 스케일의 평지가 주는 특별한 기운이 존재한다. 이는 카메라의 렌즈에 다 담길 수 없는 규모적 특이점에 관한 부분으로 작가는 프레임이 주는 사각형 틀의 한계를 지우기 위해 원의 형태를 활용한다. 지형을 평면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지평선의 양 끝점을 하나로 이음으로써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존재하지 않는 지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작가에게 한계로 느껴졌던 전달 매체에 대한 고심의 해결책이자 ‘땅’이라는 소재가 만들어내는 풍경적이고 구상적인 분위기를 어느 정도 지워내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에 서 있도록 만든다. 이때 더 효과적으로 넓은 면적을 한 화면에 담아낼 수 있도록 항공 사진이라는 촬영 방법을 작업에 도입하고 이렇게 구성된 작업을 ‘360도 파노라마’라고 칭한다. 관찰자의 시각을 바닥과 수평이 아닌 직각이 되도록 만드는 이 촬영 방법은 땅의 규모만큼이나 관찰자와 지면 사이의 거리감을 멀게 느껴지도록 한다. 지면 위에 서서 지평선을 바라보는 관찰자는 땅과의 근접한 거리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배경적 요소들로 인해 자연스레 세계에 귀속된 존재가 된다. 반면, 대기 중에 떠 있는 관찰자는 대상의 바깥으로 시야가 밀려남으로써 세계의 일부로 포함되지 못하고 타인으로서 실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면과 카메라 렌즈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호주라는 이민국에 대한 작가의 심리적 거리감과 연결될 수 있다. 동시에 이는 문명에서 멀어져 있는 원주민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작가가 호주의 광산지역과 같은 곳을 돌아다니며 만났던 내륙에서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바다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하며 살고 있다. 그런 원주민들의 한정적이고 벗어나기 어려운 ‘그곳만의 세상’을 관찰자이자 외부인인 자신의 시점을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이수범, Corrugated Iron Church in Opal Field, 2019, Pigment ink print on rag paper, 1200x1200mm

 

 

     작가는 원이라는 평면 도형의 중심부에 볼륨을 주어 입체화하기도 한다. 부피감을 부여함으로써 하나의 구로 변형된 땅의 모습은 윤곽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그 형태로 인해 얼핏 과학책에서 관찰하곤 했던 행성들과 유사한 이미지를 띠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를 풍기는 원인은 땅과 맞닿아 있는 하늘로 인해 푸른 빛을 띠는 배경의 색채와 원에 가까워질수록 물감이 종이에서 번지듯 점차 낮아지는 채도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더불어 내륙부에 위치한 아웃백 지역의 마르고 건조한 사막과 이로 인해 사람이 희박한 그곳의 환경 역시 작업의 특별한 분위기를 끌어내는 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전반적으로 부수적인 배경 요소들을 배제한 깔끔한 구성과 배경색과 보색에 가까운 호주의 땅이 지닌 붉은 색의 색상 대비는 주제부인 땅의 형태와 분위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관람자가 지형 위의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패턴 및 시각적 요소들의 조화로움을 발견하고 나아가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다양한 이야기가 새겨진 흔적들로 시선이 닿도록 이끈다. 지면에서는 미처 알 수 없었던 땅의 생김새를 한 시야에 담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 시선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확대시킨 중심부에서 멈춘다. 이때 돋보기로 물체를 관찰할 때처럼 확대된 일부분은 작가가 이미지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요소를 부각시킨 것으로 주로 역사적이거나 사건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장소들이다. 높이 1.8m에 총 5,614km의 길이로 독 펜스(Dog Fence)라고도 불리는 세상에서 제일 긴 철조망 딩고 펜스(Australian Dingo Fence), 오팔을 채굴하기 위해 굴착 기계로 파헤쳐졌다가 모래 더미만 남아있는 광산지역 등 다양한 이야기를 관람객이 조망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한국에서 작업하고 전시했던 “섬을 찾는 사람들(Island Seekers)” 시리즈와 같이 사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다큐적 성향이 다소 강하게 드러났던 이전 작업들보다는 간접적인 표현 방식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된 방식을 통해 관람자는 낯선 세상을 직접적이면서도 갑작스럽게 독대하기보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위치에서 찬찬히 이미지 속 상황을 관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수범, Muddy Road, 2019, Pigment ink print on rag paper, 1200x1200mm

 

 

     이수범의 시리즈 작업에서 일관되게 반복되는 형태 및 색의 유사성과 구의 내부에 해당하는 지면 혹은 윤곽 위의 요소들이 하나의 패턴을 만들어내며 시리즈 전반을 아우르는 하나의 상징적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흐름 위에는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흔적이 이전의 세월에 대한 기록으로 남겨져있다. 이로써 그의 작업은 작가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호주이자 타자화된 세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이미지가 되었다. 굴곡 없이 쭉 뻗은 평지로 이루어진 지평선이 휘어지고 왜곡되면서 하나의 세상이 되고 그 안에 여러 이야기들이 담긴다. 마지막에 우리에게는 관찰자로서 그 안에 있는 내러티브화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몫이 남겨졌다.

 

editor 박 은 경

 

 

 

작가 홈페이지 – http://www.artroy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