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Manley, Post Traumatic Urbanist #7, 2019, Archival photographic print, 1000mm x1000mm, Edition of 5.

 

 

디스토피아적 건축 초상: 데이비드 맨리 (David Manley)

 

     높고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로 구성된 화려한 도시 이미지는 진보한 현대성을 상징함과 동시에 다가올 미래에 있을 화려한 유토피아의 건설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와 달리 데이비드 맨리(David Manley, b. 1963)가 포착한 도시풍경은 현대성의 이면에 자리 잡은 파괴와 죽음, 멸망의 도래를 암시하는 듯한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는 기표로서의 구조물을 입체 모형으로 만들어내고 이를 촬영하여 일련의 초상화처럼 표현함으로써 시대적 초월성을 지닌 공상과학적 도시 이미지를 구현한다. 이러한 초월적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고립감과 소외감을 자아내는 심리적 장소를 제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로 인한 도시의 다양성과 자생력의 소멸로 인해 당면하게 되는 트라우마적 외상성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데이비드 맨리가 보여주는 공간은 평소에 우리가 도시 일상에서 대면하는 공간과 대비된다. 도시를 상징하는 빽빽하고 높은 빌딩들과 건물을 밝히는 화려한 색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고요하고 황망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이를 위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풍경 혹은 다큐멘터리 사진과 같이 사실성에 집중하기보다 의도적으로 기념비적 이미지를 구성하는 데 집중한다. 구성요소의 배치를 살펴보면 프레임의 하단부에 위치한 콘크리트 건물과 바닥에 놓인 습기 하나 없는 건조한 흙 그리고 이와 상반되는 상단부의 대기에서 대칭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이때 상단부의 부유하는 수증기의 입자 혹은 구름은 건물과 대지가 지닌 무게감이 주는 효과를 극대화하며 공간의 여백을 확장되어 보이게 한다. 이렇게 주변부의 요소들이 극단적으로 배제되어 시각적으로 확장된 배경과 비교적 중심부에 놓인 단일 건물의 위치 선정은 주제부에 대한 집중도를 높임으로써 고립감을 고조시키고 자연스레 전쟁 후의 폐허를 연상하게 한다. 특히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콘크리트가 지닌 특유의 회색조와 단색계열 중심의 색조는 무의식적으로 도시 경관에 관한 심리적 영향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끈다. 어둡고 교류가 모두 단절된 듯한 현대적인 건물과 소멸로 나아가는 건축 잔유물에서 느껴지는 소외의 정서는 그의 시각에서 바라본 현대성이 디스토피아를 향하고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David Manley, Post Traumatic Urbanist #10, 2019, Archival photographic print, 1000mm x1000mm, Edition of 5.

 

 

     맨리는 실재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다큐멘터리적 이미지에 어느 정도의 조작을 가미한다. 그에게 있어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져다주는 진실성, 그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작업의 핵심은 특정 가능한 시공간적 정보를 삭제하는 조작의 과정을 통해 유비쿼터스적인 소외의 정서를 촉발시키는 데 있다. 맨리는 이러한 방식의 작업을 애프터매스(Aftermath) 촬영이라고 칭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작품을 로저 펜튼(Roger Fenton, 1819~1869)의 전쟁 사진과 연결 지어볼 수 있다. 펜튼의 사진은 다큐멘터리의 한 장르로 분류되는 애프터매스 사진의 선례로 여겨지는데, 이 사진의 장르적 특징은 애프터매스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이 경험하는 고통의 여파를 포착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전쟁 상황을 촬영한 사진은 저널리즘적 기능을 지니기에 그 목적이 보는 이와 사건 사이의 거리감을 단축시키고 사건에 의해 발생하는 충격이나 감정까지도 생생하고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있다. 반면, 펜튼이 보여주는 애프터매스 사진은 전쟁의 흔적이나 강제수용소, 비어있거나 부서지고 파괴된 건물을 촬영하여 잔혹성으로부터 비롯되는 위험과 공포에 대한 감정에서 한발 뒤로 물러난다. 사라 제임스(Sarah James)는 이 일시적인 거리감으로 인해 잔혹성이 “비현실적이고 극적인 분위기”를 만든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맨리가 건축 구조물로 보여주는 흔적의 이미지는 그 비현실적이고 극적인 분위기를 활용하여 미래의 이미지와 다리를 놓아주고, 복합적이면서도 상반되는 의미들을 건축적 초상으로써 표현하는 데 성공한다.

 

 

David Manley, Substructure, 2015, Archival photographic print, 500mm x500mm, Edition of 3.

 

 

     맨리가 그리는 절망적이고 암울한 미래상은 단순히 환경적인 요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인류의 정신・심리적 상태로까지 그 범위를 확대한다. 실제로 그는 현대 문명의 양면성을 다루는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James Graham Ballard)를 비롯해 폴 비릴리오(Paul Virilio),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의 이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다. “양면적 구조물(Ambivalent Structures)”을 다룬 작업에서는 특히 그중에서도 디스토피아 과학소설가 밸러드의 소설에 등장하는 밸러드적 공간을 도심의 지형 사이에서 찾고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한다. 전통적인 과학소설이 우주 공간과 같은 외부 공간에 집중하고 있다면 밸러드의 글은 그 방향을 내적 공간, 즉 정신세계(inner space)로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성격의 과학소설을 창작한다. 그는 “외적 풍경은 심적 상태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며, “문학에서 모든 심적 상태는 풍경으로 표현되지만, 이와 반대로 심적 상태 역시 풍경으로 그려지는 것 또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맨리는 이러한 그의 생각을 반영하듯 현대 문명의 표면과 이에 잠재된 폭력적 이면의 상반된 양상을 나타내기 위해 은유적 의미를 지닌 벙커를 주요 상징물로 차용한다. 또한 이를 브루탈리즘의 미학을 내포하고 있는 도시구조와 관련 짓고 그 연관성을 통해 기술 문명으로 인해 발생하는 권력과 통제에 관한 불안감을 다룬다. 최근 시리즈로 발표한 <Post Traumatic Urbanist>작업들은 도시 환경 내 구조물의 폭력적 잠재성과 미디어의 가속화와 노출로 인해 유발되는 외상성에 관해 다루고 있다. 이는 비릴리오의 테크놀로지와 속도에 관한 질주학 그리고 정신적 충격과 이미지의 관계를 다룬 로저 헉스트(Roger Luckhurst)의 연구와 이어진다. 이를 통해 인간의 시각과 예술의 질료까지도 소멸시키는 기술의 급격한 발전 속에 지각방식에 대한 자의적 진단과 더불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수정하게 한다.

 

 

David Manley, Post Traumatic Urbanist #9, 2019, Archival photographic print, 1000mm x1000mm, Edition of 5.

 

 

     데이비드 맨리가 진단한 현대성은 결국 황폐함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를 드러내기 위해 인간이 기술과 현대도시문화에 가지는 막연한 낙관주의를 비난하듯 엔트로피적인 모습을 띠는 콘크리트 성채를 통해 발라드의 소설을 이미지화한다. 발라드가 서술했던 재앙적 도시 풍경은 맨리에게서 구조물의 변주로써 종말론을 향해 나아간다. 기술이 만든 인공적 환경이 인간 내면에 끼치는 영향은 휴머니티의 상실이자 부서지고 무미건조한 잔류물만 남은 공간에서 경험하게 될 황량함뿐임을 건축적 초상으로 예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에게 주의를 주는 하나의 신호이면서도 소외의 정서를 통해 노출과 제3자의 개입을 줄임으로써 심리적 외상에 대한 치유의 일환으로 동시작용한다.

 

editor 박 은 경

 

 

 

● 참고문헌

• Greene, Vivien. “Utopia/Dystopia,”  American Art, vol. 25, no. 2 (Summer 2011), pp. 2-7.

• Manley, David. Ambivalent structures, 2015. (e-book)

• Tello, Veronica. “The Aesthetics and Politics of Aftermath Photography: Rosemary Laing’s welcome to Australia (2004),” Third Text 28, vol. 28, no. 6 (December 2014), pp. 555-562.

• Tereszewski, Marcin. “Liminal Space in J. G. Ballard’s “Concrete Island”,” Text Matters, vol.9, iss.9 (November 2019), pp. 345-355.

 

이미지 출처 – 작가 홈페이지 http://davidmanley-photo-artist.blogsp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