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사유하는 장소-2] 장소의 확장 

현대미술에 있어 장소의 영역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확장되었다. 디지털 미디어가 현대미술의 주요 매체가 되면서 예술의 장소는 물리적인 곳과 비물리적인 디지털의 공간까지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물질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 우리는 엄지에 박힌 가시는 물질이라 보지만,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생각은 물질이 아니라고 본다. 빌 브라운(Bill Brown, 1958-)은 마음속 ‘생각’이 전기 화학적 자극이나 신경 네트워크 안의 신호 전달 통로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간주하게 된다면 생각의 과정은 그 자체로 물질성을 가지게 된다고 말한다. 브라운은 다양한 경험의 관점들, 경험이라 여기는 것 너머의, 또는 그 아래에 숨겨진 관점들까지 포함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물질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시킨다.

현대예술가 염지혜는 영상 매체와 설치를 통해 동시대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담론과 권력에 주목하여 그것을 우리에게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진행한다. 2018년 대구미술관에서 열렸던 그의 개인전, 《모든 관점 볼텍스》는 재레드 다이아몬드(Jered Diamond)의 저서 『총, 균, 쇠』에서 인간의 역사와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인식 체계에 대한 분석을 확장시켜 바이러스, 레이어, 첨단 기술의 세 가지 방식으로 그가 바라본 사회에 대한 보이지 않는 관점을 보여주었다. 본 전시를 통해 브라운이 제시한 확장된 물질성이 예술의 장소에 있어 어떻게 작용되는지 살펴보자.

<그들이 온다. 은밀하게. 빠르게(2016)>는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주제로 당시 상황 인식과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보이지 않고 실체가 없는 바이러스가 가시적인 것 이상의 존재감을 가지고 우리에게 불안과 공포로 다가왔던 것을 통해 염지혜는 그만의 방식으로 바이러스가 가지고 온 공포감을 관객이 체감할 수 있도록 전시공간을 구성하였다. 어둡고 차가운 공간에 놓여있는 검은 간이침대와 공간을 채운 연기는 비물질적인 바이러스를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스크린샷 2019-06-26 오후 7.28.15<그들이 온다. 은밀하게, 빠르게>,
2016, single channel moving image, 15min 15sec.

염지혜의 전시공간은 대부분 작은 소품들과 함께 한다. 영상을 관람하기 위해 앉을 수 있는 소품과 그 공간을 채우는 색을 통해 다른 시공간 속에 들어와 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구성되어 관객이 영상과 함께 전시공간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작품 속 세계를 경험하도록 한다. <커런트 레이어즈(2017)> 또한 염지혜가 영상 작품과 함께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간 설치를 통해 공간적 확장이 이루어졌다. 디지털화된 그의 영상 작업 속 이미지들이 물질적으로 구현되어 있는 전시 공간에서 관객은 디지털화된 이미지를 물리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그림2<커런트 레이어즈> 전시 전경, 대구미술관, 2018

엄지에 박힌 가시를 여러 장의 디지털 이미지로 찍어서 출력할 때, 미디어는 ‘명백한 물질적 현실’을 확장시키게 된다. 이와 같이 염지혜는 디지털 이미지를 물리적인 설치를 통해 구현하며 미디어 아트를 재물질화 한다. 비물질적 정보인 디지털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물리적인 매개체들을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인간과 기술 사이에 일어나는 물리적 상호작용을 작가는 작품의 이미지를 실질적으로 구현하여 영상 작품과 함께 설치하고 관람자가 그 사이를 걸어 다닐 수 있게 함으로 디지털 공간에 속박되어 있던 예술을 물리적 현실로도 확장시킨다.

이번 [기술로 사유하는 장소]에서는 디지털 이미지로 이루어진 현대 예술이 전시 공간에서 어떻게 장소를 확장하여 작용할 수 있는지 염지혜 작가의 전시, 《모든 관점 볼텍스》를 통해 살펴보았다. 염지혜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으로, 비물리적이었던 디지털 이미지 속 세계를 전시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작품 속 가상의 공간을 물리적으로 체험하며 작품 속 공간과 물리적 전시 공간 사이에 중첩되며 이루어진 장소의 확장을 통해, 이제 우리는 예술의 비물리적 가상공간까지 물리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참고문헌>
《모든 관점 볼텍스》 전시 리플렛 (대구미술관, 2018)

빌브라운, 「물질성」, W.J.T. 미첼, B.N. 핸슨 (편), 『미디어 비평용어 21』, 정연심 외 (역), 경기: 미진사, 2005.

editor 이 다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