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매개로 창출되는 가상공간: 권하윤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억들을 가슴 속에 품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기억은 너무나 무수하고 또 다층적이기 때문에 차마 모두 헤아릴 수 없으며, 끊임없이 변형되기에 기억과 연쇄하고 있는 사건의 객관성조차 담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수한 개인의 기억 중에서도, 떠오르는 특정한 기억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특정 기억은 우리가 해당기억을 꺼내어보는 시기에 따라 또 그때의 감정에 따라 끊임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하게 된다. 더 나아가 개인의 기억은 타인에게 전달됨에 따라 그 변이의 양상 역시 더 복잡해지며, 또 다양해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억의 전달은 더더욱 다양한 모습을 창출하게 하며, 변이와 변화가 뒤얽힌 복합적 영역으로 우리를 인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 흥미로운 지점에 관심을 갖는 작가가 바로 권하윤이다.

 권하윤에게 있어 타인과의 만남은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매개체로써 기능한다. 타인의 기억에 담긴 이야기가 작가에게 도달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실제와 허구,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오간다. 예컨대, <489년(489YEARS)>(2016) 작업은 DMZ에서 수색대원으로 근무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로 전개된다. 그 속에서 작가는 VR(가상현실)매체를 이용하여 경험해본 적 없는 비무장지대를 시각적으로 연출하는데 이는 신비로우며, 심미적으로 형태로 구현된다. 즉, 작품은 작가와 수색대원 기억의 매개가 하나의 환상적인 공간으로 재탄생되어, 관람자의 기억으로 유도하는 과정인 것이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군인이었을 때의 경험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작가에게 실제 있었던 일에 관해 설명하는데, 여기서 기억의 변이와 다양성이 교차하게 된다. 그 속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하는 과정이 얼마나 실제와 다르게 왜곡되었는가의 여부이며, 그 불완전한 기억이 작가를 거쳐 관람객에게 어떻게 도달하는가이다.

권하윤, , 2016

 권하윤, <489년(489YEARS)>, 2016

작가는 기억의 다양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다. 이는 기억이라는 소재가 가변성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매체를 고수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 결과 작가는 프로젝트마다 비디오, 프린트, 사운드 설치, 가상현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을 해나간다. 이렇게 구현된 작품들은 어떠한 매체보다도 사람들이 기억을 재생하는 방식을 다감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심층적이며 방대한 몰입의 세계로 관람자를 인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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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구현된 공간은 단일한 형태로 제시되는 것을 넘어선다. 권하윤이 다룬 기억의 재구성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서서, 공간의 재구성의 영역으로까지 나아간다. <새 여인(THEBIRDLADY)>(2017) 작업은 작가의 스승인 다니엘(Daniel)의 경험을 듣고 재현한 것이다. 다니엘은 젊은 시절, 설계도를 제작하는 일을 하며 많은 집들을 방문하였고, 어느 날 방문한 파리의 집에 너무나도 매혹되어 그 공간을 측정하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한다. 작가는 다니엘의 이러한 경험과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본인이 직접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게 된다. 다니엘의 젊은 시절 공간 경험과 기억은 권하윤을 통과하며, 환상적인 이미지로 구현되는 것이다. 특히 “현실을 뒤로한 채 한발 한발 나갈 때마다 동화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는 다니엘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권하윤은 동화적 소재를 구현하기 위해 특히 노력하였다고 한다. 이는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소재가 특정 발화를 통해 하나의 가능성으로 탄생하는 실질적인 예로써 보여지게 되었다. 더 나아가 개인의 기억 속 공간은 물리적인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 있는 매체로써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권하윤, , 2017년

권하윤, <새 여인(THE BIRD LADY)>, 2017년

 

 작가 권하윤이 보는 리얼리티란, 객관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리얼리티는 결국 주관적인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작업에 있어 개인의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리얼리티는 결국 작가가 느끼고 연출하는 주관적인 시점으로 구현된다. 즉 권하윤에게 개인의 기억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에 있어서는 완전한 존재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존재의 균열과 그 틈 사이로 작가의 가능성은 무한히 탄생하며, 그렇게 탄생한 작업의 의미는 관람자에게 다다르면서 안착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뻗어나간다는 점에서 리좀(Rhizome)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탄생할 권하윤의 행보가 더더욱 기대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억의 다양한 양상과 층위를 매체의 실험을 통해 구현하고자하는 작가의 태도는 기억의 불온전함에 대해 고발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불온전함이 창출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관한 것이라는 데서 의의가 있는 것이다.

 

editor 하 혜 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