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감상하는 비물질적 공간: 《WEB-RETRO》, 북서울미술관

우리는 예술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미술관을 방문한다. 미술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미술관의 장소와 오픈하는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즉, 내가 접근 가능한 거리에 있는지 확인해야 하며, 전시를 볼 수 있는 시간에 맞춰야만 방문이 가능하다. 그렇게 우리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들어가 예술 작품 앞에 서서 감상하거나 때로는 지나가며 관람을 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예술 감상은 공간적, 시간적 제약이 있는 활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는 기술 매체의 발전과 진보는 공간의 소멸을 이룰 것이라 하였다. 기술의 발달은 속도를 점점 더 빠르게 하고 시각의 힘을 강화시키며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한다. ‘지금’이라는 현재 시간과 ‘여기’라는 현재 공간은 이제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공간적, 시간적 제약이 있던 미술관에서 이루어졌던 예술 감상은 기술발전과 함께 그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제는 집에서, 강의실에서, 지하철에서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로 예술 작품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공간의 제약을 벗어난 ‘열린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예술, “웹아트(Web Art)”를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북서울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WEB-RETRO》는 이러한 웹아트를 주제로 그 역사를 회고한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웹아트의 지난 30년간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본 전시는 웹아트의 비물질적 특성을 고찰하고 있다. 수집 및 보존의 문제와 포스트 인터넷(인터넷 이후 나타난) 아트가 내포하고 있는 속성을 1990년대 작품부터 2019년 제작된 작품까지 다양하게 소개하고, 온라인 아카이브와 실물 아카이브, 그리고 인터넷 연표를 통하여 웹아트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MTAA는 웹아트의 특성을 활용한 작업을 진행하는 미국의 예술가 그룹이다. 이번 전시에서 MTAA는 테칭 쉐(Tehching Hsieh)의 <1년 동안의 퍼포먼스 1978-1979>를 웹의 특성에 맞게 변형한 작품 <1년 동안의 퍼포먼스 비디오>를 선보인다. 작가들의 모습을 실시간 감시 카메라처럼 녹화한 영상을 언제든지 접속하여 볼 수 있는 <1년 동안의 퍼포먼스 비디오>는 실재와 가상의 시간 관계에 대해 재고하게 한다. 관객은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영상을 보는 시간을 1년을 채우게 되면 그동안 보았던 영상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순간으로 이루어졌던 퍼포먼스의 시간은 영구적으로 디지털화되어 사유할 수 있는 데이터가 되었고, 작품에 접근하기 위해 제약되었던 시간과 공간은 소멸되었다.

그림1MTAA, <1년 동안의 퍼포먼스 비디오>, 2004-2005.

《WEB-RETRO》전의 작품들은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디지털화된 공간을 통해 보여지고 있다. 모든 작품들은 개인 컴퓨터 화면에서도 접근이 가능하며, 북서울미술관에 직접 방문하더라도 그곳에 설치되어 있는 컴퓨터 화면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김범의 <유틸리티 폴더>는 관객을 물질적인 공간과 비물질적 공간 속에서 향유할 수 있게 한다. 관객은 비물질의 사이버스페이스와 접촉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컴퓨터를 통해 접속을 하고, 이후 디지털화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체험한 후, 인쇄를 통해 디지털화된 이미지가 현실화되는 과정을 목격한다. 관객은 물질과 비물질을 오고 가는 과정 속에서 사이버공간이 어떠한 방식으로 매개되고 있는지 작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말을 빌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설명하자면, 이는 작품 속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존재의 함성을 듣는 것이다. 즉, 예술을 감상하는 것은 작품과 관객의 상호작용을 말한다. 전통적인 예술 작품과 관객의 상호작용이 일방향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웹이라는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웹아트의 상호작용은 쌍방향적으로 나타난다. 관객의 행위는 작품 구현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요충분조건이며, 작품의 실현 가능성 속에서 관객들과 작품의 호흡을 통해 작품이 완성된다. 양아치의 <전자정부>는 이러한 ‘열린 예술 작품’으로서 관객들과 상호작용한 결과를 통해서 완성되는 작품이다. 관객은 <전자정부>에 접속하여 나타나는 질문에 대답을 한다. 이후 질문을 통해 만들어진 자신의 정보를 제출하고 10달러를 내면 다른 이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관객의 의지적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 데이터를 통해 작품은 지속되며, 이 상호작용의 과정을 통하여 관객은 정보기술의 숨겨진 위력에 대해 깨닫게 된다. 여기서 예술 작품은 관객이 그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과정으로서의 예술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림2양아치, <전자정부>, 2002(2019 재제작).

열린 환경 속 웹아트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다. 우리는 물리적 시간과 공간의 소멸을 경험하기도 하고, 비물질적 공간을 접속하기 위해 물리적인 도구를 사용할 때도 있다. 우리의 ‘접속’과 ‘참여’는 웹이라는 공간의 데이터가 되기도 하고 그 데이터를 사유할 수 있게도 한다. 이러한 유비쿼터스한 예술을 ‘미술관’에서 전시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웹아트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필자가 전시를 관람하며 만나게 된 한 어린이 관람객은 작품을 매개하던 컴퓨터의 브라우저를 컴퓨터 화면에서 삭제하였다. 곧바로 이 어린이 관람객은  전시 스텝의 안내를 받고 다시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컴퓨터 화면을 돌려야 했다. 웹아트가 보일 수 있도록 매개하는 브라우저가 컴퓨터 화면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그 컴퓨터가 놓여있던 미술관의 공간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통해 다시 한 번 웹아트의 공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WEB-RETRO》의 전시  공간은 확장된 공간인가? 아니면 소멸된 공간인가?  

<참고자료>
《WEB-RETRO》 전시 연계 학술 심포지움 자료집 (북서울미술관, 2019) 

《WEB-RETRO》 전시 리플렛 (북서울미술관, 2019)
심혜련, 『20세기의 매체철학』, 서울: 그린비, 2017.

<전시정보 – 《WEB-RETRO》>
전시장소: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시실 2, 프로젝트 갤러리 2 

전시기간: 2019. 03. 12 – 2019. 06. 09.

editor 이 다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