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사유하는 장소-1] 기술에서 뻗어나오는 장소의 가능성

 

 ‘장소’라는 단어의 정의는 ‘어떠한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이며, 이는 물리적인 위치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장소’라는 개념은 어떨까? 과연 ‘장소’란 한 단어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물리적인 것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장소에 대한 물음은 1960년대 후반 이후 예술의 조류 속에서 본격적으로 꽃피워 났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탈물질화’와 ‘비물질화’에 대한 관심으로 일렁이고 있었고, 이러한 관심은 이후 공간과 장소, 그리고 소리에 대한 관심으로 구체화되었다. 특히나 공간을 중요시 여겼던 미니멀리즘과 행위가 펼쳐지는 장소가 중요했던 해프닝, 퍼포먼스, 더 나아가 특정 장소가 작품의 의미를 결정하는 장소 특정적 미술은 ‘장소성’이라는 테마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려놓았다. 물음을 쫓으며 이들이 열어젖힌 가능성은 경험과 체험의 확장이었다. 이제 그들이 만들어내는 창조물들은 단지 시각만을 매개로하는 단일성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거기서부터 감각이라는 복합적 봉우리가 만개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우리가 장소에 대해 다시금 언급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장소에 대한 탐구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더 폭넓은 메타적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뉴미디어 예술(미디어아트, 퍼포먼스, 디지털 예술 등을 포괄하는)은 특정 공간에서 출발하지만 다른 시공간으로 관람자를 인도하기도 하며, 해당 공간을 비틀거나 왜곡시키기도 하고, 또한 공간과 만나 새로운 의미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Florian Hecker, , 2010

Florian Hecker, <Event, Stream, Object>, 2010

사운드 아트 작업을 주로 해오고 있는 플로리안 해커(Florian Hecker)는 변화 가능성에 집중하며, 관람자의 위치와 개인의 편견, 나아가 사고 과정에 따라 각기 다른 체험을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의 사운드 설치 작업의 기저에는 듣는 행위에 대한 사유가 내재되어 있으며, 듣기란 이해를 향한 욕망에서 출발한다는 전제를 함의하고 있다. 여기서 장소는 사운드 기술이 응집된 설치 작품과 만나 셀 수 없는 미시적인 파동을 창출해내며, 소리와 공간을 매개하는 상호작용이 관람자에게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해커의 작품에서는 소리의 파동과 파동이 부딪히는 공간, 더 나아가 거기서 파생되는 개인의 감각 하나하나가 작품을 이루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Jeremy Wood, , 2009

Jeremy Wood, <My Ghost> , 2009

또 다른 예시로, 위치기반 미디어로 공간의 시각화를 실험하고 있는 제레미 우드(Jeremy Wood)의 작업은 확장 공간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시공간 여행을 유도한다. 여기서 실재 공간을 기반으로 한 우드의 궤적은 위치기반 기술과 만나 사이버스페이스 상에서 구현되며, 실재와 가상 그리고 수많은 과거의 편린들이 합쳐져 하나의 증강현실로 제시된다. 실재와 가상을 매개하는 이러한 우드의 작업은 하나의 지형학적인 드로잉으로써 관람객 앞에 단일적으로 펼쳐지지만 이는 앞으로 발전할 기술과 더불어 또 다른 영역의 장소로써 구현될 증강현실에 대한 사유가 내재되어있다.

 이렇듯 매체의 확장은 장소를 둘러싼 질문들을 더욱 더 첨예한 방향으로 이끌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변화하는 기술 속에서 ‘장소’를 둘러싼 담론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기술로 사유하는 장소’이다. 따라서 이번 프로젝트는 ‘장소’를 둘러싼 담론들에 대해 다시금 브레이크를 밟아보고, 기술의 발전과 함께 떠오르는 가능성과 비판점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한다. 앞으로 부유하는 가능성에 귀 기울이며, 다양성들을 이끌어보는 작업을 진행해 볼 예정이다.

 

 

editor 하 혜 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