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문자 기호 홍익을 잇다

문자 기호 홍익을 잇다 (포스터)

문자 기호 홍익을 잇다 전시는 11월 14일부터 2월 28일까지 홍익대학교 박물관에서 전시된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시대 변천에 따른 예술가들의 문자와 기호를 보는 다양한 관점과 해석, 그리고 그 유기적인 관계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예로부터 사물을 본 뜬 상형문자는 그 자체로 회화성을 지녔으며, 선의 이음으로 탄생한 문자는 예술혼을 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소장품들과 미래를 여는 초대작가들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 문자와 기호의 시각적 유희를 관람객들에게 선사하는 전시이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하나 학예연구사는 이번 특별전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중 하나가 박물관과 소장품, 그리고 작가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유기적 관계성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취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박물관 소장품 <고지도>와 김정욱 작가(레벨나인)의 <와우동여지도(홍대입구역 9번출구)>(이하 와우동여지도)를 꼽는다. 조선 시대에 목판화로 제작된 <고지도>와 지도의 성격을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새롭게 재해석한 <와우동여지도>를 함께 감상하는 것이 색다른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와우동여지도>는 <고지도(충청도)>에서 보이는 동아시아 지리학의 경향을 동시대의 장소성과 재현기술을 통해 재구성한다. 실재하는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지도 작업을 통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지난 10년 동안의 홍대입구역 9번 출구의 변화를 담아낸다. 홍대입구역이 가진 장소성과 시공간 간의 관계망을 포착하여 그래픽 포맷으로 선보인다. 9번 출구 주변의 변화상을 장소 메타데이터와 기록이미지로 아카이브하고 이를 포토콜라주 작업과 증강현실(AR)을 기반으로 한 무빙-타이포그래피로 구현하였다.

작가 미상, 고지도작가미상, <고지도, 조선>

인쇄김정욱(레벨나인), <와우동여지도>

이번 특별전은 문자나 기호가 가진 아름다움이나 그 속에 내재하는 다층적인 의미들을 보여준다. 우리의 삶에서 너무 가까이 있기에 정작 그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이 바로 한글이다. 안상수는 그러한 한글이 가진 조형미를 보여주고자 한다. 안상수의 <피어랏! 한글>은 본인이 사랑하는 한글 자음 ㅎ를 가지고 꽃을 만든다. 나뭇가지에 매화처럼 몽글몽글 피어난 ㅎ을 통해 관람객들은 잊고 지냈던 한글 자음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안상수

안상수, <피어랏!. 한글/ 런던(한글. 매화)>

고경호의 <Reflection>은 작업의 기록을 담은 책과 그것들이 파쇄된 조각 더미를 보여준다. 그는 작가노트를 통해 이렇게 낯익음과 낯섦이 혼재된 이미지가, 보편적 주제가 주는 안정감과 그것을 표출하는 방법에서 기인한다고 밝힌다. 그는 복합적 이미지의 중층구조를 통해 두 가지의 이질적인 이미지를 대응시킴으로써 익숙한 공간을 낯선 공간으로 변환시킨다. 텍스트로 존재하던 책과 수많은 조각으로 파편화되어 의미를 잃어버린 기호들, 두 이미지를 대응시킴으로서 관람객들은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존재의 불완전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또한 작가는 파편화된 시각적 이미지들을 뒤섞고 그 순서를 뒤집으면서 편집하는데 이를 통해 관람객은 작가가 재조합한 시간성 속에 서 있게 된다.

고경호 1

고경호 2고경호, <Reflection>

구텐베르크 혁명을 일으켰던 ‘가동활자(movable type)’는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완전히 잊히게 되었다. 최문경은 <한때 활자>를 통해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가동활자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한다. 그녀는 비누로 활자를 만들면서 ‘변화하는’ 활자의 성격을 보여준다. 비누용액을 휘젓고 건조하는 동안 활자의 색과 질감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비누를 사용하면서 비누는 닳아 작아지고 활자의 모양은 점차 변한다. 이렇게 계속 변화하는 비누의 성질을 통해 활자나 기호 역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최문경 1

최문경 2최문경, <한때 활자>

강진(오디너리피플)의 <Suddenly-I-am-in-the-Indesign-Mac-Instagram-and-Ikea>는 지진이 일어난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죽음 후의 남겨질 sns의 흔적을 때문에 계속해서 sns에 글을 쓰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웹이라는 공간에 영원히 남겨질 자신이 오히려 실제의 자신보다 더 중요한 오늘날의 현실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s.o.s 신호를 통해 긴박한 구조요청을 하지만 위에 쓰인 다른 글은 그렇지 않은 상황을 보여주면서 관람객은 글과 신호가 맞지 않는 미묘한 이질감 속에 자리 잡은 위트를 느낄 수 있다.

강진

강진(오디너리피플), <Suddenly-I-am-in-the-Indesign-Mac-Instagram-and-Ikea>

한정엽의 <인공지능 아틀리에: Inside 문자도 NO.1>는 모션 인식 기술을 접목한 상호적인(interactive) 작업으로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관람객은 직접 문자도 안으로 들어가서 센서를 통해 전해진 자신의 몸짓에 따라 변화하는 문자도를 보며 색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인공지능 아틀리에 Inside 문자도 No.1한정엽, <인공지능 아틀리에: Inside 문자도 No.1>

이번 특별전은 문자와 기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보여준다. 문자가 가진 표면적인 의미를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고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내밀하게 속삭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문자와 기호가 유구히 많은 시간동안 우리의 삶과 함께 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와서 기호와 문자는 그 관계를 더욱 확장한다. 과거의 소장품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고 미래를 이어나갈 작가들이 한 자리에서 모인 이 특별전에서 문자와 기호는 위와 아래로, 그리고 옆으로 뻗어나간 관계망을 보여주면서 전 세대를 잇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editor 장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