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침 소리는 현장에서 들리지 않는다 : 임흥순×모모세 아야 <교환일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임흥순―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전시연계 특별상영 프로그램, 2018.03.30.)

일반적으로 교환일기란, 일기의 성격을 어느 정도 거부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을 내밀하게 글로 엮고 담아놓은 기록물이, 내 서랍장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허락해주기 때문이다. 이 이동은, 그 내용이 본인이 아닌 다른 특정 독자에게 전달되는 사실도 동시에 포함한다. 또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들어설 자리가 생겨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이때 ‘나의’ 시선에 ‘남의’ 시선이 개입된다. 이 전제를 따라 기록물은 애초의 기록단계에서 통제를 받아 제작된다. 이 말은 나 역시 엄마의 보살핌 아래 자랐다는 뜻과 결이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제작과정의 통제란, 내가 기록하는 행위자체에 남의 시선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이때 조건 지어진 사실만 보면 통제이지만, 그렇다고 기록하는 주체가 아무 힘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거기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쓸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할까 하는 고민도 생긴다. 이때 전적으로 사적인 일기의 성격에 틈이 생긴다. 내가 쓰는 내용은 물론 내 말이 맞는데, 그럼에도 마치 바로 퇴고하란 듯 말이 조정되는 느낌, 이때 그 틈에서 누가 나를 보고 있다. 여기서 내부와 외부에서 각각 비춰지는 나와 남의 시선이 교차한다. 나는 공책에 시선을 보내 내 마음을 글로 쓰지만, 동시에 “이렇게 써도 될까” 머뭇거려 내 마음과 단절이 생긴다. 이 단절이야 말로 사적 성격에 생긴 틈을 가장 잘 나타내준다.

이는 토크 때 작가 모모세 아야(Momose Aya)가 SNS의 경우를 언급한 맥락과 비슷하다. 타임라인을 흘러가는 사생활이나 경험담이, 이제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전제에 기초한다. 이 전제는 자신의 내면 못지않게 중요한, 그리고 소중한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거기서는 나 스스로에게 던져진 시선이 확실히 존재하면서도 어떤 타자, 즉 독자를 염두에 둔다. 일반적인 교환일기와 SNS의 경우 모두, 기록물의 ‘사적’ 특성에 괄호를 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혼자 살 수 없고 상부상조하면서 살아간다는 이야기와 다르다. 즉 공유라는 단어 아래, 나의 이야기를 내가 털어놓는 그 자리에 타자의 존재가 조건으로 지어진다. 따라서 나의 마음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는데, 글로 가시화되기 이전에 이미 시선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글로 나온 결과물이 아니라 글로 푸는 생성과정 자체에 외부에서 영향이 미친다.

1-A

임흥순과 모모세 아야의 공동작업 <교환일기>(2015-2018)는 남의 시선이 개입된다는 점에서 SNS와 비슷한 맥락이다. 다만 전자가 두 작가 사이, 그러니까 특정대상을 전제한다면, 후자는 불특정다수가 전제된다. 여기서 기억이나 경험담을 영상에 토로하는 점에서 이 작업은 일차적으로, 그리고 특정인물을 대상으로 그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점에서 이차적으로 ‘교환일기’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여기서 교환되는 것은 글이 아니라 영상이며, 한 사람이 보내준 것에 다른 한 사람이 말을 불어넣는 점에서 일반적인 교환일기와 차이가 있다. 두 작가는 영상을 주고받고 상대방이 보내준 영상에 자신의 말을 덧입힌다. 작가 임흥순이 보낸 영상에서 모모세 아야는 본인이 적어놓은 글에 어울리게 편집을 하고, 반대로 모모세 아야가 보낸 영상에 임흥순은 마치 편지를 읽듯 (이는 아무래도 작가가 ‘~습니다/입니다’ 문법으로 읽기 때문이다) 말을 한다.

서로가 보내준 영상에 각자 개인 단위로 말을 입히는 방식, 그렇다면 여기서 교환일기의 ‘교환’이 갖는 위상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선 이 작업에서 교환이란 단어가 한 층 더 강조되는 이유가, 두 작가의 성별, 거주하는 나라와 언어가 다를 뿐더러 보내주는 영상 이미지에 차이가 분명하다는 전제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이때 교환이란 말은 의견의 단순한 왕래가 아니라, 상호간의 차이에 주목하게 된다. 그런데 일반적이고 일차적인 ‘교환’의 의미가 존재하는 한편, 이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에 따라 또 다른 교환이 이루어진다. 두 작가는 자신이 보낸 영상을 상대방 목소리에 침투당한다. 그리고 그 작가 역시나 상대방이 보내준 영상에 말을 입힌다. 상대방의 언어가 덧입혀지면서 교환이란 단어가 이때 ‘교차’ 뜻에 더 가깝다. 즉 나의 말(영상)과 남의 말(목소리)의 교차된 결과물로 작품 <교환일기>는 존재한다. 따라서 여기서 교환이란 말은 단순히 일기를 기록물로서 주고받는 것과 다르다. 이때 교환은 단순한 왕래가 아니라 상대방이 본 것을 내가 보는, 시선의 대체를 통해 이미지를 다르게 비춘다. 즉 나의 시선이 다른 시선으로 대체되어 이미지가 읽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교환일기>는 공동작업이지만 서로 시선을 보내고 눈빛을 받아 의미를 (다시) 읽어내는 방식에 가깝다. 즉 일상적이며 의미를 부여받을 수 없던 장면이, 기록물이라는 형태로 사후적으로 보여지면서, 지나쳐 버린 이미지를 비추어낸다. 뿐만 아니라 반대로, 촬영자 본인에게 중요했던 특정 장면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노출되면서 가치를 거부당할 수도 있다. 이때 영상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영상에 나오는 이미지들은 사실에 비추어 설명되지도 않고, 오히려 주관적인 말에 힘을 받아 무게가 주어진다. 따라서 이 작업은 기록물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기록물을 글이 아니라 자신의 말로 푸는 점이 중요하다. 영상을 찍은 촬영자의 시선은 이때 독해하는 다른 시선으로 대체가 된다. 두 시선은 같지 않고, 마치 다른 사람이 꾸는 꿈을 엿보는 행위와 같다. 작품은 이때, 이미지의 출처가 거의 무효화된다. 즉 내가 찍었다는 영상이 본인의 시선을 떠나 상대방이 감정이입을 하는 대상이 된다. 거기서 영상의 의미는 상당히 잠재적이다. 즉 다른 사람 눈에 꽂히는 존재를 보유한 채 가만히 있다가 보는 사람에 의해서 비로소 부각된다. 애초에 의미가 없거나 촬영자의 (비유적인 의미에서도) 목소리가 들어간 이미지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넘겨지면서 ‘새로운 것으로서’ 말해진다. 이는 모모세가 지난해 난지에서 제작한 작업과 유사한 방식이다. 작업 <정점관측: 서울소년소녀의 경우>(2017) 또한 일종의 기록물의 형태이다. 이 작업에서 여러 학생들은 작가가 만든 설문조사 대답을 한 사람씩 순서대로 읽어간다. 이때 대답이 이어지면서 ‘분단현실’이라는 주제를 부각시키는데, 질문을 보면 그와 맥락이 전혀 없어 보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 또한 전혀 상관 없는 대답을 선택지에서 고르고 적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대답들은 작품에서 주제를 부각시키는 강력한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답들은 주제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시사하듯 전달된다.

5-B

<교환일기>에서 두 작가가 찍은 영상은 서로의 시선을 통해 다시 읽혀진다. 그렇다면 이 영상이 작품으로서 갖는 위치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두 작가 사이에서 진행되던 방식이 불특정다수 관객 앞에서 소개가 될 때, 작업은 어떤 위상을 가질까? 사실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 아직도 명확한 대답을 제시할 수 없다. 이 글에서 교환일기의 본래 뜻을 통해, 그리고 진행과정에 주목하여 작품을 분석했다. 그 연장선 상에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시위현장의 존재를 알아채도 유념하지 않는 것과 같다. 멀리서 구호 소리가 들리면 시위현장의 존재를 알 수 있지만, 정작 그 존재의 위치를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 소리는 단서로서 주어지는 정보에 불과하다. 작품 영상 중에 시위현장의 장면이 나오는데, 이 영상을 받은 상대방 작가는 그 현장에 있지 않다. 시각 정보와 기록물로서 전달된 이미지는 촬영된 장소, 촬영자의 존재, 그리고 포착되지 못한 어떤 것까지 고스란히 담으면서 그 위치를 떠난다. 따라서 흔적으로서 기록된 이미지는 촬영자의 곁을 떠나면 원천과의 결속이 끊어진다. 영상이 기록물의 형태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면서 이미지의 생산지와 결과적으로 절단된다. 교환이라는 단어는, 이때 비로소 시선의 대체라는 말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이 조건 아래에 이미지는 주관적으로 풀려나간다. 그러니 영상에 목소리를 입히는 주체는 시위현장이 아닌 장면을 보고 반란의 씨앗을 내면적으로 비추어낼 수 있다. 사사로운 외침은 담담한 어조로, 그리고 과격하지 않은 장면에 비로소 나타난다.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