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구엘 슈발리에(Miguel Chevalier)

 오늘날의 전시공간에서 우리는 벽에 걸린 그림보다 우리를 맞이하는 스크린, 모니터, 사운드에 더 익숙함을 느낀다. 미디어는 이제 현대 예술을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가 되었다. 쌍방향적 소통과 참여가 예술을 감상하는 중요한 방식이 된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러한 디지털 기술을 매개체로 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는 작가 혹은 그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한다.

 오늘 소개할 미구엘 슈발리에(Miguel Chevalier)는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로, 디지털 기술을 사용한 대규모 작업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진행하며 대중들과 교감한다. 그는 과거와 현재, 지역과 세계, 현실과 가상이 끊임없이 소통하는 작업을 선보이며, 디지털 기술을 통해 사물이나 장소가 갖는 고유의 아우라를 증폭시킨다. 최근 그의 작업은 주제와 표현에 있어 미술과 기술의 경계를 넘어 순수과학까지 접목하는 융합적인 면을 보여준다.

 2014년과 2015년에 진행된 대규모 프로젝트 <디지털 아라베스크 Digital Arabesques>는 이슬람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다양한 패턴을 통해 그들의 역사와 전통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보여준다. 바닥을 장식한 이슬람적인 패턴들이 수학적 법칙과 만나 시각적으로 재해석되는 것이다. 2014년에 아랍에미리트 샤르자(Sharjah)의 워터프론트에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완전하게 개방된 작업이라는데 그 의미가 있다. 광장을 찾은 방문객들은 주변의 모스크, 운하, 분수가 함께 어우러진 개방된 공간 속에서 낯선 사람들과 서로 소통하며 작업을 즐긴다.

 <디지털 아라베스크>는 미디어 매체의 상호적인(interactive) 성격을 잘 보여준다. 센서를 이용해 바닥을 수놓은 패턴들이 방문객들의 움직임에 반응하게 만든 것이다. 바닥의 패턴은 방문객들의 반응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한다. 관람객들은 작품의 하나가 되어 자신이 작품 속에 참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패턴들을 통해 그들은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아라비안나이트 속 주인공이 된다.

digital_arabesques_sharjah_01 2014 digital_arabesques_sharjah_02 2014Digital Arabesques, 2014

 그의 작업은 작업이 진행되는 모로코의 건물이나 샤르자의 광장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디지털 아라베스크>가 만약 다른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진행된다면 이슬람 문화권에서 진행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앞선 <매직 카페트 Magic Carpets>(2014)와 <플라잉 카페트 Flying Carpets>(2005) 역시 그러한 이슬람 문화권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그것들을 주제로 표현한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공간에서 작품 속 패턴들은 진정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digital_arabesques_01 2015 digital_arabesques_02 2015Digital Arabesques, 2015

 이러한 장소-특정성이 잘 드러나는 또 다른 작업은 바로 2015년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진행된 <디어 월드… 유어스, 캠브리지 Dear World…Yours, Cambridge>이다. 그는 이 작업에서 케임브리지에 있는 킹스 컬리지 채플 (King’s College Chapel) 내부를 디지털 아트로 가득 수놓았다.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학문이 접목되어 진행된 것으로, 미구엘 슈발리에는 특히 과학 분야의 다양한 주제를 디지털 언어로 재해석하여 표현한다. 신경과학, 생물학, 물리학의 모티브들이 이미지로 등장하여 예배당 벽을 수놓는다. 특히, 스티브 호킹의 블랙홀을 형상화하기 위해 예배당은 우주 공간으로 변신하는데, 수많은 별과 행성들로 뒤덮인 천체는 시시각각 변신하며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cambridge_01 2015 cambridge_02 2015 cambridge_03 2015Dear World…Yours, Cambridge, 2015

 킹스 칼리지 채플은 ‘팬 볼트(fan vault: 부채꼴 모양의 둥근 천장)’를 가진 16세기 후기 영국 고딕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채플이 자리 잡은 킹스 칼리지는 수세기에 걸쳐 많은 석학들을 배출한 대표적인 학문의 산실이다. 이러한 곳에서 가장 최신의 학문 분야인 과학의 주제들을 패턴으로 수놓으면서 그 장소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더욱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디지털 아트를 통해 이 예배당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한층 더 깊게 만든다. 고대 예배당 천장에 여러 학문적 모티브들이 기하학적 패턴을 만들어내고, 그 패턴은 원래 예배당에 오랜 시간 자리 잡은 스테인드글라스와 공명한다. 또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에 맞춰 그 패턴들은 자유롭게 유영한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예배당을 수놓은 우주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자 세계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창(학문) 사이의 소통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보통 시리즈로 진행되는데 그 주제나 표현적인 면에서 다양성을 추구한다. 지역성과 역사성을 강조하기도 보편성과 미래성를 강조하기도 한다. 각각의 시리즈는 매년 진화하고 있다. 2018년 런던의 옥스포드 서커스에서 진행한 <오리진 오브 월드 버블 Origin of World Bubble>은 생물학, 미생물학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작업인데 2012년 <오리진 오브 월드 Origin of World>보다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한 세포들의 패턴이 등장한다. 그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작업의 규모와 주제는 하루하루 진화하고 있다.

origin of world 2012Origin of World, 2012

origin of world bubble_01 2018 origin of world bubble_02 2018Origin of World Bubble, 2018

editor 장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