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하는 현대인 : 이미혜 국민취향

1. 사적 취향의 공회전

취향은 만들어진다. 굳이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논의를 소환할 필요 없이, 우리가 볼 때 오늘날 순수한 취향이 여러 홍보전략에 의해 구성되는, 말하자면 만들어지는 시점에 와 있다. 다양한 TV 프로그램, 잡지 기사 혹은 말 그대로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SNS를 통해서 공유되는 내용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뿐만 아니라 ‘유행’이라는 말로 불리는 행보를 뒤쫓는 데 급급하다. 이때 많은 사람이 ‘나의 취향’을 강조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이러한 전략에 무의식적으로 길들여진 상태이다. 그 정보를 수용한 뒤 이제 그들은 정보의 생산자로서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생활을 공유한다. 그런데 사적인 일상생활이라 보기엔 많은 사람들이 같은/비슷한 물건이나 생활을 즐기고 있다. 비록 그들은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지만 같은 것을 추구한다. 계정뿐만 아니라 사는 곳 또한 다르지만 이들을 각각 점으로 보았을 때 공통된 모티프에 의해 선으로 묶어볼 수 있다. 각 계정에서 나름의 취향을 내보이고 있을지 언정, 그들은 공통된 물건을 가진 자로서 홍보전락이라는 궤도를 따르고 있다. 이때 개인의 취향은 이 하나의 궤도 안에서 공회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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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취향을 소비하기? 혹은 소비된 취향?

이번에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열린 이미혜의 전시는 우선 제목부터 특징적이다. ‘국민취향’이라 지어진 제목에서 작가는 정보사회 속에 사는 획일화된 스타일을 추구하는 현대인을 주목한다. 전시장에 들어가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보드 커팅한 세팅이다. 의자와 테이블을 비롯한 다양한 가구와 가전기기들, 그리고 기타 물건들이 세팅되어 있어 마치 쇼룸에 들어간 느낌마저 든다. 국민취향이라는 표현대로 이것들은 SNS를 통해서 많이 보편화된 취향의 ‘이미지’이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된 냉장고, 식물, 그리고 책까지 다양한 물건들을 찾을 수 있다. 이것들은 이미지로서, 즉 실제 물건과 달리 말 그대로 이미지로서 존재하는 겉모습만 닮은 가짜이다. 스피커나 의자 등등 대중에게 널리 수용된 물품들의 이미지는 상당히 두께가 얇고 허름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사실 사진출력이 잘 나와서 그런지 옆으로 가서 봐야만 그 재질의 느낌, 쉽게 포개지고 그만큼 얇은 재질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이것들을 보면서 중학생 시절 학생대표 선거 기간 때 우드락으로 제작된 홍보용 패널이 떠올랐다. 그 패널들이 선거 기간이 끝난 뒤에 무참하게 마포자루 안에 버려진 모습을 떠올리면서, 전시장 세팅에 포함된 가짜 양탄자를 보고 깔끔한 소리와 함께 부스러지는 장면이 생각났다.

이 세팅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SNS, 특히 인스타그램의 사진을 통해서 하나의 획일화된 패턴을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킨포크가 나온 인스타그램 사진을 골라서 벽에 나란히 붙이거나 모두가 좋아하는 시계를 찾아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작가는 세팅장과 공통된 관심사인 ‘국민취향’을 보여준다. 전시를 통해서 흥미로운 부분은 작품을 통해 사적인 취향이 얼마나 사적이지 못하고 거기서 개인의 취향 자체가 소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점이다. 미니멀한 가구나 세련된 디자인을 소비하는 인간의 모습뿐만 아니라 여러 매체를 통해 홍보된 내용에 쉽게 마음이 움직이는, 즉 거기서 ‘나의 취향’이 소비된 인간의 모습을 끄집어낸 점이 흥미롭다. 작가가 수집한 이미지 자료로 만든 카탈로그를 보면 거기서 어떤 물건의 소비형태뿐만 아니라 한 물건에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매혹된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도록’이 아니라 ‘카탈로그’로서, 즉 사람이 그것을 보고 어떤 물건이 좋을지 고르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어떤 사람을 매혹시키는지 보여준다. 비록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그 다양한 계정만큼 물건은 다양한 사람을 매혹시켜 획일화된 취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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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벽처럼 얇고 임시적인

획일화된 취향은 전시장에서 그 물건들을 하나의 허상처럼 보여준다. 껍데기밖에 존재하지 않은, 어떻게 보면 일상생활자체가 허무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미혜의 작업은 단순히 그것들을 허구로서만 보여주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작품과 전시, 그리고 더 궁극적으로는 작가의 관심사인 획일화된 취향을 ‘노가다’로서 보여주는 점이다. 세트장에 쓰인 가벽, 보드커팅, 그리고 그것들을 지지하는 여러 장비들은 사실 장비라 불리기 어려울 만큼 허술하게 만들어졌다. 만지면 금방 바닥에 내려앉는 것처럼 보이는 허약한 구조는 그것들이 임시적인 성격—특히나 ‘가벽’의 가(假)자가 가리키는 것처럼—을 드러낸 가짜다. 모래포대를 얹어 나무판 가벽을 받쳐주고, 테이프로 막대를 고정시킨 상태를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임시적인 성격이 한층 더 두드러진다. 금방 만들고 금방 치울 수 있는 것은 구조뿐만 아니라 얇게 만들어진 제품들의 이미지 또한 마찬가지다. 구매했지만 한 번도 쓰지 않은, 혹은 몇 번 쓰고 다른 것들로 대체된 물건들이 가벽 뒷부분과 박스 속에 마치 버려진 채로 있다. 이것들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매체를 통해 시시각각 전달되는 취향을 따라잡으려는 노고, 더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노가다를 제작방식과 연결시켜 보여준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 노가다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전시장과 카탈로그에 있는 이미지에서 확인되듯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을 때 그 주변을 치우고—‘미니멀하게’ 정리하고—하나의 촬영장, 즉 세팅을 만든다. 임시적으로 만든 이 세팅은 촬영이 끝나면 주변이 다시 지저분해진다. 사실은 촬영을 위한 세팅뿐만 아니라 어떤 물건을 내 취향으로 여기는 일, 그리고 그 물건을 사진 찍고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일, 이것 자체가 임시적이며 노가다이다.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수많은 사진은 그 노가다의 반복을 보여준다. 작품에 사용된 인스타그램 이미지에서 가끔씩 나오는 인물은 블러처리가 되어 익명의 존재로 나타난다. 그런데 사실은 블러처리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익명의 존재로 나타난다. 거기서는 물건이 나를 돋우어주기 때문에, 말하자면 물건의 이름을 빌려 나를 드러내줄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익명의 상태이다. 얼굴 없는 사람들은 어쩌면 ‘국민적 취향’이란 이름이 가장 어울릴 수도 있지 않을까.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