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로 맛보기: 허연화 개인전


1. 갤러리의 겉 핥기

어떤 전시가 열릴 때, 물리적인 단절이 있기 때문에 미술작품을 보려면 갤러리 안으로 가야만 한다. 비록 말과 글로 정보가 전달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미지로 순식간에 공유되는 시점에 다다랐다 하더라도, 공간의 물리적인 한계와 어려운 접근성을 감수하고 사람들은 전시를 보러 다닌다. 이때 사람들은 미술관/갤러리의 파사드/입구, 그러니까 외관을 볼 때 그 전시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미리 내부를 찍은 사진을 트위터로 보거나 아티클을 읽어오면 내부에서 열리는 전시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외관을 보고 미술관 내부를 온전히 파악하기 힘들다. 갤러리 외벽을 봐도 ‘내부의 전시, 작품이 주는 맛을 볼 수 없고’ ‘내부의 전시, 작품을 맛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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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갤러리 내부에서 맛보는 겉 : 전시공간과 색상

그렇다고 겉은 필요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기고자에서 열린 허연화 개인전은 오히려 여기서 말하는 겉 덕분에 작품을 보다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다른 전시와 마찬가지로 이 전시 또한 입구 계단과 전시 포스터만 보고 안에 도대체 어떤 작업이 어떤 배열로 어떻게 구성되는지 짐작을 못한다. 안에 들어가보면 관람자는 회화, 사진, 오브제 등 다양한 매체가 공통적으로 파란 색 톤으로 처리된 작업을 볼 수 있다. 여러 재질로 된 매체를 감상할 수 있는데 그것들이 상호교차적이라기보다 각각 매체’로서’ 독립적이다. 부조에 그림을 그리고 여러 매체를 복합적으로 설치하여 보여주는 것과 달리 하나의 매체가 하나로서 보여지고 있다. 이러한 매체의 다양성은 두 가지 껍질을 통해서 쌍방향으로 묶여진다. 하나는 작품의 표면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을 둘러싼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자는 작품 자체의 표면적인 색깔, 그리고 후자는 전시의 테두리 그러니까 물리적인 내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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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박을 음미하려면 겉이 필요하다.

다양한 매체는 통일된 색상 덕분에 원래 매체를 숨기지 않는다. 어떤 것은 사진이고 어떤 것은 데이터 편집한 이미지를 출력한 것이고, 어떤 것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즉 색상의 표현이 물리적인 매체마다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색상이 매체를 통해 변용/적용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재료의 다양성과 색상으로 정돈된 모습은 갤러리 외벽과 미묘한 관계를 갖는다. 갤러리 공간 내부의 다양성을 묶어주는 것은 색상, 그리고 갤러리 외벽이라는 두 개의 ‘껍질’이다. 껍질 하나는 전시공간 내부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내부를 구획 짓는 외벽이다. 이 두 개 껍질이 있어야만 관람자는 작품의 매체적 특징을 인식할 수 있다. 관람자에게 공통적인 인상을 주는 조건은 바로 색깔과 갤러리 외벽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껍질을 음미했을 때 비로소 작품과 매체의 다양성을 맛볼 수 있다. 통일된 색상을 ‘통해’ 매체가 갖는 특징을 맛볼 수 있고 동시에 하나의 공간에 전시가 됨으로써 잡다한 분위기로 이끌리지 않아 갤러리 안에서 매체들은 상당히 정돈되어 있다. 관람자는 갤러리 ‘내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내용이나 줄거리와 달리, ‘표면’을 음미함으로써 매체를 인식할 수 있다. 갤러리 내부 공간에서 표면을 간직함으로써 매체의 맛을 달리 간직할 수 있다. 회화는 회화로, 사진은 사진으로, 부조는 부조대로 맛볼 수 있다.

editor Konno Yu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