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안팎에서 들리는 맥박 : 더글러스 고든 <야누스의 초상(분단국가)>

올해 제작된 더글러스 고든(Douglas Gordon)의 영상작업 <야누스의 초상(분단국가)>이 11월 28일부터 12월 10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공개된다. 제목에 나오는 ‘야누스’는 한국계 남성 야누스 훈 장(Janus Hoon Jang)의 이름에서 가져왔으며, 영상에서 관람자는 비무장지역의 경계선이 문신으로 새겨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런데 20분 정도 진행되는 영상에서 얼굴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고 관람자는 그 대신 등을 마주본다. 제목에 나오는 ‘초상’이란 말과 달리 얼굴뿐만 아니라 키와 체격조차 확인할 수 없고, 화면에 나오는 대상과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작업에서 거리감은 오히려 등장하는 인물과의 실제적인 거리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구성을 볼 때 이 작품은 두 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 두 장면 모두 동일한 벗은 인물의 등을 보여주는데, 처음에는 벗은 상태에 랩처럼 투명한 비닐에 감긴 인물의 모습이 나오고 이어서 등에 문신이 그려지는 장면이 나온다. 두 장면 모두 얼굴도 대사도 나오지 않는데, 오히려 각 장면에 나오는 ‘등’이라는 공통적인 모티프와 화면에 나타나는 행위의 단순함 때문에 구체적인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두 장면 모두 등을 계속 비추며, 갑자기 다른 대상으로 이동하거나 다른 샷(shot)으로 옮겨가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카메라 움직임과 영상의 흐름이 안정적이다.

그런데 이 두 장면뿐만 아니라 또 다른 중요한 장면이 있다. 바로 두 장면을 연결하는 블랙 스크린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장면은 중간과 도입부, 그리고 종결부에 찾을 수 있는데 이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스틸 컷(still cut)으로 도록에 실린다면 이 작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것이다. 어둡게 처리된 장면을 보고 관람자는 시각적으로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작가는 어떤 존재를 까만 스크린에 보여주고 있는데 거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소리’이다. 처음에 도입부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것은 사람의 숨쉬는 소리이다. 어두운 스크린을 보면서 그것이 사람의 것이든 아니든 간에 일정 패턴으로 들리는 사운드는 하나의 생동감으로서 관람자의 귀로 전달된다. 그러므로 시각적으로 전달되지 않아도 화면을 보면서 어떤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정체 모르는 소리는 곧 화면이 밝아지면 주인공이 내는 소리임을 알아챌 수 있다. 등장인물은 가만히 등만 보여주고 관객들을 향해 어떤 표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 주인공 또한 관객, 심지어 자신의 등에 어떤 형태가 그려지고 있는지 볼 수 없다. 문신이 새겨질 일에 불안을 느껴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시선 때문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인공이 그 어떤 것과도 시선의 교환이 안 되는 것 때문인지, 대사 대신 나오는 숨쉬는 소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주인공의 감정을 전달하는 듯하다. 숨쉬는 소리는 화면이 밝아지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생동감을 전달하는데, 몸에 감겨진 투명한 비닐에서 호흡에 맞춰서 소리가 들린다. 몸에 바짝 붙은 비닐은 내쉬는 소리와 함께 살짝 부풀어오르기도 하는데, 도입부에서 청각적으로 들리던 운동감이 이때 시각적으로 관람자에게 전달된다. 청각적인 맥박은 이제 시각적으로,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는 어떤 사람의 맥박으로서 촉각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다시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이번에는 호흡과는 다른 소리가 들린다. 숨쉬는 소리에서 어떤 사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면, 이번에 들리는 소리는 기계적인 사운드이다. 마치 공장에서 들리거나 전자음악과도 같이 소리보다 사운드에 가깝다. 그러다가 화면이 밝아져 두 번째 장면에 문신을 그리는 사람의 손과 아까 등장한 인물의 등이 나타난다. 블랙 스크린에서 계속 들리던 사운드에 더하여 기계가 몸에 닿을 때 비슷한 소리가 추가된다. 그런데 호흡과는 달리 이 사운드가 과연 실제로 들리는 사운드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 들었을 때 사운드의 정체가 문신하는 장소에서 들리는 기계의 소리인가 싶었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현악기가 내는 소리임을 알게 된다. 이옥경이 연주하는 첼로 소리라고 리플렛에 나오지만 이 사실을 알고서도 이것이 현장에서 들리는 기계 소리인지 추가된 기계 소리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사람의 목소리 톤에 가장 가까운 악기인 첼로가 활의 빠른 반복운동과 전기증폭(amplified) 때문인지, 어떻게 보면 비명이나 신음소리처럼 들린다. 이때 점점 증폭의 크기가 커지는 사운드와 대조적으로 인물의 미동도 하지 않는 자세를 계속 지켜볼 수 있다. 문신을 그려가는 손을 따라서 촬영이 되는데 가끔씩 문신이 그려진 부분에서 피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리플렛에 소개되는 것처럼 문신은 비무장지역의 경계선을 그려가는데, 몸에 예쁜 그림이나 도상을 그리는 것과 달리 하나의 몸에 균열이 간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어떤 미적인 가치를 획득하려는 데 따르는 고통이 아니라 거의 일방적으로 고문 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주인공이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관람자가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태를 더욱 난처하게 만든다.

미동도 하지 않는 상태와 대조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심해지는 불안정한 초점, 문신을 새기는 기기와 사운드의 고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영상에 한 데 어우러지는 시각과 청각적 경험의 합치는 생동감/움직임으로서 나타난다. 그리는 손을 따르다가 막판에 카메라가 흔들리고 포커스가 왔다갔다하고, 사운드는 한층 더 고조되어 펄스로 들린다. 어쩌면 이 움직임은 주인공의 내면 상태일 수도 있다. 비록 겉으로/시각적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여도 선을 그릴 때 피가 흘리고, 자신의 등을 보지 못한 채 모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것은 심지어 자신이 문신을 원하였다고 가정을 할 때도 제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미동도 하지 않는 뒷모습에서 미동을 전달해주는 것이 바로 감겨진 비닐의 움직임과 흘러나오는 피이다.

작품에서 관람자는 주인공 얼굴을 못 보지만 그래도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사운드와 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떨림, 반복, 고조는 막판에 카메라의 시선과 사운드와 관람자의 심리상태를 일치시킨다. 스크린에 나오는 인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은 오히려 문신이 새겨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입장, 즉 가시성 때문에 맥박이 올라간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불안과 볼 수 있기에/볼 수밖에 없기에 초조해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서로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에 떨린다. 어떤 의사표현도 못한 채 피를 흘리는 주인공의 모습에 관람자는 관객석에 계속 앉을 수밖에 없고 불안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고든의 작업은 공간을 둘로 분단한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서로의’ 공간을 연결해주는 맥박, 바로 스크린 안과 밖으로 나누어진 입장 사이에 진동하는 긴장감이자 생동감이 중요하다.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