뻗어나간 환영의 공간 : 도널드 저드에서 다니엘 뷔랭, 더 나아가…

1/2 작품의 환영

도널드 저드도널드 저드, <무제 (진보)>, (1976)

1.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모더니즘 회화에서 그 매체가 갖는 속성에 주목하였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회화를 환영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평면성을 강조하는 추상회화로 나아간다. 매체의 환영을 거부하는 움직임은 미니멀리즘으로 이어지고 한층 더 강화된다.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가 분석을 하듯이 즉자주의(literalism), 즉 있는 그대로의 사물로서 나타난다. 도널드 저드(Donald Judd)와 칼 안드레(Carl Andre)에 대표되는 미니멀리즘은, 그린버그가 분석한 평면성이 여전히 환영의 공간을 나타낸다고 분석하여 ‘회화도 조각도 아닌 사물(저드)’을 만들었다. 이에 대해서 할 포스터는 저서 콤플렉스에서 댄 플레빈(Dan Flavin)의 작업을 분석하면서 미니멀리즘, 특히 저드의 작업에서 빛이 주는 환영의 효과를 찾아내고 있다. 알루미늄 판의 광택과 연속된 유닛(unit), 그것들 이음새 부분의 조합이 모호하기 때문에 회화적, 즉 환영의 효과가 분명하다.

 

 

프랭크 스텔라

프랭크 스텔라, <인도의 황제>, (1965)

2.

환영의 공간을 거부한 또 다른 사례로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작업이 있다. 그는 미니멀리즘이 회화도 조각도 아닌 사물을 만든 것과 달리, 회화를 (말 그대로) 틀 지으면서도 항상 부속물로 전락한 액자(frame)를 강조하였다. 그의 작업에서 더 이상 회화의 환영적 공간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억눌려 있다. 그때까지 그 공간을 규정해온 프레임이 이제 표현이라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서 확장되었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회화의 진리(The Truth in Painting)』(1978)에서 언급하는 내용을 따라 분석하면 스텔라의 작업에서 파레르곤(parergon)과 레르곤(rergon)의 관계가 이제 모호해졌다.

 

루이스 롤러루이스 롤러, <얼마나 많은 그림이>, (1989)

3.

저드의 작업에 (사실) 내포된, 그리고 스텔라의 작업에서 모호해진 환영적 요소와 공간은 오브제라는 작품 자체에만 주목한 분석이었다. 그런데 작품이 놓이는 위치, 말하자면 주변환경에 따라서 환영적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루이스 롤러(Louise Lawler)의 작업에서 우리는 작품이 어떤 공간에 위치되느냐에 따라서 환영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사진 작업 <How Many Pictures>(1998)에서 스텔라의 작업이 비춰진 바닥을 촬영하였다. 작품 자체에서 재현과 환영을 배제하려고 시도한 저드와 스텔라는, (후자의 경우는 모호한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전시의 공간, 즉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된다. 주변이 그것들을 환영의 상으로 비추게 되면, 더 이상 작품은 환영을 거부할 수 없다. (2/2로 계속)

<참고문헌>
할 포스터, 「10장 해방된 회화」, 『콤플렉스』, 김정혜 역, 2014
정연심, 「3장 미니멀리즘의 등장과 관객의 참여가 중요해지는 1960년대 미술」, 『현대공간과 설치미술』, 2014
다니엘 마르조나, 『개념미술』, 김보라 역, 2008
ジャック・デリダ, 「パレルゴン」,『絵画における真理(上)』, 高橋允昭, 阿部 宏慈 (訳), 2014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