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극복—체념 : 백현진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을 중심으로

김소월의 유명한 시 <진달래꽃> 첫 구절을 읽으면 다음과 같다.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필자는 본 글에서 김소월의 시를 여성적인 감수성 혹은 국어학문적 문제로 다루려고 하지는 않는다. 눈 여겨본 부분은 시적 화자의 태도가 남성적이다 여성적이다가 아니라,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관한 것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화자는 여기서 기꺼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 필자는 그것을 ‘체념’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이겨내기에 힘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안으로서 갖는 태도, 그것이 바로 체념이 아닐까 싶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읽어도 그러한 태도가 드러난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두 가지 시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체념의 자세는 역설적으로 극복을, 어떤 초월적인 힘을 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차원에서 하는 ‘갈등의 해소’로 보는 것에 가깝다.

어떤 거대한 위기를 겪으면 사람들은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지만 실상 일상적인 차원에서 사람들은 갈등과 어려움을 느끼며 정신적인 무게를 느낀다. 그러한 차원에서 강조되는 것이 바로 체념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9월 13일부터 시작된 《올해의 작가상 2017》에서 소개된 백현진의 작업은 상당히 흥미롭다.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2017)라는 이름으로 제작된 이 작업에서 관객들은 ‘휴게실’ 단어가 붙은 오두막집 안으로 들어가서 묘한 분위기를 느낀다. 이 묘한 분위기는 아마도 휴게실이라는 말 때문에 그렇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쉬는 공간을 뜻하는 이 단어는 그의 작업에서 관객들이 편안한 인상을 갖기 힘든 공간이다. 이 부분에서 확실히 리크릿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가 만든 <무제 (내일은 또 다른 날) (1996)>와는 성격을 달리 한다. 24시간 공적인 공간으로서 마련된 그의 작업은 주방도 침대도 있는 집 같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백현진의 작업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편안한 공간이 아니다. 안으로 들어오면 책상 위에 종이가 놓여 있다. 종이를 보면 시가 인쇄되어 있고, 그 자리에서 관객들은 앉아서 시를 읽을 수 있고 종이를 가져갈 수 있다. 평균적인 키보다 높은 위치에 눈을 돌리면 이 작품의 이름으로 된 네온 사인, 커다란 그림, 거울 두 개가 얇은 나무 판으로 된 벽에 걸려 있다. 벽에 걸린 네온 사인과 가시가 난 나무는 어떻게 보면 종교적인 모티프(신을 상징하는 빛과 면류관을 쓴 예수의 고통)로 연결시킬 수도 있으며, 그 공간에서 향을 피우는 행위는 동양적 제사의 방식에서 더 나아가 죽음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 이처럼 휴식 공간이라는 말이 내포하는 안락함은 극단의 것들과 함께 오두막집 안에 공존한다.
  전시공간에 있는 시를 읽으면 어떤 사람의 일생이 그려지는데,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 이름도 없는 등장인물이 죽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작품 제목에 나오는 부정적인 말이 이 시에 등장하는 그 인물이 겪은 일이라는 것을 시를 읽은 사람은 알아챌 수 있다. 시에서 그의 죽음에 대해 친구들의 모습은 제각각 그려진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결코 극적으로 강조되지 않는다. 그들의 반응과 모습은 일상적인 것으로 그려지며 오히려 종교적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왜 죽냐고 이 병신아”라는 말이나 “편육을 몇 점 집어먹으며 소주를 마신다”라는 표현을 보면 우리는 시에 나오는 사람들이 초월적이거나 절대적 힘의 도움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어떻게 그 감정을 추스르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네온 사인이나 가시가 난 나뭇가지는 어떤 초월적인 것으로 승화된 숭고한 상징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다. 방 구석에 놓인 스티로폼으로 된 침대는 네온 빛만큼 초라하다.

작가는 전시와 관련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주변에서 살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못 해 먹겠다 못 살겠다. 제 주변에서 제가 많이 느끼고 잘 아는 얘기들을 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휴게실을 이용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전시장에 걸린 제목 소개 부분을 보면 앞 부분이 래커로 지워져 휴게실이라는 단어만 보인다. 휴게실은 제목 앞 부분과 관련성 있는 사람들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일상 속 어려움은 미술관을 찾는 많은 사람들 모두가 일상에 경험하며 단지 시에 나오는 하나의 인물, 혹은 “어떤 휴게실에 들어서“는 그 친구 중의 한 명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업에서 편안함은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극단에 위치한다. 휴게실의 기능, 말하자면 편안함을 제공하는 일은 초라하지만 한 줌의 위안을 주거나 아니면 죽음이라는 극단의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달성된다. 전자는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소설에 나오는 장면에도 찾아볼 수 있지만, 백현진의 작업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불편함과 안락함이 동시에 있을 때 가장 적절한 해결책, 그것이 바로 체념이다.

<참고자료>
《올해의 작가상 2017》 전시 리플렛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NqEoYw-ARI0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