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건축술—노일훈

대문사진 출처 : [https://ssproxy.ucloudbiz.olleh.com/v1/AUTH_0757f53a-0e0f-4359-aedf-305db3704eca/platformlstatic/a1545d2864c143d8b52f347c38eae67d20170711103821.jpg]

기간 : 2017.07.12. – 2017.09.17.

주최 :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관람료 : 5,000원(일반) , 4,000원(경로우대, 청소년)

관람시간 : 화-일 11:00-20:00

전시장소 :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전시장 A, B, 렉처룸

전화 : 02-6929-4471

홈페이지 : https://www.platform-l.org/

노일훈은 집을 설계하지 않는 대신 상상의 집을 짓기 위한 건축 구조를 실험한다. 그가 행하는 구조 실험의 결과는 건축적 조각의 형태를 취하는데 작가는 기능보다 구조를 우선시하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표현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으로 가구 형태의 오브제를 제작한다. 노일훈은 프라이 오토(Frei Paul Otto)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의 영향을 받아 자연주의 건축 또는 유기적 디자인 작가로 분류된다. 생명체뿐만 아니라 번개, 파도, 물결, 지구 자기장 등 자연현상에서 발견되는 패턴들을 첨단 소재를 통해 구조화하는 그의 작업은 수많은 실험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현된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생물학, 물리학, 수학과 융합과학을 바탕으로 성장과 증식이라는 자연의 원리를 모방해 인공 자연을 만들어내는 디자인 경향에 닿아 있다.

노일훈의 대표 작업인 <라미(Rami)> 시리즈는 나뭇가지가 갈라지며 뻗어 나간다는 의미의 ramify를 어원으로 한다. 식물의 생장력을 상징하는 이 현상은 지구의 중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동물, 식물과 같은 모든 생명체는 이러한 구조로 형성된 견고하고 안정된 조직(tissue)을 갖는다. 전시장 입구 양쪽 벽면에 설치된 끈 작업은 라미 시리즈의 구조 원리를 보다 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2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벤치, 사이드 테이블 그리고 스툴로 구성된 <라미> 시리즈와 <루노(Luno)>로 명명된 안락의자가 있다. <루노>는 신체의 완만한 곡선을 본 땄지만, 구조적으로는 중력을 받치는 아치 지붕(vault) 형상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가구 형태의 조형물을 제작하기 위한 공정은 상당히 복잡하다. 우선 필름 형태의 탄소 섬유를 꼬아서 끈으로 만들고, 끈을 정밀하게 설계된 3차원 직조기 사이를 수차례 교차시키고 잡아당겨 형태를 고정한다. 이렇게 형성된 구조체를 화로에 넣어 가열하면 탄소섬유가 경화되어 매우 가벼우면서 견고해진다.

제작공정의 가장 신비로운 순간은 이러한 틀과 더불어 생성된다. 융합 과학 지식과 고성능 컴퓨팅 기반의 시뮬레이션을 거쳐 설계된 이 틀은 첨단 기술의 산물이지만 이 도구를 통해 수행되는 각종 실험과 제작 과정은 전통 장인의 수공예 방식을 따른다. 끈을 잡아당기고 꼬아 엮는 방식은 지승공예, 짚풀공예를 연상시키며 가열된 화로에서 탄소 섬유 구조체를 구어 내는 방식은 전통 도예에서 가마를 사용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전통 공예 방식을 차용한 조명 스크린 <노두스(Nodus)>는 탄소섬유 소재의 끈을 잡아당기고 꼬아 만든 곡면 그리드 사이에 광섬유를 가로질러 엮은 매우 독특한 설치작업이다. 탄소섬유를 가로지르는 광섬유 여러 가닥을 꼬아 만든 선은 엮은 상태의 촘촘함과 꺾어진 각도 차이로 인해 빛이 균질하게 맺히지 않는다. 그 결과 빛의 미세한 차이는 섬세한 빛의 드로잉과 같은 시각적 효과를 낸다.

3층의 조명 설치작업 <파라볼라 파라디소(Parabola Paradiso)> 는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형식의 조명과 바닥에 놓인 아치 형태의 조명기구들이 중첩되어 구성되어 있다. 한국 전통가옥의 처마를 연상시키는 샹들리에의 늘어진 광섬유 가닥들은 작은 비즈들이 꿰어져 있어서 자연스러운 곡선을 만들어낸다. 반대로 아치형의 조명기구들은 스테인리스 와이어와 광섬유 가닥들이 중첩되어 미세하게 진동하는 빛의 파장으로 눈길을 아른거리게 하는 시각적 간섭이 나타난다. 공중에 매달린 포물선 형태의 샹들리에들과 지상에 설치된 반복적인 아치형 조명들의 조화는 이를 대면한 관객을 일종의 인공적 자연 풍경 안으로 인도한다.

4층의 알루미늄과 레진 소재의 테이블, 그리고 레진 소재의 플로어 스탠드는 작가가 수년 동안 진행해온 장력 구조 실험의 진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초기에 라이크라 천을 입체적으로 잡아당겨 천막 구조물의 형태를 연구했고, 이 실험의 과정을 플로어 스탠드와 테이블 제작에 도입했다. 이후 좀 더 발전된 단계에서 작가는 구조 역학 시뮬레이션을 통해 ‘버추얼패브릭(Virtual Fabrics)’을 실험에 활용했고, 알루미늄 소재의 테이블과 원형 탁자를 설계 및 제작할 수 있는 부단한 기술적 진화를 경험했다.

전시장 한쪽의 육중한 금속 구조 틀은 관객들에게 최초로 공개하는 작가의 창작 과정 중의 하나이다. 틀 안의 탄소섬유 줄기들은 금속 추를 사용한 중력실험을 거쳐 이상적인 곡선을 획득하게 된다. <파라볼라 파라디소>의 아치형 조명기구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노일훈의 스튜디오는 제작공방인 동시에 실험실이다. 그의 스튜디오는 문자 그대로 디자인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각종 재료, 소재들과 힘겨루기하는 생산의 장소이기도 하다. 작가는 초기 실험과정부터 완성된 작품 제작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수공예 방식을 고집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영상은 첨단 디지털 기술과 신소재 그리고 전통적인 수공예가 결합한 보기 드문 제작공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홈페이지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