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롤을 통해 바라보기 : 선우훈의 작업 <가장 평면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을 중심으로

그림11) 화면상의 시뮬레이션

오늘날에 이르러 많은 물질이 비물질, 특히 화면상에서 시뮬레이션된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 중에서 종이만큼 대체된 것도 없지 않을까 싶다. 킨들로 읽는 전자 책에서 시작하여 수업시간에 공책 대신에 쓰는 노트북까지,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가 그래도 종이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종이가 화면상의 비물질적인 것으로 대체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예술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만화는 온라인 코믹(웹툰)으로 읽을 수 있으며, 그림은 인파에 섞이는 일도 없이 고화질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집에 소장된 포토 앨범을 손에 드는 무게가 아니라, 파일과 데이터 저장 공간의 용량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 무게는 컴퓨터의 작동 속도를 늦추지만 사람에게 질량적인 무게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사진은 물론 책이 많아져서 깔려 죽을 것 같다는 불안은 이제 컴퓨터의 저장공간이 해결하게 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만화는 (아직도) 형식적으로 종이 책의 방식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한 페이지씩 넘기는 방법, 컷으로 구성된 각 장면은 여전히 페이지라는 구획에 얽매여 있다. 어떤 경우에는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마저도 들리는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종이 책에 대한 향수 어린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물론 컷 안에 포착되는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온라인 만화는 페이지의 모서리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페이지라는 구획을 전제하는 종이 책과는 달리, 그 패이지 사이에 있는 모서리를 없앰으로써 페이지라는 개념을 아예 유동적인 성격으로 바꿀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적합한 작업으로 이번에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하이라이트》 전시에 소개된 작가 선우훈의 작업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2) 선우훈의 <가장 평면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와 스크롤링

<가장 평면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2017)는 스크롤을 통해 읽을 수 있는 만화이며,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여러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다. 촛불시위나 세월호 사건에 대한 시위 현장의 모습, 그에 참여한 사람들과 주변 건축물의 모습은 정밀하게 표현되어 있어, 현장에 많은 사람이 찾아온 것을 시각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 이러한 최근의 한국 사회의 모습과 함께 이 작업은 전통 회화를 상기시키는 면이 있다. 화면의 길이와 상응하여 첫 장면에 나타나는 산의 이미지와 잇따라 조감도로 그려지는 도시의 모습은 <태평성시도>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형식에 대한 유사성뿐만 아니라 필자는 선우훈의 작업에서 감상방식이 두루마리 그림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업뿐만 아니라 오늘날 웹 사이트를 관람할 때 우리는 스크롤을 통해 위에서 밑으로 글을 읽거나 만화를 본다. 거기서 페이지 수는 주제가 달라지거나 문장의 길이를 고려할 때 편의상 마련되었을 뿐이지 대부분의 경우가 ‘모서리’ 없이 읽거나 보는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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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우훈의 작품을 읽는 방법은 두루마리 그림을 보는 것과 완벽하게 동일한 것은 않다. 그 이유는 그것이 비물질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사이의 차이도 그렇지만, 화면을 통해 감상할 때 여전히 컷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컷은 대부분의 만화 (종이 책이든 온라인 책이든 불문하고) 에서 검은 색 테두리가 눈에 보이는 컷이었다면, 선우훈의 작업에서는 화면의 크기 및 범위가 바로 테두리이다. 마지막 ‘부분’ (여기서는 굳이 ‘장면’이라고 하지 않겠다)을 보면 스마트 폰의 버튼이 보이며 화면이 보이는데 계속 밑으로 내려가면 그 버튼이 바다에서 해가 지는 모습으로서 나타난다. 거기서 장면은 선으로 구획된 테두리가 아니라 이제 화면이라는 테두리로서 유동적으로 ‘장면’을 포착하게 된다. 그러므로 독자의 시선이 칸 사이의 흐름이 아니라 테두리 내의 흐름으로 페이지를 나누지 않고 옮겨간다고 볼 수 있다.

3) 담을 수 없는 존재의 무게

선우훈의 이 작업에서 관람객은 스크롤을 통해, 페이지의 어떤 단절도 없이 매끄럽게 읽어나갈 수가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 다루어지는 주제는 매끄럽지 못한, 말하자면 한국사회가 단절된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국가와 시민들간의 단절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 한층 부각되며, 단결의식을 통해 권력에 맞서기까지 발걸음을 나아가게 한다. 정치적인 대한민국의 상황을 평면적인 표현으로 그린 이 작업에서, 이때 평면이라는 말은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다루는 것 또한 정치적인 힘이라는 뉘앙스가 함축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요컨대 주제와 그려진 모티프뿐만 아니라 원래 정치가 더러운 부분을 숨기려 하는 것을 통해 힘을 유지한다는 것 또한 평면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에서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가볍거나 무겁거나 하는 일은 긍정과 부정으로 나누기 어렵다고 서술한다. <가장 평면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에서 심중한 주제는 평면으로 표현된다. 거꾸로 가벼운 판단은 극심한 영향을 유발하게 된다. 이 양극단 사이에 생기는 갈등을 비분절의 상태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중립적이며 그럼으로써 쿤데라가 말하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중립성을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조감도적 시각은 판옵티콘적 권력자의 시각이 아니라 저널리즘의 건조한 훔쳐보기와 같다.

<참고자료>
ウンベルト・エーコ、ジャン=クロード・カリエール, 『もうすぐ絶滅する紙の書物について』
(Umberto Eco, Jean-Claude Carriére This is Not the End of the Book), 工藤妙子(訳), 阪急コミュニケーションズ, 2010
ミラン・クンデラ, 『存在の耐えられない軽さ』(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千野栄一(訳), 集英社, 1998
선우훈 트위터 계정 https://twitter.com/standlaid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