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지슈토프 보디츠코 :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

기간 : 2017.07.05 – 2017.10.09

주최 : 국립현대미술관후원 / 주한 폴란드 대사관 

관람료 : 4,000원(서울관 통합관람권) / 야간개장(06:00pm~09:00pm)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수,토요일_10:00am~09:00pm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전시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실5, 7 및 복도공간

전화 :  +82.(0)2.3701.9500

홈페이지 : www.mmca.go.kr

이 전시는 시회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공공장소에서 드러내는 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폴란드 출신의 작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1943년생)의 50년에 가까운 예술경력을 소개하는 회고전이다. 그는 공공장소, 기념비, 도심 속 빌딩 등 도시라는 문맥 속에서 사회 내 구성원들 간의 대화와 논쟁을 활성화시키는 작업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예술과 사회, 민주적 절차 간의 관계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에는 당대의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새롭게 제작하는 참여적 미디어아트 프로젝트도 소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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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주 수요일 7월6일,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이라는 전시 이름 아래, 폴란드 출신 작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Krzysztof Wodiczko)의 작업이 대거 소개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은 초기 작업부터 최근 작업에 이르기까지 볼 수 있으며, 전시 제목이 가리키듯이 그가 작업에 사용하는 매체 또한 다양하다. 작가 스스로가 한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나는 사진가이며, 산업 디자이너이며, 미디어 아티스트이며, 비평가이며, 역사가이고, 철학자이면서 정치가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 중 하나는 아닙니다.”

전시장에 소개된 작업의 유형을 굳이 두 가지로 나누자면, 장치/기구와 프로젝션이라 할 수 있다. 장치/기구는 실제로 사람들이 착용하여 쓸 수 있는 것으로 제작되며 <개인적 도구 (Personal Instrument)> (1969)나 <탈-무장 (Dis-Armor)> (2000)처럼 실제로 사람이 신체에 착용하여 주변의 소리를 듣거나 전송된 영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장치/기구에 해당되는 다른 작업으로 바퀴가 달린 <노숙자 수레>(1988-89)이 있는데, 이 작업은 <수레 (Vehicle)> (1971-73)에서 발전시켜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캐나다로 이주하기 전, <수레>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포크살 갤러리 (Foksal Gallery)에서 후원을 받고 제작되었는데 <노숙자 수레>와 차이가 있다. 수레 위에 실제로 올라타면 수레가 움직이게 되는데 여기서 수레는 전진 혹은 후진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기술이 갖는 낙관주의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라 할 수 있고 허무적인 인상을 준다. 반면 <노숙자 수레>는 뉴욕 노숙자가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현실을 쉘터형 주거로 대변한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수레라는 소재는 두 작업에서 공통적이지만, 그것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 말하자면 사회 정치적 배경은 폴란드와 미국에서 각각 달리 표현된다.

그림4한편 프로젝션 작업은 대부분 공공장소, 특히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건축물에 영상이나 텍스트를 투영한 것이다. 이 작업에서 영상이 투영되는 경우는 건축물의 외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히로시마 프로젝션 (Hiroshima Projection)> (1999)이나 <크라쿠프 프로젝션 – 시청사 탑 (Kraków Projection-City Hall Tower)> (1996)에서 건축물이 마치 인간처럼 보인다. 영상과 텍스트는 주로 어떤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녹취한 내용으로 제작되는데, 표출되는 기회가 많지 않은 개개인의 의견과 감정이 프로젝션을 통해 전달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된 작업으로 백범 김구의 초상에 어떤 사람이 소원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촬영하여 투영하였다. <나의 소원 (My Wish)> (2017)라고 이름 붙여진 이 작업에서 관람객은 세월호 참사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 탈북 예술가 등 여러 사람들의 소원을 영상을 통해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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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살펴본 두 가지의 작업은 작가가 캐나다로 망명하기 이전, 폴란드에서 활동하던 시기까지 거슬러올라가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의 초기 작업은 어떻게 보면 개념주의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전시공간에 소개된 <자화상 (Self-Portrait)> (1973)은 거울과 사진 이미지를 사용한 작업이다. 반사되어 거울에 비친 작가의 모습은 내성적인 태도도 볼 수도 있지만, 표현의 측면에서 보면 왜곡된 상과 허상, 그리고 실제 간의 관계를 모색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전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거의 같은 시기 폴란드에서 제작된 작업인 <사다리 (Ladder)> (1976)이나 <의자 그림 (Chair Drawings)> (1974-75)을 보면 재현과 그 본질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드러나 있다.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의 그림 <사제들>처럼 일차적인 상징을 드러낸 것은 아니라, 오히려 실제 사물이 왜곡되어 보이는 혹은 그것을 일부러 왜곡하여 보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초기 작업이 창작된 당시 폴란드에서 공산주의가 지배적이며 검열이 시행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앞서 소개한 <개인적 도구>는—스텔락(Stelarc)의 작업처럼—단순한 ‘신체의 확장’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주장의 허용이자 개인적 차원의 보호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림7전시장에 소개된 또 다른 초기 작업으로, <참조 (References)> (1977)가 있는데 이 작업에 이미 프로젝팅이 사용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로 선과 가로선 그리고 사선이 그려져 있는 화폭에 각각 영상이 투사되는데, 이는 선의 형식에 따라서 투영되는 대상이 조화를 이루듯이 비춰짐으로써 아름다운 비례나 형식미가 작가의 조작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런 특징에서 보면 오늘날 공공 프로젝션 작업과 비교할 때 사용되는 매체는 같지만 작품의 표현에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10월 9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보디츠코의 작업을 그의 초기 작업과 연결시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뿐만 아니라, 공공장소보다 폐쇄된 미술관 전시공간에서 작품 <나의 소원>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물론 이 전시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가 <노숙자 수레>를 설명하면서 “이상적인 쉼터를 지향하기보다는 도시의 유랑하는 존재에 의해 부각된 특정한 한계와 타협에 주의를 기울여서” 디자인하였던 바와 같이, <나의 소원>을 통해 대한민국이 갖는 복잡한 여러 문제를 다시 조명해 준다는 점에서 보다 큰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림8전시장 내부에 소개된 영상 작업. 왼쪽에서 <크라쿠프 프로젝션 – 시청사 탑>, <티후아나 프로젝션 (Tijuana Projection)> (2001), <히로시마 프로젝션>, <미등록 이주노동자 (Sans-Papiers)> (2006)

그림9<개인적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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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수레>. 오른쪽에 <히로시마 프로젝션>의 한 장면을 출력하여 붙인 세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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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기스: 이방인의 도시를 위한 기기 (Ægis: Equipment for a City of Strangers)> (1998-1999)

그림12<히로시마 프로젝션>

그림13<…여기에서 나가: 참전 군인 프로젝트 (Out of Here: Veterans Project)> (2009)

그림14<노숙자 수레>그림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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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 전시 리플렛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7)

카스야 아키코 (Kasuya Akiko), 「폴란드 현대미술과 보디츠코」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 전시 연계 강연, 2017.07.05.)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