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오늘날 쉽게 편집이 가능한 것이 되었다. 포토샵을 비롯하여 스마트 폰 앱에 이르기까지, 사진은 복제뿐만 아니라 가공과 편집으로 원본을 꾸밀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은 한 번 찍은 사진을 가지고 다양하게 편집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물 자체에 대한 인식에 대한 변화를 준다는 것이다. 증명사진을 보면 이러한 위력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서류에 자신의 사진이 붙여질 경우, 요즘은 자신의 얼굴이 포토샵으로 처리된 것을 붙인다. 주름살이 없어진 얼굴과 눈이 약간 커진 모습으로 나온 사진을 보고, 사람들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인물뿐만 아니라, 자연 경관 역시 그렇다. 실제로 가서 보는 것보다 인터넷이나 잡지를 통해 공유된 사진 속 장면만큼 아름답게 보일 때가 없다.

증명사진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나의 모습이라고 알아보지만, 동시에 편집되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이 때 말하는 편집은 ‘시술한 흔적’을 보여주지 않는다. 편집의 과정에서 어떤 것을 숨겼는지, 우리는 가공된 사진에서 구체적으로 찾기 힘들어한다. 자연스럽게 나온 사진 속 나의 모습은 거울에서 보는 나의 모습과 약간 다를 뿐이며, 어떤 편집된 흔적을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주근깨가 아예 실제로 없는 것처럼 나온다. 이 관점은, 마치 검열의 단계와도 같다. 이때 말하는 검열이란 금지된 키워드를 흰색 처리하여 지우는 것, 말하자면 검열의 흔적이 드러나는 것과 다르다. 여기서는 결과물을 볼 때 무엇이 검열되었는지 단번에 알지 못하는 검열을 말하는데, 이는 미국의 관리체제 하에 일본에서 시행된 검열의 양상과 같다.그림2

이처럼 이면에 숨겨진 것—편집한 흔적과 처리대상이 된 주근깨나 주름 등—을 함께 껴안은 사진은 ‘낯서나 어디서 본 것 같은 존재’로서 나타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분석한 언캐니(uncanny, unheimlich)로서 인식되는 오늘날 사진의 특징은 아스거 카르센(Asger Carlsen)의 작업에도 찾을 수 있다. 그는 포토샵을 이용하여 작업을 하는데, 작품 속 피사체를 보면 기묘하게 보이지만 실제에 존재하는 듯 나타나 있다. <Hester> (2013) 시리즈에서 사지를 절단한 존재로 보인 존재는 한스 벨머(Hans Bellmer)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형이나 프랜시스 베이콘(Francis Bacon) 회화 속 인물을 연상시킨다. 그들 작업과 유사하게, 카르센의 작업에서 피사체는 종종 인간처럼 보이지만 살아있지 않거나, 물건처럼 보이지만 숨쉬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업은 편집한 흔적을 자세히 짚어보기 어려울 정도로 실제에 있는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비물질적인 것이 생명을 갖는 것으로 보이는 존재는 프로이트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어린 시절의 욕망 혹은 단지 어린 시절의 믿음과 관련된다.” 인간과 사물을 구분하는 이분법을 아직 모르는 어린아이가 인형을 생명체로 보듯이, 카르센의 작업을 보면 이분법적 경계가 무너지고 그로 인하여 우리는 낯설지만 익숙한 인상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에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Das Unheimliche」에서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바이다. 카르센의 작업도 마찬가지로, 억눌러 있던 것과 마주하게 되면서 미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런데 벨머의 작업과 달리 카르센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언캐니는 편집의 흔적을 억압하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설명할 때 조합한다(building)는 말을 쓰는데, 마치 실제에 있는 듯이 매끄럽게 표현된 그의 작업은 탁월한 편집 기술로 그 가공된 흔적을 인식 못하게 하고 있다.

<사진출처>
[https://twelve-books.com/products/hester-by-asger-carlsen-signed?variant=31849947340]

<참고자료>
지그문트 프로이트, 「두려운 낯설음」, 『예술, 문학, 정신분석』, 정장진 옮김, 열린책들, 2003

http://www.asgercarlsen.com/
http://gadaboutmag.com/jp/interview-asger-carlsen/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