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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일본 나오시마에 있는 이우환 미술관을 찾았다. 이곳은 작가의 다양한 작업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방문한 시기를 앞서 도쿄근대미술관의 상설전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작업을 실제로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본 작품은 회화작품이었다. 작가가 회화작업을 계속해서 그런지 (그리고 많은 논쟁의 영향도 있어서 그런지), 최근에는 설치작업보다 회화작업으로 더 알려진 작가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미술사조를 통해서 볼 때, 그가 명성을 얻은 계기가 된 작업은 아무래도 ‘모노하’와 관련된 설치작업이 아닐까 싶다. 그의 작품 제목을 통해 확인되듯이 이우환은 ‘관계’와 관련된 작업을 계속해 왔는데, 구겐하임미술관에 다시 전시된 <관계항>(1968/2011)이 그렇듯이 그의 설치작업에서 다루어지는 재료는 일상적으로 만나는 일이 없는 자연물과 인공물의 조우라 할 수 있다.  이우환 미술관에서도 이러한 설치작업을 감상할 수 있는데, <관계항-신호>(2010)와 <관계항-침묵>(2010)에서 어두운 색 철판과 자연의 돌이 마주한다. 이는 대지미술의 작가 태도와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후자가 갖는 작가성, 말하자면 자연을 작품 소재로 다룬다는 생각은, 이우환의 작업에서 관계를 보여주기만 하는 위치에 국한되어 나타난다.

이우환의 설치작업을 이렇게 이해를 하고 전시공간으로 들어가, 미술관이 개관된 시기에 맞춰서 제작된 <관계항-돌의 그림자>(2010)라는 작업을 보았다. 그런데 기대했던 바와 달리, 이 작업은 그의 작업에 예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영상을 재료로 썼다는 점에서 특이했다. 이 작업은 돌의 그림자 부분을 칠해 거기에 영상을 투사한 작업인데, 작가는 어떤 관계를 보여주고자 하였을까? 그의 많은 작업이 재료의 측면에서 인공과 자연의 관계를 보여준다면, 이 작업은 시간에 따른 변화와 물질의 변하지 않는, 말하자면 본질적 요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투사된 영상은 그림자 위치에서 바다, 군중 등 다양한 장면으로 나와 비교적 빠른 시간 사이에 옮겨간다. 반면, 그림자의 모태인 돌은 그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 돌이 지니는 견고함과 단단함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림자에 비춰지는 영상과 대조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림자는 우리가 길을 걸을 때 그렇듯이 태양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며, 궁극적으로는 해가 뜨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그림자의 모습이 바뀌는 반면, 걷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돌은 단순히 자연적 소재가 아닌,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본질적인 존재로 볼 수 있다.

재료의 측면에서 그의 작업은 박현기의 영상작업과 비교할 만하다. <반사 시리즈 (#1 물)>(1997)에서 작가는 전시공간 바닥에 대리석을 놓고 거기에 물의 영상을 투사한다. 흐르는 것과 흐르지 않는 것 사이의 관계는 두 작가의 작업에 공통적인 관심사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우환의 작업은 이 둘의 관계가 물체와 그림자, 말하자면 플라톤이 ‘동굴의 비유’에서 말하는 이데아의 설명에 잘 맞아떨어진다. <관계항-돌의 그림자>에서 작가는 본질과 변화하는 그림자의 관계에서 전자에 중심을 두려고 하지 않으며, 서로간의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각각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어떤 위계를 두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주장과 달리 하였다고 판단할 수 있다. 반면 박현기의 작업은 단순히 흐르는 것과 흐르지 않는 것을 재료의 측면(동적-영상, 고정적-대리석)에서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우환의 작업은 시시각각 변하는 영상을 가지고 그림자의 시간성을 보여주었던 반면, 박현기의 작업은 물이라는 흐르는 속성에 주목하였지만, 영상을 통해 얻는 인상은 변화가 아닌, 오히려 정적인 명상에 가깝다. 이우환의 작업은 초기부터 나타난 재료 간의 관계에서 나아가서 그것들이 갖는 속성에 주목하였다는 점에서 <관계항-돌의 그림자>는 평가할 수 있다.

<참고자료>
김미경, 『모노하의 길에서 만난 이우환』, 공간사, 2006

질케 폰 베르스보르트-발라메, 『이우환 (타자와의 만남)』, 이수영 (역), 2008
박현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갤러리 현대, 2017) 전시 리플렛
이우환 미술관, 전시 리플렛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