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목소리를 드러내며 : 딘 큐 레의 영상작업

올해 3월 19일부터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상상적 아시아》 전이 열렸다. 전시장에서는 아시아 작가의 다양한 영상작업을 감상할 수 있는데, 주제의 측면에서 보면 그 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과 세계화 속에 있는 각 나라에 대한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베트남 작가 딘 큐 레(Dinh Q. Lê)의 작업은 흥미를 이끌었다. 이번 전시에 유일하게 두 작품을 보여주는데, 서로 다른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신기했다. 작가는 베트남에서 생활하다가 10살 때 태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왔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여행을 가는 일이 용이해졌지만, 딘 큐 레가 겪은 상황은 베트남 전쟁의 시기였다. 그러한 작가의 성장배경을 염두에 두고 바라볼 때, 그의 두 작품은 숨겨진 목소리를 들추어내는 데에 무게가 실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림2두 영상작품을 굳이 구분하자면, 하나는 다큐멘터리처럼 구성되며, 다른 하나는 영상자체에 가공과 편집을 한 작품이다. 전자는 <모든 것은 재연이다>(2015)라는 작업에 해당되는데, 이 영상작업에서 작가는 나카우라라는 일본사람을 중심인물로 다룬다. 그는 영상에서 군복을 차려 입은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사실 베트남전쟁을 재연하는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그의 전쟁을 탐구하는 태도에 관심을 갖고 영상을 보면 그의 생각이나 숲 속에서 군복을 입고 재연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러한 점은 이번 전시에 맞춰서 열린 강연에서 언급한 ‘플랫폼’으로서의 태도와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다. 작가는 2013년의 카셀 도큐멘타와 작품 <바리케이드>(2014)에서 어떤 사람(들)의 생각이나 작업을 보여주는 역할에 위치되는데, 카셀 도큐멘타에서는 군인화가의 작품을, 그리고 <바리케이드>에서는 알제리 래퍼와 작업을 함께 했다. 여러 사진으로 구성된 ‘포토 위빙(photo-weaving)’ 시리즈 또한 하나의 이미지가 아닌, 그 이면에 숨겨진—형식적으로도 주제적으로도—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림3사진출처 [http://www.artnet.com/artists/dinh-q-l%C3%AA/wtc-in-four-moments-still-at-1-second-a-Hiu-K7Doxch9xciyd5cPFA2]

이번 전시에 소개된 또 하나의 작업은 <네 순간의 세계무역센터>(2014)이다. 작가는 여기서 9.11테러에서 공격 받은 세계무역센터의 사진을 각각 사용하는데, 건물이 무너지기 이전의 장면에서 시작하여 무너지는 도중, 붕괴 후, 그리고 재건 시의 모습이 촬영된 사진을 포토샵에서 가공한 다음, 애프터 이펙트를 써서 시간 개념이 도입된 영상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이 장면은 각각 어떤 장면인지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한 색깔의 조합처럼 보인다. 마치 모더니즘 회화가 그 자체로 서사를 가지지 않는 것처럼, 추상적으로 그려진 네 화면은 하나의 단순화된 시각으로 사진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반드시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강연에서 그는 카메라에 찍힌 베트남 전쟁의 상황이 전부가 아니라, 거기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사진을 보는 시각과 사진을 찍는 것이 결코 그 곳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다시 이 작업을 볼 때, 단순하게 보이는 화면은, 어쩌면 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진자체가 갖는 특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작업에서는 직접적으로 숨겨진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지만, 정보의 유통이나 사진의 배포에 따라 피상적으로만 다루어지는 것들이 세세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는 한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참고자료>
《상상적 아시아》 전시 리플렛

《상상적 아시아》 <아티스트 토크 : 딘 큐 레> (2017년 5월 26일, 백남준아트센터)
《딘 큐 레 : 내일의 기억》 전시 리플렛 (모리미술관)
http://www.art-it.asia/u/admin_ed_feature/IwxkRHEoFpGXesL6lij8/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