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오카모토 타로 x 건축

대문사진 : 오카모토 타로가 디자인한 ‘코이노보리’

5월5일,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천으로 만들어진 잉어가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작품 <잠 깨기 직전 석류 주위를 꿀벌 한 마리가 날아서 생긴 꿈>(1944)에서 공중에 떠있는 석류에서 탄생한 물고기처럼, 이 장면은 어떻게 보면 초현실적일 수 있다. 이것은 일본에서 어린이날이 되면 남자아이의 건강과 성장을 바라는 것으로 ‘코이노보리(잉어드림)’라 불리는데, 오카모토 타로 미술관에서 작가 스스로가 디자인한 잉어를 볼 수 있다. 그가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을 비롯한 초현실주의자와 파리에서 교류가 있었던 사실을 알면, 이 장면이 더욱 그렇게만 보일지도 모른다.

  오카모토 타로(Okamoto Taro, 岡本太郎)는 다방면에서 활동한 예술가로 알려져 있는데, 가장 유명한 작업은 아무래도 <태양의 탑>이 아닐까. 1970년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에서 공개된 이 탑은 그것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의 작업은 회화에서 건축, 조형디자인, 그리고 자신의 이론을 정리한 책까지 다방면에 걸친다. 그 중에서 건축에 초점을 맞춘 것이 바로 이번에 열린 기획전 《오카모토 타로 x 건축》이다. 본 전시에서는 작가의 독자적인 작업보다는 건축가와 진행된 공동작업을 다루고 있다. 그는 건축가인 탄게 켄조(Tange Kenzo), 사카쿠라 준조(Sakakura Junzo), 안토닌 레몬드(Antonin Raymond)들과 작업을 함께 하면서, 앞서 소개한 탑뿐만 아니라 벽화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벽화란 부조, 타일로 된 모자이크,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전시에 소개된 그의 프로젝트 중에서 벽화의 성격에 따라 나누어보고자 한다.

 

1) 모자이크의 벽화 : <타카시마야 지하통로 벽화 ‘창생’> (1952)그림2[http://reinbach-junbow.blogspot.kr/2011/01/taro.html]

사카쿠라 준조가 설계를 맡은 이 건축물은, 오카모토가 처음으로 공공미술로서의 작업을 맡은 것이다. 파리에서 교류가 있던 둘은 귀국 후, 1952년 앙데팡당전에서 전시된 작업 <내일의 신화>(1952)을 보고 사타쿠라가 의뢰를 부탁해서 실현되었다. 시기적으로 볼 때, 1950년대 중반은 예술 장르간의 상호적인 관계가 부각된 시기였으며,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와 르 코르뷔제(Le Corbusier), 그리고 샬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의 세 명의 공동전시가 대표적이다. 이 벽화가 설치된 통로의 당시 사진을 보면, 기하학적 패턴이 반복적으로 그려진 공간에 오카모토의 벽화의 색깔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주변의 반복적인 패턴을 디자인한 사람은 바로 건축가의 사카쿠라였다.

 

2) 부조의 벽화 : <구 도쿄도청사> (1957)그림3[http://reinbach-junbow.blogspot.kr/2011/02/taro_23.html]

태양의 탑에서 주도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탄게 켄조이다. 그런데 그와 오카모토의 교류는 엑스포시기보다 20년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1957년에 완공된 <구 도쿄도청사>에서 탄게는 타일보다는 부조를 쓰면 벽화의 힘이 강력해진다고 오카모토에게 제안을 해서 총 일곱 개의 작업(<해의 벽>, <달의 벽>, <빨강>, <초록>, <노랑>, <파랑>, <건설>)이 설치되었다. 타일로 된 벽화와 비교해볼 때, 부조로 된 작업에서 색깔뿐만 아니라 기하학적 형상이 생동감 있게 나타난다.

그림4https://www.ebook5.net/blog/asunoshinwa_shibuya/

3) 회화

일본의 시부야를 가본 사람은 그의 또 다른 작업 <내일의 신화>(1968)를 알 것이다. 전철역에 설치된 이 대형의 그림은, 처음에는 맥시코 올림픽의 개최를 같이 하여 세워진 호텔을 위해 제작된 것이다. 그는 그 시기에 <내일의 신화> 외에 <마미 플라워회관>과 엑스포의 건축 디자인을 맡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작업은 그의 생전에 호텔의 건설이 취소가 되면서 소재가 밝혀지지 않았다가 작가의 사후, 2003년에 맥시코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이 작품은 시부야 역에 설치가 되었는데, 빨간 색이 두드러지는 부분은 타로가 1971년에 안토닌 레몬드와 대담한 내용에서 일본의 전통적인 색깔을 차분한 색으로 보는 것을 꺼려했고, 오히려 그러한 색깔이 에도시대 중기에 일본적인 색깔로 나타나면서, 동시에 여자나 어린이의 색깔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인상 깊었던 부분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그의 다방면에 걸친 작업에서 색채가 강조된다는 점이다. 이는 화가로서 활동하면서 그가 가지게 된 색채에 대한 관심이 삼차원 작업까지 전개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초현실주의 작가보다는 장 뒤뷔페(Jean Dubuffet)나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의 작업과 유사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카모토의 이러한 현란한 색채를 띤 벽화나 디자인이, 이들 건축가의 모던한 단순미와 어울리어 작업되었다는 사실이다. 흔히 일본적인 것을 떠올리면 언급되는 차분한 색깔(와비사비)이 아니라 보다 강력한 색채에 일본의 전통을 찾았는데, 이번 전시에 소개된 건축가의 협동작업을 보아도 이는 뚜렷한 대조 이상으로 신기한 만남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구 도쿄도청사>에서 비판적인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이 만남은 당시 주장된 ‘야요이적인 것’과 ‘죠몬적인 것’의 어울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본의 전통을 볼 때 전자가 차분한 특징—야요이시대의 토기를 보고—을 가진다면, 후자—죠몬시대 토기를 보고—는 생동감이 넘친다. 당시만 해도 전통이 무엇이냐 할 때 대립된 이 두 가지 개념은, 오카모토가 건축가의 작업을 통해 어느 정도 화해로 이끌어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참고자료>
《오카모토 타로 x 건축》 전시도록 (2017)

《오카모토 타로 : 빨간 충동》, 전시 리플렛 및 메모 (2017)
五十嵐太郎, 『日本建築入門―近代と伝統』, ちくま新書 (2016)
https://www.1101.com/asunoshinwa/asunoshinwa.html (<내일의 신화>)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