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터랩에서는 기술과 문화에 전반에 대한 융합적인 이해를 기반으로 흥미롭고 창의적인 강의를 하고 계신 오영진 기술문화연구자를 만나 이야기 나누었다.


 

인터랩: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인터랩에서는 과정남을 만나보았는데요. 그 과정에서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팟캐스트로 선생님 인터뷰를 듣다가 굉장히 재미있었고 흥미로웠기 때문에 인터랩에서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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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남X오영진] 기계를 좋아하지만 오타쿠는 아니라구욧

출처: http://www.podbbang.com/ch/7549?e=22234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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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는 기술문화연구자이자 인문학협동조합에서 총괄이사를 맡고 계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양대학교 에리카에서 기계비평 과목을 주관하고 계시는데 넓은 분야에서 두루 활동하고 계시는데 문득 원래 전공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인문학, 문화, 기술, 기계, 과학 쪽에서 두루 활동을 하게 되셨나요?

 

오영진: 제가 꾸준히 공부했던 분야는 문학입니다. 그 중에서도 현대시를 공부했습니다. 시를 공부했다는 것은 언어학과 미학에 관심이 많다는 정도로 이해하셔도 좋습니다. 제게 ‘시’보다 중요한 것은 ‘시적’이라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익숙한 언어사용에서 생소하고 창의적인 언어사용으로 넘어가는 행위 이는 곧 사고방식에서의 자유로움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 시를 공부하기 전에 영화와 록음악에 관심이 많아 찍기도 했고, 공연도 하러 다니곤 했습니다. 사실 잡다한 관심을 갖고 순간 순간마다 집중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대학원에서 문학공부를 조금 오래 했습니다. 2014년에 문화평론으로 인디음악에 대한 평론을 써 데뷔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런 저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대문화에 대한 글도 쓰다가 이러한 문화의 근간에 기술문화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기술문화에 대한 연구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과목 ‘기계비평’을 기획하기도 했고, 비슷한 취지의 글들을 써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어떤 전공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코스를 거쳤느냐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조금 커브가 많은 코스를 운전하고 있습니다.

 

인터랩: 속칭 그리고 자칭 ‘기계성애자’라고 말씀 하시는 계원예대 이영준 교수님과 함께 기계와 그 기계에 대한 체험, 그리고 기계에 대한 사회적인 맥락들에 대해서 관심 갖고 함께 강의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CCTV 비평, 미사일 비평, 자동차 비평, 기관차 비평 등 ‘원 머신 원 크리틱’ 이라는 흥미 있는 방법으로 주제에 접근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과정을 밟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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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진: 한양대 에리카 교과목 ‘기계비평’은 이영준 교수님께서 이름을 허락해주시고, 이후에도 저희 수업의 주 연사로 와 주셔서 교내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4학기까지 기계비평 수업은 기술에 대한 추상적인 논의가 아니라 굉장히 오타쿠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것을 특징으로 삼았습니다. 기술적 대상을 직접 만져보고 뜯어보고 사랑했던 기억이 한 개인과 시대와 어떤 관련을 맺었는지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진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기술적 대상과 우리가 살아가는 맥락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맥락을 파헤치다 보면 기술의 방향이 자본과 정치에 예속되었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2015년 봄에 THAAD문제를 한 강으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인문학이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관심을 둔다면 기술도 그 주요한 대상이어야 합니다. ‘원 머신 원 크리틱’이라는 컨셉은 그 만큼 하나의 논의에 하나의 대상만을 삼아 꼼꼼히 보겠다는 의도라고 이해해 주십시오. 문학비평으로 치면 ‘close reading’(꼼꼼히 읽기)으로 간주하면 좋겠습니다.

이 수업의 연사들은 각기 개성이 뚜렷합니다. 본인의 기계체험을 중심으로 풀어주시는 분이 있고,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풀어주시는 분, 실제로 기술을 개발하고 운용하는 입장에서 풀어주시는 분 등 다양한 베이스의 연사들이 계십니다. 그들의 다각적인 시선, 그 안의 시차적인 관점을 끌어내는 것이 수업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인터랩: 물론 요즘에는 기계나 컴퓨터를 잘 다루시는 분이 계시지만 아직도 저를 포함하여 (일반화 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말인 줄은 알지만) 여자분들 중에는 더더욱 기계에 대한 공포를 갖고 계신분이 많이 있습니다. 매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는 얼마 전에 과정남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과학과 기술을 동일한 말로 잘못 쓰고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말씀하신 것처럼 기계를 다루면 뭔가 고장이 날 것 같고, 그 때문에 공포심이 생겨 접근 하는 첫 발을 내딛기가 힘든 경우가 있는데요… 혹시 한양대에서 기계비평 수업을 하시면서 저처럼 과학 또는 기술에 관심은 있지만 어려워하는 비전공자들에게 좀 더 쉽게 기계비평에 접근하게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오영진: 이 수업은 공대생이나 이과계열 학생도, 인문계나 예술계 학생도 모두 생소해 할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전공자와 비전공자 간 구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에 대한 공포가 없는 쪽이 수업을 듣기에는 유리합니다. 이 때 저는 예비강의를 통해 우리가 기술에 대해 갖는 공포의 원인을 진단해봅니다. 예를 들어 어릴 적부터 기계와 친숙해지기 위한 교육과 문화가 없는 상태에서 공포는 당연하다고 말해줍니다. 기계를 뜯어보고 고장낼 수 있는 경험과 놀이가 없다면 기계에 대한 공포는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여성의 경우, 기술에 대한 공포와 무지는 기술과 여성이 멀어지게 된 원인이 아니라 실은 어떤 누적된 과정의 결과입니다. 남자아이에게는 기술키트를 주고, 여자아이게는 인형을 주는 교육을 했으면서 여성과 기술이 가까워지길 바라면 안되겠죠. 이렇게 우리들의 공포가 실은 근거 없음을 폭로하는 일이 우선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수업 중 제가 사회자로 나서면서 전문연사와 청중 사이 번역기 역할을 해 이해를 돕도록 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키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 청중이 수업내용을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말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기계비평이라는 수업에서 맡은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랩: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이라는 것 자체가 기계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요즘에는 미디어아트 또는 뉴미디어아트를 통해 기술과 미술의 접근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것이 물론 융합적인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미술에 기술을 접목해서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사실 미술에서 다루고 있는 기술적인 측면은 전공분야에서 말하는 기계 또는 기술의 획기전인 면 또는 그 전문성에 비하면 많이 가볍고 겉핧기식의 표면적인 기술접목이 되기가 쉽습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학제간의 경계를 넘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융복합적인 접근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단순한 발상이 실제 가치있는 것으로 진행되기 위해서 미술계에 있는 제가 궁금한 질문을 드리자면…. 저희는 미술을 함에 있어서 좀 더 과학적인 또는 기술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한데 혹시 과학기술쪽에 몸담고 계시는 분들은 어떤 면에서 미술을 필요로 하시는지(단순한 심미적인 기능을 차용하는 것 외에) 어떤 부분을 서로 공유하고 주고 받고 생산적인 교류가 될 수 있을까요? 여러 분야의 분들을 만나보셨을 것 같아서 질문 해 봅니다.

 

오영진: 우선 주의를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미디어아트계를 중심으로, 기술과 예술의 관계라는 화두가 과연 깊게 고민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칫하면 기술을 과시하는 작품에 불과할 수 있으니까요. 선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표현으로 육화되어 작동하고 있는 지 섬세하게 비평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기술에 예술적 포즈를 덧입히는데 만족하는 경향 또한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과 기술이 왜 서로를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대의 ‘테크네’라는 말의 기원에 예술과 기술이라는 뜻 모두가 있다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용법으로 테크네는 허를 찌르는 말솜씨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기술과 예술 안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앞질러 나감’이라는 속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새로운 기술적 대상을 적극 사용하려 하는 것은 예술이 단순한 기예에서 머물지 않고 새로운 표현의 기회와 방식을 얻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술도 예술을 껴안고자 하는 이유는 기술계의 관성을 벗어나 새로운 배치의 기술적 대상을 구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급의 발명품은 사실상 예술품입니다. 마찬가지로 일급의 예술품은 언제나 새로운 발명품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구요.

백남준의 로봇 작품 ‘K-456’은 최초로 교통사고 당한 로봇입니다. 기계로서는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이러한 액션 퍼포먼스는 ‘살아있다고 간주된 로봇에 닥친 비극’이라는 아이디어를 우리에게 줍니다. 그가 이 퍼포먼스를 행한 연도가 1964년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로봇공학자들에게 이러한 작품은 일종의 사고실험을 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합니다. 이 경우 예술은 기술의 겉옷이 아니라 근원적 욕망과 충동으로서 작동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우연히 여러 개의 프로그램 언어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한 가지 언어를 잘 다뤄 전문기술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여러 언어를 상황에 맞게 사용해 본인의 재미난 꿍꿍이를 기술적으로 돌파하는 것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발랄한 성향의 기술자는 예술가 못지 않은 창의성을 발휘합니다. 인터뷰해보니 평소에 미디어 아트계의 인사들과도 교류를 갖고 있더군요.

제 생각에 기술자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만들어낼 기술적 대상의 심미적인 차원이 아니라 본인 자신의 창의성과 무모함에 대한 충동을 촉발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에 눈 떠야 합니다. 반대로 예술가들은 기술이라는 쓸모있음의 영역을 끊임없이 쓸모없지만 잠재성 가득한 영토로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할 준비가 된 것일까요? 이제부터라도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랩: “쓸모있음의 영역을 쓸모없지만 잠재성이 가득한 영토로 바꾸는 일을 할 준비가 되어있을까..?” 라고 반문하신 부분이 많은 생각을 잠기게 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주관하시는 한양대 에리카 기계비평 수업도 정말 관심 있어서 보았는데 2017년 5월에 테크노컬쳐연대기 책으로 강의 내용이 수록되어 나온다고 하니 꼭 그때 책을 보면서 공부해보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여러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ditor 김주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