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추적이 불가능한, 그만큼 더 비밀스럽고 편안한

<앙팡 테리블> 영화 장면 中 엘리자베트의 죽음

 어린이들은 비밀기지를 만든다. 그곳은 나의 사적인 일을 숨어서 하는 동시에, 그러한 비밀을 친구들과 공유하는 하나의 지도 위에 없는 특별한 공간이다. 동네 폐가일수도 있고 숲 속의 작은 동굴일 수도 있는 비밀기지는, 암호를 공유하듯이 마음이 통하는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공간이다. 오카자키 쿄코(岡崎京子)의 만화 <리버즈 에지 River’s Edge >를 보면 강가에 풀이 우거진 풀밭이 비밀의 장소가 된다. 풀밭 어느 한 곳에 놓인 사람의 시체를 보고, 학생들은 동질감을 느낀다. 장 콕토(Jean Cocteau)의 소설 <앙팡 테리블 Les Enfant Terreibles >을 읽으면 막판에 이르러 총소리와 함께 비밀스러운 방의 모습이 무대—관객을 전제로 하는—가 된다. 이들에게 은밀한 공간은 구체적인 대상을 피하여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방공호’라기보다는, 더 개념적인 도피처로 기능한다. 현실에서 느끼는 고달픔, 소통의 어려움은 어떤 알려지지 않는, 그러나 극소수의 사람만 아는 공간에서 달가운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들에게 그 공간은 편안한 곳이었다. 어떤 간섭도 받지 않는 알려지지 않는 공간은 이성적으로 볼 때에 불편한 공간으로 보일지라도 그들에게는 냉혹한 현실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기능한다. 콕토의 작품 무대는 전후 프랑스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묘사했다면, 오카자키의 만화에 나오는 배경은 21세기로 넘어가면서 도시문제가 부각된 시기를 그린 것이다. 현실 세계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찾은 피난처는 어쩌면 바깥 세계만큼 혼란스러워 보인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장소는 유토피아의 대대적 성공이 아닌, 현실 속에서 어쩌다가 찾은 희락의 공간이다.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시를 오카자키는 제대로 자신의 작품에 인용했다. “평탄한 전쟁터에서 우리가 생존한다는 것”. 그곳은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속을 털어놓고 소통의 자리를 갖게 되는 곳이다. 그 바깥 세계, 그곳에서 가면을 쓰고 허세 속을 거니는 사람들은 어쩌면 시체보다도 못한 존재가 아닐까.

 마음이 편안한 곳. 하나로 규정되기 어려운 혼돈이 발생하는 가능성으로 치부된 비밀의 장소는, 오늘날에 다른 소통의 방식이 자리 잡음에 따라 서서히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해지면서 어린이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을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안전을 위해, 보호하기 위해, 오늘날 우리는 휴대폰 전원만 켜 있으면 어디에 가서도 연락이 닿는다. 전화만 갖고 있으면 연결되는 소통의 가능성이, 이제 소통의 기본 조건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동시에 인터넷의 발전과 보조를 맞추면서 멀리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통화도 되고 영상으로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연락 가능함의 무궁무진한 힘은 때때로 사람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택근무의 가능성, 스스로 생산하는 “만일”의 상황,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장소를 알아내려는 연락.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만큼 혼자의 시간을 갖기 어려워지고 우리는 사사로운 시간을 겨우 할애해야만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장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벽을 뚫고 프라이버시의 벽을 뚫고 화면상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연락을 주고받는다. 편안한 장소는 가면을 쓴 SNS을 통해 대안적으로만 찾을 수 있는 것일까? 가면을 벗고 소통이 되는 자리—속을 털어놓고 어떤 사람끼리 대화가 가능한 자리,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오늘날에 필요하다. 그때만큼 편안한 곳이 어디 있으랴.

<사진출처> [http://tetsu-eiga.at.webry.info/201202/article_8.html]
<참고자료>
Jean Cocteau, Les Enfants Terribles, (1929) (일어 번역본, 1957)

Sherry Turkle, Reclaiming Conversation: The Power of Talk in a Digital Age, Penguin Press (2015) (일어 번역본, 2017)
岡崎京子, <リバーズ・エッジ> (1994) (오카자키 쿄코 <리버즈 에지>)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