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e on Asia 2017
동원된 표상 Mobilized Representation

 

2017.4.14 ~ 5.28

주최/주관 : 대안공간 루프
공동 기획 : 이정아, 레자 아피시나, 리안 라디아, 메르브 에스피나, 발라 스타, 우다쿠엔, 패트릭 D. 플로레스, 히사코 하라
기획 협력 : 임다운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 피지혜
참여 작가 : 치카코 야마시로, 김기라 x 김형규, 마리슈카 소카르나, 마크 살바투스, 록스 리, 셔먼 옹, 사우스 호, 쑨 쉰, 한요한
아카이브 : 한국, 중국, 일본, 북한, 태국, 필리핀, 대만, 싱가포르, 러시아, ASEAN 프로파간다 영상 60여편
후원 : 김청기 감독, 아세안, 타이완 바, 비사야볼, 미디어몽구, 네오룩

도움: 수-진 도르카스 응, 솜폿 칫가소른퐁세, 코 응앙 호우, 이장욱, 한우종

 

 

아시아 비디오아트 페스티벌인 무브 온 아시아는 올해 8번째를 맞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데올로기로써의 아시아 국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이 이데올로기가 냉전시대 이후에 어떻게 근대적 통치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지 대중매체의 대명사인 ‘영화’를 통해 바라본다.

특히 이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다수의 오래된 아카이브 영상과 함께 현대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이데올로기’라는 부분을 재해석하여 만든 두 영상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냉전시대로 대표되는 시절의 영상과 냉전시대가 종식된 이후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사회 갈등을 어떻게 새로운 이념의 틀 안에서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영상1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wDGFkoI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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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2https://www.youtube.com/watch?v=vPi623yF41A

[사진을 클릭하시면 영상으로 이동합니다.]영상3https://www.youtube.com/watch?v=jF0XMxTrQsk

[사진을 클릭하시면 영상으로 이동합니다.]영상4https://www.youtube.com/watch?v=UUmXx6KLIXk

[사진을 클릭하시면 영상으로 이동합니다.]영상5https://www.youtube.com/watch?v=0aPn1ankg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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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9JScO4iQ80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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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전경>

이데올로기는 분열된 민족/국민을 결집시키고 해방시키는가 하면, 통치자의 편에 서서 피지배자를 억압하거나 반인륜적 살육의 명분이 되기도 하였다. 동시대인들에게 최근까지 일상 속 깊이 작동했던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냉전시대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냉전체제가 해체됨에 따라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신이나 과열된 논쟁이 급감한 것은 전 지구적으로 급속하게 일어난 지각변동에 따라 ‘이데올로기의 종식’, 혹은 ‘탈이데올로기 시대’라고 호명되며 그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낮아진 연유이기도 하겠지만, 오늘날 지배 권력이 어떠한 유토피아적 청사진에 대해 표명하더라도 과거에 비해 쉽게 현혹되지 않는 지적 반작용이 길러진 까닭이기도 할 터이다.

그림2The ASEAN Community 2015_06분20초_20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으로 이어지진 못한다.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이데올로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대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념적 지향이 어느 사회든 존재하며 그러한 사회의 지향점과 목표에 부합하는 지배질서를 유지시키는 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사회만 보더라도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진영 간 첨예한 대립과 그것이 근거하는 이념적 논리(진보/보수, 좌파/우파 등)로 피아를 철저하게 구분하고 대결구도를 유지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정당정치는 물론이고 노사갈등, 개발/환경문제, 약자들의 생존 문제, 세월호의 인양, 사드배치, 최근의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이견과 같은 거대 이슈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갈등 또한 이념의 프레임 안에서 진단하고 제단하려는 현상을 볼 때면 적어도 동시대 한국사회는 이데올로기적 자장이 가장 활성화된 사회에 속하지 않나 싶다.

 

그림3한국_똘이 장군 – 제3땅굴편_01시간25분_1978

 

그렇다면 이데올로기란 과연 무엇이며 오늘날에는 왜, 또 어떤식으로 그 작용이 지속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그것은 규정하기가 꽤 광범위하고 애매모호하며 단일한 이념 그 자체로만 풀이될 수 없는 영역이다. 게다가 사회 구성원들이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당연한 것이라고 인식하게끔 하지만 스스로는 명확히 드러내지 않으며 존재 자체를 아예 은폐하려는 속성마저 가지고 있어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더구나 오늘날 이데올로기 작용은 삶이 복잡해지고 정보가 무한 증식함에 따라, 그만큼 더 교묘해지고 지능적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이 때 대중매체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간과할 수 없다.

 

그림4북한 노동자의 하루_48분_2004

 

현대 사회에서 기술을 매개로 발달한 대중매체는, 가상과 상사(similitude)가 ‘유일한 실재’를 탈신화화하고 ‘조작된 실재’가 우리 일상을 전 방위적으로 지배하게 된 토대가 되면서 일정한 왜곡과 은폐로 대중의 사고 및 가치기준, 행동양식까지 규정짓고 지배적 논리가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강화되는데 일조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으로 의미 작용한다. 후기자본주의 시대 가장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광고이다. 광고는 경제의 논리와 결탁하여 허위욕구를 조장함으로써 끊임없이 소비를 지향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자본권력을 강화시키는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방식이 내재해 있다. 이렇듯 이데올로기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특정 사회를 구축하는 장치로 작동하며 대중이 언제든 지배 권력의 도구적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면 위에서 재기하는 의문이 사회 구조적 관계와 권력 관계(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떠나서는 여전히 해소되기 힘든 문제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그림5한국_한요한_Phallo-美_5분_2017

 

그림6일본_Momotaro’s Divine Sea Warriors_01시간14분_1945

따라서 올해 Move on Asia에서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권력의 구성적 측면에서 지배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기능하는 특정한 담론적 실천들의 집합이라는 이해의 토대 위에서 제도권력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작용에 집중하여 점검해보고자 한다. 이에 아카이브전과 미디어 작품전으로 구성되는 전시의 출발선상에서 한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대중의 삶 속에 어떠한 구조로 안착하고 어떻게 작동하며 어떠한 조건에서 변모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생산하는지 요컨대, 비가시적 권력 장치(diapositif)로서 사상적, 이념적 설득의 과정이 어떠한 경위로 내면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답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펼쳐놓은 단서들을 서로 꿰맞추며 그 실체를 추론하는 데에 유효한 문제 설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카이브 전시를 위해 리서치하고 채집한 영상들은 바로 당대 사회의 맥락적 상관성 속에서 대중에 대한 계몽과 훈육, 선동의 잔영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리워진 국가적 차원의 프로파간다를 대중매체가 어떻게 반영하고 지배 메커니즘에 어떠한 방식으로 협조하고 있는지에 대한 유의미한 단서들을 제공할 것이다.

그림7러시아_Victorious Destination_06분40초_1939

어느 정권이든 체제를 다지기 위해 지배적 통치이념을 선전하기 마련이지만 한국에서는 60, 70년대 군사정권 시기만큼 이데올로기가 정권의 정당화와 체제경쟁의 기제로 강력하게 작동되었던 시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국시였던 반공이데올로기는 아동용 만화영화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생활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현재 30, 40대들은 어린 시절 극장이나 TV 방송으로 보았던 만화영화에서 자유진영의 주인공이 악의 무리로 묘사된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북한주민들을 해방시키고 결국 공산당을 모조리 소탕하는 스토리에 열광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정변을 통해 수립된 독재 정권은 집권의 정당성을 국민들로부터 인정받고 국가 정체성을 새로 구축하기 위해 공보를 강화하여 지속적으로 이미지 선전 전략에 힘쓴다. 특히, 반공주의, 근대화, 애국애족 이데올로기로 압축되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 코드들은 국민의 의식을 결집시키고 통제하는데 유효한 장치였다. 이 때 반공주의는 정치적 신념을 초월하여 적과 동지를 구분하고 국민과 비국민, 피아를 구분하는 존재론적 준거로서 작용했다. 유신 정권은 권력의 효율성에 저해되는 모든 행위에 ‘불온’과 ‘용공’의 낙인을 찍어 체제 비판은 물론 정당한 요구까지 함구시키는 조직적인 관리를 통해 결국 체제 순응형 국민으로 의식화시킨 것이다. 설득과 회유, 강압과 통제가 적절히 혼재된 선전 전략은 정통성이 희박한 정권 수립의 당위성과 체제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시키기에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그림8대만_Taiwan Bar-EP 07 The Legendary Economic Miracle of Taiwan_8분49초_2015

국가 내부 결집을 위한 산업화 즉, ‘물질적 근대화’는 민족/국가주의라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를 동원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전제되어야 할 ‘정신의 근대화’에 따른 합리성과 자유주의적 요구는 정권의 유지를 위해 배제되었다. 유신정권이 보여준 근대는 전근대성을 떨쳐버리지 못한 근대였으며 ‘비동시성의 동시성(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rmporary)’이라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근대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와 분열적 의식은 서로 상이한 발생 논리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서구 파시스트 국가와 심지어 북한의 주석체제와도 닮아있다. 이들 체제는 각각 인종주의, 반공주의, 반제국주의라는 타자 배제 이데올로기를 국가의 근대화 및 체제 유지를 위해 적극 활용하면서 공동체 내부 모순에 대한 반발은 민족의 이름으로 억압하는 통치 패턴을 보여준 점에서 상통한다. 이 때 민족주의란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주장을 따르자면 실존적 집단이 아닌 사회통합 과정에서 동원된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민족주의에 불과하다. 이러한 왜곡된 통치 전략은 다른 아시아권에서도 그 양상은 다양하나 그리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그림9중국_The Red Detachment of Women_01시간45분_1970

아시아권 다수의 나라는 유럽의 식민 지배와 독립투쟁, 일본의 침략, 미국과 소련을 주축으로 한 첨예한 이데올로기적 대립, 군부 독재에 의한 통치, 민주주의 제도의 혼란 속에서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는 점에서 유사한 근현대사적 노정을 걸었다. 국민통합이라는 과제를 떠안고 있던 이들에게도 체제의 안정화와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해 필요했던 것이 ‘민족주의’ 드라이브였고 탈식민 시대 이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마르코스), 싱가포르(리콴유와 인민행동당), 말레이시아(집권 여당 암노) 등 신생 독립국들은 전체주의 또는 군사 정권 등 권위주의적 체제를 통해 내치의 안정과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발전국가’를 지향하였다. 체제 수립의 정당화, 현재의 번영과 안정, 미래에 대한 청사진, 지도자의 영웅화, 정책 및 성과 홍보, 개인보다 집단/국가의 우위 등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된 체제 친화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밀도’가 높은 재현 이미지들이 오늘날에도 유통되고 있는 점은 아시아의 역동적 현실을 감안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림10필리핀_El Presidente-Rodrigo Duterte_01분27초_2016

(… 중략) 주지하다시피 동서를 막론하고(물론 아시아권에서의 근대적 통치 테크놀로지는 서구의 영향을 받았다)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 잡지 등 미디어에 대한 장악과 관장은 제국주의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배 세력이 대중의 동의를 얻기 위해 선취하는 작업이다. 알튀세르적(Louis Althusser)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A)에 해당되는 대중매체는 군대나 경찰과 같은 억압적 국가기구(RSA) 못지않게 이데올로기적으로 국가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단지, 미시적이며 개인적 가치로 보여 덜 비판적으로 수용될 뿐이다.

영화는 특히, 대중에게 관념적, 추상적 사상이나 전망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가시화함으로써 시각적 알리바이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상당한 파급력까지 가지고 있어 나치 선전영화는 물론이고 동시대에도 전략적으로 이용되는 사례들이 무수히 많다. 관제영화, 뉴스영화, 문화영화, 계몽영화 등으로 불리던 특정 방향성을 담은 영상물은 대상을 확장시키고 일상 속에서 보다 친근하고 유용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며 확대 재생산되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애니메이션은 성인에서 아동까지 포괄적으로 체제에 순응하도록 의식계몽을 하거나 사상이나 정책을 쉽고 효과적으로 각인시키기에 손색없는 대중매체였다. 이는 보다 치밀해지고 진화된 심리전에 가까우며 여기서 시각이미지는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한 메시지를 주입시키는 탁월한 선전 장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통치 메커니즘은 감각적으로 침윤될 때 더욱 강력한 효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지점과 상응하는 이데올로기적 작용은 군사 퍼레이드, 매스게임, 군가, 건전가요, 뮤직비디오, 웅변대회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권력은 대중의 오락과 놀이에도 개입함으로써 ‘권력의 재현’을 감각적이면서 정서적인 방식으로 내밀하게 유포, 각인시킬 만큼 매체의 속성을 잘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뚜렷한 정치적 지향성을 드러내지 않더라고 대중의 입으로, 귀로, 몸으로 체득하게 하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는 개인의 사고, 일상적 활동, 정체성, 몸짓 등에 관여하는 또 다른 관제시스템으로서 권력에 복속된다. 굳이 거시적이거나 강압적인 장치가 아니더라도 치밀하고 지속적인 방식을 통해 사회 구석구석을 순환하며 작동하는 미시권력이자 생명관리권력(bio-power)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권력관계는 이렇듯 몸에 각인되면서 안정적으로 지속되며 궁극적으로 의심 없는 믿음을 구조화한다. 이것이 바로 부르디외가 말한 오인(misrecognition)이며 이것으로 지배 권력을 대변하고 옹호하기 위한 현실의 왜곡과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을 양산할 수 있다. 공기처럼 항상 우리를 둘러싸고 일상에 관여하고 있지만 크게 의식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했던 모든 사회적 실천의 원리, 근본이 되는 질서체계와 문화, 지배관계는 항상 정당하고 옳은 것인가? 권력 관계 속 이데올로기적 작용 안에서 시각예술은 어떠한 실천을 할 수 있는가? 절대적인 믿음에 가해진 균열 사이에서 새어나온 물음들은 이번 전시에 참여한 미디어 작품들이 온전히 끌어안고 있는 문제들이다. 항구적인 통치체제를 마련하기 위해 규정한 질서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길들이는 표준화와 규격화에 대항하는 실천의 모색으로서 통치성의 구조와 작동 원리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것의 균열을 제안한다던지, 개인의 삶을 침범하는 이데올로기와 대의의 불합리성과 폭력성 등 권력이 은폐하고자 하는 모순과 허위의식의 두꺼운 겹을 들춰본다던지, 이데올로기적 재현방식을 재해석, 재가공하여 희석되거나 변곡되는 지점에서 촉발되는 의미작용을 탐색하는 등 작품들은 위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푸코가 말하는 ‘주체화’ 즉, 권력을 자기 안에 내면화하는 ‘예속화’의 수동적 실천을 거부하고 통치원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저항적 인식과 자기변형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는 대항적 상상을 모색하는 것이리라. 이를 통한 예술적 실천은 어쩌면 지배질서와 연결되어 비판적 판단을 마비시켰던 조작과 기만, 허위와 거짓 환상의 고리를 끊어내고 사회와의 관계를 새롭게 통찰하고 재조정하게 하는, 규범화되지 않은 질서 바깥으로 통하는 열쇠가 돼 줄지 모른다.-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이정아 글 中 (출처: http://www.galleryloop.com)

editor 김주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