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현 Jihyun Han

 

작가노트

우리의 일상은 축적이지만 그 무게는 더없이 가볍다. 내용을 ‘가졌던’ 것들의 자국이며 흔적의 혼재이다. 이를 쫓는 나의 작업은 무신경함이 주는 안락함 대신 그 이면의 친숙한 낯설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그렇게 마주한 이면은 생소했으며 심지어 이면 자체가 없는 텅 빈 공간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사물에는 그 시작부터 시간을 두고 쌓아온 내용이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혼재 속에서 어떠한 것들은 본래의 서사와 맥락과는 달리 특징적인 양식만 경계 안으로 취해지고 이미지로 소비되어진다. 의미체계 안에서의 부산물이었던 외형은 단독적인 이미지로 변질되어 우리의 인식 속에서 의미와 이미지의 대칭적인 교환관계를 무너뜨리고 가벼운 몸짓으로 여기저기 할 것 없이 스며든다. 이 이미지는 의미보다도 오래 살아남아 우리 주위를 부유하며 맥락과 그 맥락이 지키고자 하는 일관성을 약화시킨다. 나의 작업은 어느 순간 의식하게 된 이러한 일상의 맥락적 흔적을 찾아 남겨두고자 했던 개인적인 과정의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이 기록물들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친숙하고도 낯선 이면과 그 속에서 찾은 조형적 요소의 제시를 오해에 따라 일상의 ‘텅 빈 축적의 공간’을 함께 재현하고자 한다.

‘Ornament’연작에서는 박제장식이 특유의 외형으로 인해 두서없이 출몰되고 그에 따라 희석되 는 과정을 사례로 제시한다. 이 특별한 대상에는 뚜렷한 전후 상황과 맥락이 동반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특이한 양식, 스타일로 정착되게 되고 그 양식이 외부인들의 시각에서는 흥미롭 고 독특한 양식으로 여겨지자 이것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고유성은 복제란 방식으로 유지와 동시에 침범 받게 된다. 또한 작업은 박제장식 외에도 이와 같은 수순을 걷게 될 가능성이 있다 판단되는 특징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는 대상을 수집하고 추려내 두서없이 짜깁기해 의도와 목적, 맥락의 무력함을 시험하는 데에 두는 브리콜라주적인 성질을 띤다. 이처럼 내용이 의도적으 로 배제된 껍데기들은 뚜렷한 외곽선이나 경계선도 없이 서로에게 얽혀 상호 오염시킨다. 대상들은 일부분만 제시되며 실질적인 크기나 시점도 일관성 없이 얽혀있어서 얼핏 본다면 언뜻 하나의 형태로 보일 수도 있으나 실상은 그들을 묶어 줄만한 내용이나 인과가 없다는 것이 작품의 중요한 점이다. 전혀 맥락으로는 접점이 없는 대상들이 모여 그럴싸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말 그대로 뒤섞이기 위해 뒤섞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업의 의미는 의미를 가질 수 없음과 동시에 그러기에 일시적으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Artwork’연작은 ‘Ornament’연작에 반해 어떤 특정한 영역의 것들이 우리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지만 ‘Ornament’연작의 양상과는 반대로 경계 밖으로 밀려나는 대상들을 소재로 한다. 대상의 필연적인 기능과 외형의 유기적 관계나 소재나 위치적인 특성에 대한 배경지식이 일절 없는 외부인이 양식에만 초점을 맞춰 재현하는 것이 작업의 주된 내용이다. 적극적이지만 실재에는 다가가지 못하는 이 재현된 환풍구와 같은 기능성 설치물들은 계속해서 가리워지고 위장되는 과정을 통해, 일상이란 경계가 불분명한 공간과 그 공간 안에 부유하는 대상에 대한 피상적인 인식에 대한 제동장치가 되고자 한다.
이전의 작업들이 대상을 사물에 한정된 것과 달리 가장 최근의 작업 ‘Untitled’은 그 대상을 확 장해 공간을 소재로 한다. 필요에 의해 방향과 외형을 구획짓고 놓는 도로 간에 발생되어지는 이 공간은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도 선뜻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다. 또한 이 일종의 사이 공간은 출현배경 자체도 도로가 생기고 그 후에 부수적으로 생겨난 공간이므로 명백하게 존재 하지만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여겨진다. 물리적인 구분에 의하면 일상이란 범주에 포함될지도 모르지만 경계에 있는 공간이라고도 느껴진다. 개인적인 경험과 목격을 기반으로 하지만 이 공 간 안에서의 아주 일상적인 행위도 일상적이지 않게끔 만드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에서 반대로 어떠한 것도 가능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런 부분이 작업의 전개를 가능케 하 였다.

제작에 있어서는 먼저 공간의 외형인 즉, 지형 안에서 재현을 하되 일부분, 파편적으로 제시하 기도 하고 부분 부분 왜곡시키기도 한다. 이 왜곡된 디오라마를 촬영하고 사진으로 이미지화된 이 공간 위에 단면화 된 공간의 이미지가 중첩되고 과장된 여백을 배경으로 가짐으로써 다시금 공간에 놓여진 대상으로 대상화 된다. 보드리야르는 이미지에 가해진 결정적인 폭력은 합성 이 미지의 폭력이며 이제 이미지의 상상이나 이미지의 근본적인 환상은 끝났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합성작용 속에서 지시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실재가 가상현실로 즉각 태어나 면서 그것이 더 이상 생겨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앞선 ‘Ornament’ 작업에서의 이미지 중첩 이 이미지가 된 사물의 인식에 관한 의도였다면 ‘Untitled’에서의 이미지의 중첩은 보드리야르의 주장 쪽에 더 가깝다. 재현한 대상도 파편적이며 왜곡된 상태로 이미지가 되었을 때 지시대상인 실재와는 한 없이 멀어지며 이미지가 중첩되며 다른 색을 덧입히는 과정을 거치면서 순수한 인 공물인 이미지로 더 이상 아무것도 아무도 반영하지 못하고 심지어 부정의 단계조차도 거치지 못하게 되는 상태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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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현 Jihyun Han

studioroof.1@gmail.com

 

학력

2014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조소전공 박사과정 재학

2013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조소과 M.F.A

2011 홍익대학교 조소과 B.F.A

 

단체전

2015

‘Refractions’, 스피돔 갤러리, 경기도, 한국

‘Tuning of space’, 유중아트센터, 서울, 한국

2013

‘2013 아시아프’, 문화역 서울 284, 서울, 한국

‘몽유전’, 자하 미술관, 서울, 한국

‘석사학위 청구 전’,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한국

2012

‘홍익국제미술제’,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갤러리, 서울, 한국

‘Archive-on going’ 4개 대학 연합전, 서울대학교 우석홀, 서울, 한국

‘Homo Artex-KOSA space’ 기획 초대전, KOSA space, 서울, 한국

2011

‘Switch’ 홍익대-서울시립대 교류전, 서울시립대학교 빨간벽돌 갤러리, 서울, 한국

2010

‘Unknown’ 홍익대학교 조소과 졸업전,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