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 《사이 공간에 흔들거리는 빛들》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것은 참으로 복잡하다. 지진이나 해일 등 자연재해의 피해를 입으면, 인간에게 자연은 그 힘을 억누를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옛날부터 자연은 외경의 대상으로 숭배되며, 일본에서는 지진제(地鎮祭: 집을 짓기 전에 땅의 신에게 예를 올림)의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자연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존재가 아닌 것으로 변하였다. 근대도시가 형성되면서 상호간의 대비가 뚜렷해지며, 가로수나 동물원의 모습으로 나타나 자연이 인간의 손에 의해 조성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존 버거(John Berger)의 대표적 저서  『본다는 것의 의미 About Looking』에는 동물이라는 자연의 존재가 인간에 의해 ‘조성된 환경’ 속에서 만나는 내용이 있으며, 셰리 터클(Sherry Turkle)의 『외로워지는 사람들 Alone Together』에는 동물과 그 로봇을 비교할 때, 로봇이라는 허구의 존재가 실재보다 더 진짜처럼 보인다는 상황이 언급된다. 두 학자가 제시하는 대상이 동물이기는 하지만, 지적하는 부분을 보다 넓게 바라볼 때, 오늘날의 자연이 처한 상황과 일치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복잡한 관계는 예술작품에도 마찬가지다. 자연을 모티프로 해서 그려진 그림은, 동양의 수묵화가 그렇듯이 현실에서 떨어진 편안한 곳인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한편에, 폴 고갱(Paul Gauguin)이나 일제시대를 보낸 한국인 화가를 둘러싼 ‘향토색’문제처럼 오리엔탈리즘의 문맥을 함께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자연의 이미지를 빌려옴으로써 고귀한 인물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회화가 맡았다. 후스마에(襖絵: 성이나 사찰 내부 칸막이에 그려진 그림)에 등장하는 맹수나 자연의 이미지는 그 사람의 이미지를 높이는 일과 연결된 것이다. 태고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자연은 인간과의 관계—넘어서는 대상이거나 혹은 대항할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한다.

  그림2카이카이키키 갤러리에서 2017년 1월 20일에서 2월 23일까지 열린 화가 ob의 전시 《사이 공간에 흔들거리는 빛들》 이 열렸다. 전시된 많은 작품이 자연과 인간을 모티프로 해서 캔버스에 그려져 있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일본어로 ‘사이’를 뜻하는 ‘아와이’라는 말과 같은 발음인—어슴푸레한(아와이) 색조를 기조로 작품을 발표했다. 해변가나 산을 배경으로, 큰 눈을 가진 소녀가 서 있는 모습이, 여러 크기의 화폭과 하나의 영상작업에 나타난다. 뚜렷한 감정을 나타나지 않고 화면 안에 서 있는 소녀는, 어떻게 보면 자연에 압도된 모습으로 보인다. 그 모습은 독일 낭만주의 화가 캐스퍼-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그림과 형식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그의 그림 <구름 바다 위의 나그네>를 비롯하여 <해변가의 수도승>, <바다의 월출>을 보면, 자연을 배경으로 익명의 인물상이 나타나 있다. ob의 작업에서 마찬가지로 자연과 인물이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ob의 작품에서 프리드리히의 작업보다 인물이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고, 표정이나 눈길을 읽어낼 수 있다. 화면에 포착된 그 순간, 그 순간을 의식하고 있는지 혹은 아닌지를 알 수 없는 그 모습은, 멜랑콜리하게 보인다. 예전에 그리젤다 폴락(Griselda Pollock)은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ja Kristeva)의 글을 가지고, 푸른 색이 주체와 객체 간의 대립항이 갖는 경계를 제거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ob의 작품에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푸른 색은 보다 광범위적으로 대립항의 관계를 와해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림3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풍경화를 그림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공존 그 가능성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전시 리플렛 내용에서 인용)” 여기서 다시 한 번 낭만주의와 비교를 해보았을 때, ob의 작품에서 자연-인간의 대립적 구조가 느슨해졌다고 판단할 수 있다. 화면에 전체에 나타난 ‘어슴푸레한(아와이)’ 색조로 인하여 자연은 사람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로 나타난다. 작품을 보면,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작가는 이번 전시 제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과거와 미래, 꿈과 현실, 인간과 자연. 이질적인 것들의 경계를 뛰어넘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떤 것으로도 변화가 가능한 소녀의 자유로움, 상상력, 기도를 사이(아와이)라는 ‘어떤 것과 어떤 것 가운데’를 나타내는 말에 생각을 담았습니다. (같은 리플렛)” 화가가 한 말에 볼 수 있듯이, 이번 전시는 단순하게 자연과 인간의 공존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뿐 만은 아니다. 작품 제목을 보면, 그 장면이 회고적인(retrospective) 것으로 나타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먼 옛날의 상처>, <추억>, <언제 다시 돌아가는 곳>, 그리고 <물거품>이라는 제목을 볼 때, 묘사대상의 불확정성을 나타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번만 셔터를 누르면 그 장면이 구석구석까지 명료하게 기록되는 사진과는 달리, 머릿속에 아련하게 존재하는 이미지로서, 작품 전체의 어슴푸레함에 직결된다. ob의 과거 작품을 보아도 서사성을 알 수 있었지만, 이번 작품에는 그것들이 기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감상자에게 그들 각각이 가진 서사성을 환기시키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품 광고나 ‘유식한 교사’인 미술작품이 아닌 것으로, 감상자와 작품 또는 작가와의 관계 또한 완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림4<사진출처> ©2017 ob/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