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빈 모티 코스미즘

 아트선재센터에서 지난 주 2017년 3월 18일에 네덜란드 작가 멜빈 모티(Melvin Moti)의 전시가 1층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열렸다. 《코스미즘》이라는 제목인 이번 전시에 대해, 작가는 오프닝에 앞서 열린 스크리닝(2017년 3월 17일)에서 ‘세 가지로 구성된 설치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여태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업을 해 온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작업은 각각 영상 작업, 에세이 책, 그리고 직물을 염색한 작업의 세 가지이다.

 영상작업인 <코스미즘>(2015)은 러시아인 학자 알렉산더 치제프스키(Alexander Chizhevsky)가 주장한 태양과 지구의 변동과 관련된 내용에서 출발했다. 초자연적 이론을 우주과학과 관련 지어 탐구한 ‘코스미스트’의 한 명으로 활동한 치제프스키는, 태양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와 지구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재난의 시기가 서로 연관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히스토리오메트리’라 불리는 이러한 공시성의 관계를, 작가는 테러의 장면과 태양의 활동 장면을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상작업에서 작가가 다룬 내용을 에세이로 정리한 책이 실제로 갤러리에서 판매되며, 치제프스키의 논의와 함께 정치인 데 위트(De Witt) 형제를 그린 얀 데 반(Jan de Baen)의 회화에 대한 내용을 읽을 수 있다. 그림에서 링치 당한 정치인 형제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 장면 배후에 있는 정치적인 혼란을 오늘날의 양상과 연결시켜 해석하게 된다.

 영상작품에서 특징적인 부분은 주변 소리가 녹음되지 않은 영상을 사용함으로써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이 서로 얽혀있는 사슬을 끊는다는 점이다. 영상뿐 아니라 사람은 어떤 것을 인지할 때, 시각과 함께 평행적으로 들리는 소리로 현장감을 인식한다. 일찍이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이 「감각의 사회학」에서 분석했듯이, 청각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수동적으로 그 소리를 받아들이기 가능케 하며, 시각과 청각의 이 두 감각기관은 서로가 긴밀한 상호관계 속에 놓여있다. 테러의 폭격 장면을 찍은 것을 보면 아수라장이 된 곳에 다친 사람도 보이고 붕괴된 건물의 잔해가 보인다. 시간이 경과되면서 화면 전체를 채우듯 먼지와 연기에 둘러 쌓여 나타난다. 사실 이 소리 없는 동영상을 보고, 관람객은 하얗게 펼쳐진 장면이 편집을 통해 인위적으로 페이드 아웃된 것인지 아니면 실제 장면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소리를 틀지 않고 제작한 작업은, 동포 작가 아르나우트 믹(Aernout Mik)의 작업과 공통점을 갖는다. 아트선재센터에서 2015년에 전시된 <아이스크림 고지>(2014-2015)이나 <훈련장>(2006)만을 보아도 그의 작업 또한 무음으로 처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믹과 모티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무음 효과는 관객으로 하여금 서사를 만들게 하며, 후자의 작업에서는 그것과 더불어 시각적인 효과를 수반한다. 작가의 손에 의한 효과와 실제 장면 사이를 모호하게 하는 시각적 효과는, 관람객이 보다 자의적으로 서사를 만들거나 생각거리로 여기는 여지를 제공한다.

 <코스미즘>이 어두운 전시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업이라면, 하얀 갤러리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작업이 <클러스터 일루전>(2013)이다. 이 작품은 일본 도쿄에서 기모노를 만드는 장인의 도움을 받아 제작된 직물 염색작업이다. 2013년에 모리미술관의 전시공간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이 작업은 어두운 색깔을 가진 배경에 하얀 색 점들이 배열되어 반복적인 패턴을 이룬다. 그 패턴 속에 구름이나 물고기 형상이 보일 때 마치 별자리를 보는 듯하다. 작품으로 가까이 다가가보아도 점으로 인식되는 그것들은, 별을 보는 것과는 다른 즉 본질로 다가갈 수 없는 지극히 추상적인 것이다. 사실 그 형상들이 직물 표면에 염색되지 않은 부분에 배열된 점의 크기가 다를 뿐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형태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작가의 다른 작업에도 볼 수 있는 자의성과 불규칙성의 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영상작업 <아이겐리히트>(2012)에서 광물의 모습은 느린 화면에 클로즈업되면서 마치 우주공간에서 행성을 보는 듯이 감상자는 하나의 물체에서 다양한 인상을 갖게 된다. <클러스터 일루전>에서 나타나는 크고 작은 점의 배열은, 보는 사람이 가까이와 멀리서 보는 동선 상에 서서 추상적인 것에서도 무의식적으로 규칙을 찾아낸다. 앞서 치제프스키가 태양과 지구의 갈등의 관계를 사회적 패턴으로 파악했다면 <클러스터 일루전>에서 작가는 시각적인 패턴을 파악했다.

 이 세 작업 외에 아트선재센터의 DMZ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제작된 이끼의 작업 <이끼정원에 관한 연구>을 전시공간에서 볼 수 있다. 앞서 소개한 <클러스터 일루전>을 비롯하여 작가는 일본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의 리스본(《Echo Chamber》(2012)에서 벨기에 브뤼셀(《Dust》2010)에서 그 지역의 수작업과 관련된 작업을 전개했다. DMZ프로젝트의 하나로 여전히 진행 중인 이 작업은, 철원에 있는 터널(땅굴)에서 채취한 다섯 가지 이끼를 전시공간으로 가져온 것이다. 땅굴에서 가지고 와서 전시공간에서 크는 이끼의 모습은 다듬어진 모습으로 전시공간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통상 만나기 어려운 이들 관계는 어떤 의도도 명시되지 않은 채 전시공간에 놓아져서 서로 뜻밖의 만남이 된다. 전시공간에 작품으로서—장식품으로 보면 어울릴 수도 있겠지만—어울리지 못한 이끼를 보고 관람객은 드러나기 않는 배후의 사정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겨우 자리를 찾았음에도 그 자리에서 어색하기 짝이 없는 난민의 모습인가, 아니면 진정한 구제의 보살핌을 받는 행복한 모습인가. 이 작업들에서 작가는 인간의 자의성과 불규칙성 사이의 관계에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

<참고자료>
아트선재센터 전시 《코스미즘》 및 스크리닝(2017.3.17) 리플렛 및 당일설명
모리미술관 전시 《MAM PROJECT 021 : Melvin Moti》 리플렛
[http://www.mori.art.museum/contents/mamproject/project021/pdf/MAMP021_MelvinMoti.pdf]
ART iT 인터뷰 기사 (2017.7.19) [http://www.art-it.asia/u/admin_ed_feature/XvLnZHsPji69Eh2f8Wgk]
게오르그 짐멜 / 김덕영 역 감각의 사회학,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