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보 가에탄 《내 몸이 나의 실험실입니다. 혹은 그것을 지구우연관리국이라 부른다.》

 

 오컬트(occult)라는 단어를 듣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UFO 혹은 괴기한 현상을 떠올릴 것이다. 이 말의 어원은 라틴어로 ‘보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의 『괴담』이나 도시전설, 그리고 오늘날 방사능문제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예전부터 ‘보이지 않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왔다. 집 안에 불단(佛壇)을 놓고 돌아가신 사람을 사모하는 것만을 보아도, 다른 나라 사람은 신기해할 것이다. 그런데 그 기묘한 존재는 타자에게만 돌려지는 것이 아니다. 보다 더 밀접한 차원일 수도 있다.

 리서치를 토대로 제작된 영상이나 설치작업으로 알려지는 작가, 쿠보 가에탄(Gaetan Kubo)는 오컬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한다. 처음 그를 알게 된 계기는 잡지 『미술수첩』 2016년 12월호였는데, 거기서 소개된 작품 <Smoothie>는 거대한 입방체가 회전하며 거기에 달린 창을 통해 영상이 촬영되는 것이다. 입방체 안을 보면 모델링된 집처럼 꾸며진 거실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것이 회전함으로써 마치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 현상처럼 보여 방 안에 아수라장이 되는 과정이 영상에 나타난다. 이전에 코다마화랑|교토(児玉画廊|京都)에서 열린 《Madness, Civilisation and I》, 그리고 작년 이 시기에 도쿄 센주(千住)에서 열린 《기억의 원근법》 전시에도 작가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어 있다. 후자에서 쿠보는 ‘도깨비 굴뚝’을 주제로 리서치를 시작하여, 나중에 놀이기구가 된 굴뚝의 원재료는 미국에서 구입한 전함의 철 재료였다는 사실을 규명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작가는 유령이나 폴터가이스트를 비롯한 특정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역사 속에서 읽어내는 작업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코다마화랑|텐노즈(児玉画廊|天王洲)에서 열린 《내 몸이 실험실입니다. 혹은 그것을 지구우연관리국이라 부른다.》 전시 또한 작가가 오컬트에 관심을 보인 것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여러 설치물이 보인다. 스크린에 비춰진 영상, 그 앞 공간에 놓인 파도를 만들어내는 기계는 뒤집힌 집의 모형으로 소금물을 보낸다. 돌고래의 에콜로케이션(반향 위치 측정, ecolocation)이 투구게로 반사되어 실내에 들린다. 관람자는 한 눈에 그것들의 연관성을 찾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들은 작가의 리서치를 통해 서로 접점을 가지는 모티프로서 다루어진다.
 

 이 독특한 전시 제목은 쿠보가 자기자신에 초점을 두며 진행된 리서치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프랑스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쿠보는, 이번 전시회에서 아버지의 뿌리를 탐색해간다. 증조부의 인연이 깃든 물건을 찾는 가운데, 작가는 투구게의 박제를 발견한다. 그 투구게를 가지고 그의 조상이 바다에서 염전사과 관련된 일을 했었다는 추론으로 도달한다. 여기서 투구게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데, 조상보다 더 아득한 옛날을 상기시키는 모티프로서 쿠보의 아버지가 약물 복용 시에 경험한 내용과 연결된다. 약물복용을 경험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반점무늬를 보았는데 이것이 몇 년 후에 돌고래 복부의 무늬를 보았을 때 다시금 상기된다. 돌고래와 인간은 둘 다 지적인 동물로 알려져 종종 비교된다. 이 반점 무늬를 보고 쿠보의 아버지는 인류와 돌고래의 유전자, 이 두 경우 모두 태고에 새겨진 것이라 이야기한다. 최종적으로 아버지의 뿌리와 연관된 요소들은 영상에서 약물을 흡입하는 듯이 소금을 빨아들이는 장면으로 이어지며, 프랑스 출신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에비앙(evian)을 함께 마시는 장면에서 작가 자신이 일본과 프랑스의 뿌리가 서로 맞물린 존재로 표현된다. 이번 전시는 일본인과 프랑스인 부모 사이에 태어나 성장한 작가였기에 ‘오컬트’라는 그의 관심사에 연결된 것이 아닐까 싶다. 투구게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대에서 시작된 우연성은 쿠보의 존재를 보다 신비적이면서도 교묘한 결과물로 나타내준다.

 쿠보가 관심을 갖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일찍이 억압하는 ‘장치(apparatus)’에 대해 분석했다. 억압되어 숨겨진 것, 그것은 이성과 감정 중의 후자처럼 비합리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합리주의는 과학기술과 병행되어 발전되었는데,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과학적인 설치를 통해 숨겨진 것에 관심을 돌린다. 갤러리 2층에 전시된 <Dream Machine>이 그렇듯 쿠보는 과학기술을 인간의 내면 혹은 정신을 탐구하는 수단으로 보아 작업을 한다. 이번 전시에서 오컬트라는 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여, 더군다나 자신을 실험실로 삼아 진행된 쿠보의 작품은 자전적인 고찰로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탐구는 투구게나 돌고래 그리고 파도를 일으키는 장치나 에비앙 생물 등으로 마인드 매핑된다. 일찍이 기 드보르(Guy Debord)와 아스거 요른(Asger Jorn)에 의해 ‘심리지리학’으로 그려진 지도가 무의식적인 행위와 연결되는 것이었다면, 쿠보의 작품은 면밀한 연구를 통해 그 속에 우연성이나 무의식을 찾아내는 접근이라 말할 수 있다. 전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에콜로케이션은 그것들이 어떻게 연관되는 것인지 모르는 한, 관객에게 기묘한 것으로 다가온다.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