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스 마사요 《이사무 노구치 : 숙명적 초월자》

 

1992년부터 ‘문화인 우표’라는 시리즈가 일본 우체국에서 판매되었다. 이것은 일본에서 학술적 또는 문화적으로 크게 공헌한 인물을 선정하여 한 해마다 다른 인물을 우표에 디자인한 것인데, 우끼요에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나 서양화법을 탐구한 하야미 교슈(速水御舟)를 비롯하여 화가뿐만 아니라 시인, 화학자, 소설가 등 폭넓게 인물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시리즈가 2004년에 판매되었을 때, 우표에 나온 인물을 보고서는 어린 나이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선정된 인물 세 명 중 두 명이 일본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등장한 인물들이 그 이름이나 모습을 보아도 일본인이었던 만큼 2004년에 선정된 인물을 보면 특이한 인상이 더 컸었다. 한 사람은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 교사로서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일본의 모습을 기록한 작가는 세계 다른 나라에서는 라프카디오 헌의 이름으로 흔히 알려진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원형으로 된 추상적인 작품과 자신이 디자인한 전등 앞에 보이는 이사무 노구치였다. 이것이 필자와 이사무 노구치의 첫 만남이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이름을 부를 때 성이 먼저 온다. 이름인 ‘이사무’가 먼저 오는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는 시인으로 활동한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흔히 조각가라 불리며 브랑쿠시의 제자로서 추상조각을 만들었다고 알려지지만 엑스포 분수대, 가구나 전등을 디자인하거나 공간자체를 구성하는 작업을 보면 기존의 조각가 개념을 넘는 존재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혼혈아로서 태어난 그는 일본에 어떤 문화적 기여를 했을까? 그런 마음에 도우스 마사요(ドウス昌代)가 쓴 <이사무 노구치 : 숙명적 초월자>를 읽어보았다. 연대기적으로 전개되는 내용은 총 두 권으로 구성되는데, 이 책은 이사무 노구치가 생전에 남긴 인터뷰나 그의 지인들의 말을 직접 인용하는 부분이 많아 그의 인물상을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가 생애를 거쳐 경험한 내용은 그의 작업세계로 연결되면서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의도나 계기를 알게 해준다. 예를 들어 이사무가 전등(아카리)시리즈를 제작한 이유로, 교도소에서 겪은 갈등 속에 밝은 빛을 찾으려고 했던 기억과 어릴 때 일본에서 어머니와 생활했을 때 그림자놀이를 봤던 추억이 교차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그가 정원건축에 관심을 보인 것은 단지 자신의 혈통적 뿌리인 일본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인도나 이탈리아에 있는 유적을 보면서 조각의 가능성을 추구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보기에 조각은 자기폐쇄적인 조각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조각의 가능성을 확대시켜 그 공간 또는 건축물과 서로 어울리는 작업을 했는데, 옛날에 피라미드가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면, 이사무는 20세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인 ‘놀이터’를 실현시키고자 애썼다. 이 책의 부제인 ‘숙명적 초월자’라는 표현은 그의 작업태도뿐만 아니라 동시에 성장배경을 나타내는 부분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일본에 어떤 문화적 기여를 했을까?“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꾸어볼 수 있다. “그는 일본인으로서 어떤 문화적 기여를 했을까?”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나라 일본을 알려고 했다. 정원건축을 유심히 관찰하고 얻은 것은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정원을 만들고, 폭격을 받은 히로시마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자기자신의 손으로 일본을 이해하고자 했다. 보수적인 일본의 태도에 이어서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을 겪어온 이사무의 생애는, 세계화가 이루어지며 상호간의 정보교환이 쉽게 이루어지는 오늘날과 비교할 때 ‘숙명적인 희생양’으로 보이기도 했다. 어느 한 곳에도 속하지 못한 어린 시절에 이사무를 돌봐주지 않은 아버지를 미워했다. 일본에서 놀림을 당한 반-미국인인 소년은 미국으로 가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는 데 고통스러워하고서는 미국으로 자신을 다시 보낸 어머니를 미워하게 된다. 그러나 만년에 두 나라를 오가면서 “일본에 있다가 미국이 그립고 미국에 있다가 일본이 그립다”는 심정으로 변화한다. 이사무가 겪어온 과정은 마치 그가 조각으로 하여금 그 주변환경을 만들려고 했던 것처럼 그 스스로가 발판을 마련하려고 한 것이었다.

<사진출처> 山田書店[http://www.yamada-shoten.com/onlinestore/detail.php?item_id=16970]

editor Yuki Konno